2011년 7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이하 방통심의위)에서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다. 한 누리꾼이 자신의 미니홈피에 직접 성기 사진을 올리자 방통심의위가 ‘음란한 화상’으로 판정해 삭제 조치를 하면서다.

한 방통심의위원은 삭제 조치에 반대한다며 자신의 블로그에 해당 사진을 올렸다. 이어 퀴스타브 쿠르베의 ‘세상의 기원’ 그림을 올리면서 “내가 올린 문제의 사진들은 지금도 프랑스 파리의 오르세 미술관에 누구나 볼 수 있도록 걸려 있는 쿠르베의 그림 ‘세상의 근원’과 같은 수위의 것”이라고 주장했다.

여성 성기가 그려진 ‘세상의 기원’은 포털사이트에서 바로 검색해서 볼 수 있었다. 논쟁의 핵심은 맥락을 배제하고 단지 성기 사진이나 이를 묘사한 그림을 올렸다는 이유로 방송통신심의 대상이 될 수 있느냐라는 것이었고 ‘표현의 자유’를 어디까지 인정하느냐 여부였다.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사회질서를 현저히 해할 우려가 있다는 걸 방통심의위가 임의로 판단하면 표현의 자유는 ‘좋은 표현의 자유’만 남게 된다는 문제의식에 따라 심의의 방향이 검열에 있다는 논쟁으로 이어졌다.

고려대 명예교수였던 황현산은 “(해당 논쟁에서) 서사를 말하는 것은 그 맥락을 따지자는 뜻이다. 인터넷 사이트 어디에나 널려 있는, 그렇다고 크게 문제 될 것도 없는 ‘여성이 만족하는 남성의 사이즈?’ 같은 광고의 말과 이 사진을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음란한지 알아보자는 뜻도 어쩌면 포함 되겠다”라며 “맥락을 따지는 일은 쉽지 않다. 그 일에 시간과 정성을 바치기보다는 행정 규정을 폭력적으로 들이미는 편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고 비평했다.

10년도 지난 방통심의위에서의 일은 대중적 논쟁거리로 만들면서 표현의 자유 본질에 대한 깊이를 탄탄하게 해줬다. 찬성이든 반대든 방통심의위 조치는 표현의 자유 문제를 고심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최근 추진 중인 인터넷 언론사 심의 규제는 여러 치열한 논쟁을 통해 쌓아온 방통심의위 진일보한 가치를 깡그리 무너뜨리는 것이다. 심의의 폭과 속도, 기준 등을 따지면 정권에 복무하는 일방적인 행정기구에 다름없다. 무엇이 ‘가짜뉴스’인지 규정하지도 못하고 유령을 잡겠다는 말만 되풀이하는 형국인데 막무가내식 규제 추진에 논쟁이 끼어들 틈은 없다.

방통심의위 직원들조차 가짜뉴스 심의에 손을 들었다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심의는 본래 행정규제의 성격을 띠지만 행정규제 역시 명확한 기준에 따라 시행돼야 하는 걸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 직원들이기 때문이다. 향후 자칫 가짜뉴스 규제책 시행에 위법적 행위가 드러나면 그 처벌은 직원들이 받을 수 있다.

방통심의위 직원이 “가짜뉴스 척결은 정말 우리 위원회를 위한 것이냐”라고 물으면서 가장 많이 한 질문은 방통심의위가 민간독립기구가 맞느냐는 것이었다. 무분별한 가짜뉴스 규제책 때문에 민간독립기구로서 방통심의위 기능이 무력화될 것이라는 직원의 한탄으로 보인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9월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20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9월25일 오후 서울 양천구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열린 20회 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 연합뉴스

방통심의위 팀장 11명도 입장문을 통해 사실상 류희림 위원장이 내부 직원들도 설득하지 못하고 가짜뉴스 규제책을 일방으로 밀어붙이고 있다고 폭로했다. 전례없는 일이다. 표현의자유 경계에 있는 문제를 심의할 때 종종 ‘개그쇼’로 조롱받았지만 이젠 심의의 ‘업’을 계속해야할지 고민된다는 방통심의위 직원의 목소리도 나온다. 직원들은 방통심의위 존재 이유를 묻고 있다.

방통심의위를 살리는 길이 역설적으로 언론자유를 지키는 길이기도 하다. 언론중재법 개정안 논의 당시 시민사회가 UN 표현의 자유 특별보고관을 통해 개정안 부당성을 주장하고, 공식 서한을 전달받은 적이 있다. 현재 방통심의위는 국제사회에 고발할 정도로 국제인권규약에 위배된다고 판단한다. 이번 기회에 방통심의위의 구조적 문제(여야 추천)나 지위의 성격을 확실히 정리하는 문제로까지 확대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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