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한국당이 서울대와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패소했다. 

앞서 한국당은 2017년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가 운영하는 ‘SNU팩트체크’ 사이트가 정치적으로 편향된 매체들의 기사 9건을 검증 없이 인용해 명예가 훼손되고 대통령 선거에도 악영향을 끼쳤다며 1억원의 배상을 요구했다. 그러나 서울남부지방법원은 21일 “사이트의 목적과 성격, 운영방식, 소위 팩트체크의 기능과 목적, 이 사건 게시물 내용을 종합할 때 피고에게 게시물을 삭제할 의무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고의 주장을 기각했다. 피고의 소송비용도 전액 한국당이 부담하라고 했다.

SNU펙트체크는 대학과 언론사가 협업하는 비정치적·비영리적 사이트(factcheck.snu.ac.kr)로,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가 플랫폼을 제공하고 제휴 언론사들이 콘텐츠를 제공한다. 한국당이 문제제기한 게시물은 다른 게시물과 마찬가지로 제휴 언론사가 자율적으로 정했고,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는 이에 관여하지 않았다. 

이곳에선 정치인·공직자의 진술, 의견, 주장을 검증해 판단 결과를 △전혀 사실 아님 △대체로 사실 아님 △절반의 사실 △대체로 사실 △사실 △판단 유보 중 하나로 입력한다. 같은 주제에 다른 언론사도 검증에 참여해 판단 결과를 추가할 수 있는데 판단 결과 사이에 3단계 이상 차이가 나면 △논쟁 중으로 표시된다.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가 운영하는 팩트체크 사이트 화면 갈무리.
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가 운영하는 팩트체크 사이트 화면 갈무리.

한국당이 명예훼손 주장한 팩트체크 따져보니 

한국당이 명예훼손을 주장한 9건의 팩트체크는 다음과 같다. 

KBS는 2017년 홍준표 한국당 대선후보 발언 중 “군 동성애가 군기를 약화시킨다”는 홍준표 전 후보의 발언에 “군 동성애와 군 기강 사이의 연관 관계를 보여주는 실증적 증거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으며 유럽 등 일부 국가에선 동성애자의 군 복무를 허용하는 추세”라며 ‘전혀 사실 아님’으로 제시했다.

JTBC는 “동성애 관련 군형법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합헌 결정이 있기는 하나, 헌법재판관의 위헌의견이 늘고 있으며 동성애가 국방전력에 악영향을 준다는 주장은 확인하기 어렵다”며 같은 발언에 ‘판단 유보’를 제시했다. 

SBS는 홍준표 후보의 발언 중 “DJ, 노무현 정부 시절 북한에 70억 달러의 돈을 줬다”는 발언에 “현물을 빼고 돈은 39억 달러”라며 ‘전혀 사실 아님’으로 제시했다. 

한국일보는 홍준표 후보의 발언 중 “문재인 후보가 2003년 기무사령관에게 국가보안법 폐지를 요구했다”는 주장에 “당시 기무사령관은 ‘당시 문재인 후보가 국보법 폐지에 총대를 매달라고 했지만 찬성할 수 없어 그냥 듣고 끝냈다’고 했으나, 최종적 진위 판단을 하려면 문 후보의 정확한 설명이 필요하다”며 ‘판단 유보’를 제시했다. 

홍준표 전 한국당 대선후보.
홍준표 전 한국당 대선후보.

SBS는 홍준표 후보 발언 중 “왜 일자리가 안 생기냐, 그것은 우리나라에 3%도 안 되는 강성 귀족노조들 때문이다”라는 발언에 “민주노총에는 귀족이라 보기 어려운 곳도 있고, 대한상공회의소가 낸 보고서에는 기업이 해외로 떠나는 주요 이유가 국제 규제, 해외 시장 진출 등이지 노조 관련 부분은 비중이 낮고, 특히 강성 귀족노조라는 문구는 거론되지 않는다”며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제시했다. 

JTBC는 홍준표 후보의 발언 중 “녹조는 질소와 인이 고온다습한 기후하고 만났을 때 생긴다”는 부분을 ‘4대강 사업은 녹조와 무관하다’는 취지의 발언으로 파악하고 대학교수의 의견, 녹조의 수와 증가 시기, 다른 발생 요인을 분석해 ‘전혀 사실 아님’으로 제시했다. 

SBS는 “노무현 정부가 세월호 유병언 빚을 탕감해줬고, 당시 민정수석인 문재인 후보가 책임이 있다”는 홍준표 후보의 발언에 대해 “1155억원의 채권 출자전환은 정부가 아니라 채권단이 합의하고 법원이 인가한 것”이며 “채권 출자전환 한 2007년 12월 당시 문 후보는 민정수석이 아니라 대통령 비서실장이었다”며 ‘전혀 사실 아님’을 제시했다. 

YTN은 “노무현 일가가 640만 달러를 수수했다”는 홍준표 후보 발언에 대해 “당사자들도 금품수수 사실을 인정했지만 노 전 대통령이 관여했는지 여부는 확인되지 않았다. 하지만 홍 후보가 앞선 발언들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만 언급하다 뒤늦게 ‘일가’라는 단어를 추가해 자신의 발언을 교묘하게 포장한 것으로 볼 수 있어 사실 반 거짓 반이 타당하다”며 ‘절반의 사실’로 제시했다. 

뉴스1은 “문 대통령이 공약한 탈원전·탈석탄 정책이 시행되면 가구당 연간 전기요금을 지난해보다 약 31만4000원을 더 부담해야 할 것으로 예측된다”는 정유섭 한국당 의원의 발언에 대해 “전기료 폭등 예측은 현행 발전 단가를 기준으로 했을 뿐 에너지 세제개편 정책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라며 ‘전혀 사실 아님’으로 제시했다. 

JTBC는 이명박 전 대통령 자서전의 4대강 관련 부분에 기재된 내용 중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 위해 추진, 2008년 12월 국가균형발전위가 보고하면서 사업 시작”이란 대목에 대해 ‘대체로 사실 아님’을 제시했다. 

12개 언론이 지난 대선 기간 팩트체크를 한 결과, 홍준표 후보가 가장 많은 검증을 받았으며 거짓말을 한 비율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서울대 팩트체크 연구소.
12개 언론이 지난 대선 기간 팩트체크를 한 결과, 홍준표 후보가 가장 많은 검증을 받았으며 거짓말을 한 비율도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출처=서울대언론정보연구소.

재판부 “팩트체크, 합리적 사고 과정 거친 것”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정당 소속 구성원에 대한 명예훼손을 정당에 대한 명예훼손으로 보기 어렵다”고 밝힌 뒤 “사건 게시물은 한국당 대선후보의 발언, 한국당 국회의원의 발언, 한국당 소속 전직 대통령의 자서전 내용에 관한 것이며, 공적 인물의 정치적 이념, 시각, 능력은 영향이 크기 때문에 철저히 공개되고 검증돼야 한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최근 일부 언론사들은 공적 인물의 발언 등을 단순히 전달하기만 하는 역할을 넘어 나름의 근거를 가지고 검증 결과를 제시한다. 검증 결과가 언제나 옳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언론사가 믿을 만한 근거를 토대로 합리적 사고 과정을 거쳐 판단한 결과라면 쉽사리 명예훼손이라 인정해선 안 된다”고 판시하며 오늘날 팩트체크의 사회적 중요성과 정당성을 인정했다. 

실제로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언론사가 근거를 가지고 공적 인물의 발언 등을 비판하는 것이 공적 인물의 발언 등이 아무런 여과 없이 국민들에게 전달되는 것보다 민주적 정치질서의 유지에 바람직하다”고 적시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 “이 사건 게시물은 합리적 사고 과정을 거친 것으로 보이고, 악의적이거나 현저히 상당성을 잃은 공격에 해당한다고 보이지 않는다”고 밝혔다.

한국당은 언론의 공적 역할에 해당하는 정치인·공직자 발언 검증 보도를 비롯해 이를 게시한 플랫폼까지 ‘편향’으로 매도하며 민사소송을 통한 위축 효과를 노렸다는 비판이 불가피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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