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에 최종 보고서가 공개된 핀란드의 기본소득 실험은 복지와 고용의 관계 뿐 아니라 우리의 공론장을 진단할 수 있는 좋은 의제다. 일단 기본소득과 고용의 관계부터 살펴보자. 어려운 이론이 필요 없다. 자신의 경우부터 상상해 보면 된다. 정부로부터 정기적으로 아무 조건 없이 일정 금액의 현금이 주어진다면 지금보다 일을 더 할 것인가, 아니면 덜 할 것인가. 일의 양을 스스로 정하기 힘든 사람에겐 지금 하고 있는 일을 계속 할 것인지, 아니면 그만둘 것인지를 상상해도 좋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질문은 대개 일을 ‘더 할지’보단
미래에 반드시 주류가 되었으면 하는 두 가지 흐름을 꼽자면 ‘증거 기반 정책’과 ‘솔루션 저널리즘’이다. 정치와 미디어라는 서로 다른 분야에서 서서히 논의가 축적되고 있는 이 둘은 정책이 부재한 채 대립하는 기성 정치와 대안 없는 비판에 골몰하는 기성 언론을 성찰하고, 사회 문제를 드러내고 개선하는 정치와 언론 본연의 역할을 고민하는 과정에서 등장했다는 꽤 여러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다. 증거 기반 정책이란 말 그대로 효과가 검증된(최소한 근거가 있는) 정책을 시행하자는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같지만, 말처럼 간단하진 않다. 정책
기약 없이 길어질 것만 같았던 사회적 거리두기가 어린이날인 5월5일 종료되고, 이튿날부터 학교와 어린이집 등이 순차적으로 개학하는 '생활 속 거리두기' 체제로 전환됐다. 이즈음에서 따지고 넘어가야 할 것이 코로나 19 명칭에 대한 조선일보와 동아일보의 고집이다. 방역 초기엔 명칭에 혼란이 있을 순 있으나 세계보건기구(WHO)가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19’(COVID-19)이란 명칭을 쓰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언론사는 ‘우한 폐렴’이란 명칭을 고수했다. 이들 언론사들이 이 명칭을 쓰는 이유를 명시적으로 밝힌 적은 없으나 문재
21대 총선은 여러 면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현대 민주주의 사회에서 권력을 창출하는 독립적 정치 결사체인줄 알았던 정당이 대놓고 다른 정당 주변을 도는 ‘위성’이 될 수 있음을 확인한 선거였다. 경기에서 선수나 다름없는 정치인들이 법으로 확정한 연동형 비례대표제를 대놓고 무시했고, 현실에선 누가 더 기만적 반칙을 하느냐에 따라 이득을 얻는다는 것도 이번 선거에서 확인했다. 거대 양당은 선거 국면에서 정책과 의제를 내세우지 않았고, 급조된 정당들은 숙성되지 않은 공약들을 남발했다. 정책과 공약이 선거의 중심이었던 적이 드물지만 민
재난 시기에 좀 한가해 보일 수 있지만, 재난 이후의 사회를 위해서라도 꼭 던져야 할 질문이 있다. 바로 '우리의 세금은 공정한가'이다. 세금이 공정하려면 두 가지만 충족하면 된다. 더 많이 버는 사람이 더 많은 세금을 내고, 모든 소득에 차별 없이 세금을 부과하면 된다. 이런 원칙을 염두에 두고 현실의 세금제도를 살펴보자. 만일 집을 사고 팔아서 수억원의 차익을 남겼다. 얼마가 과세될까. 1가구 1주택자이고 일정 기간 보유한데다 주택의 기준시가가 9억원 이하라면 수억원의 소득이 발생해도 세금을 내진 않는다. 그렇다면 다주택자에겐
한 달 전 미디어오늘 칼럼에서 조심스럽게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이 큰 주목을 받는 현안으로 부상했지만 정작 필자는 이 모든 상황을 걱정스럽게 지켜보고 있었다. 선별적 현금수당이 ‘기본소득’으로 불리는 잘못된 명명에 대한 걱정은 오히려 부차적이었다. 기본소득 연구자로서 세심하게 잘 설계된 기본소득제는 분명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란 확신을 가지고 있었지만, 필자가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이 우리 사회를 이롭게 할 것이란 확신을 가질 수 없었다. 다소 모순적으로 보이는 이런 심리를 가진 이유는 기본소득이란 명칭으로 인해 불가피한 여러
골방에서 구상하고 조심스레 꺼낸 아이디어가 이토록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2주 전 미디어오늘 칼럼으로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 이야기다. 이 논의가 보다 의미 있게 진행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을 보태고자 한다.우선 ‘재난 기본소득'이 관심을 받은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재난과는 달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광범위한 피해'를 주는데도 기존의 방법으로는 피해자를 선별해 신속하게 지원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로 자영업, 돌봄, 제조 공장 등 대면 접촉하는 업종이 경제적 피해를 직접 입고 있지만, 정부 지
지난해 전 국민에게 월 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기본소득 재정 모형을 만드는 데 참여했던 연구자로서 이 글을 쓰기가 조심스럽다. 재난을 계기로 내가 했던 연구를 알리려는 것인가라는 자문이 집필을 주저하게 했다. 그럼에도 공론장에서 다양한 모색이 가능하지 않을까 이 글을 쓴다. 코로나19 바이러스는 2월9일부터 18일까지 국내에서 하루 한 명 이하의 확진자가 새로 확인됐다. 주의할 만한 상황이긴 해도 확진자의 증가세가 두드러지지 않았다. 그러나 확진자 20명이 늘어난 19일부턴 이전과는 다른 양상이다. 20일 53명, 21일 50명
미취학 아동인 아이가 부쩍 온갖 종류의 낱말 뜻을 자주 물어본다. 아직 사회 현안에 대한 대화를 나누긴 어렵지만 아이 눈높이에서 이 세상을 이해하려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자주 고민한다. 요즘 설명하기 난감한 단어가 하나 생겼다. 바로 ‘위성정당’이다. 이 단어를 설명하는 가상 대화를 구성해봤다. “아빠, 위성정당이 뭐야?”“위성정당? 오랜만에 듣네.”“무슨 뜻인데? 지구를 도는 달, 그 위성 맞아?”“응. 그 위성 맞아. 지구가 잡아당기는 힘이 있어 달이 우주로 날아가지 않는 것처럼 위성정당도 스스로 존재할 수 없는 그런 정당
나는 평소 정치혐오에 반대하고,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이지만,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마음 건강을 위해 사회·정치 뉴스를 끊고 싶어진다. 결정타는 민주당 영입 인재 원종건씨의 기자회견문에서 발견한 "명예로운 감투는 내려놓고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겠다”는 문장이었다. 민주당 영입을 ‘명예로운 감투’로, 그 감투를 내려놓는 상태가 ‘자연인’이라는 이 시각 안에 사람들이 정치를 왜 혐오하는지 집약돼 있다. 정치는 자연인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계에서의 명예로운 감투라는 시각이 대중의 의심으로만
처음엔 무력한 발버둥이어도 의미 있는 일이라면 언젠가 큰 변화의 흐름이 만들어질 것이라 믿는 편이다.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의 원작 ‘머니볼’을 좋아했던 이유도 마찬가지였다. 영화에선 거의 다뤄지지 않았지만 원작에서 나름 주목한 인물은 식품공장 경비원이었던 빌 제임스였다. 그는 통계라는 관점으로 야구를 보고, 그 분석을 적은 글로 소소하게 책을 출간했다. 그가 28세인 1977년 스스로 복사하고 스테이플러를 찍어 68쪽짜리 ‘야구초록이란 책을 처음 발간했고, 스포츠 주간지에 작은 1단짜리 광고를 실어 75권을 팔았다. 그게 오늘
경향신문이 지난 12월13일자 신문 1면과 22면에 게재 예정이었던 ‘중국에서의 파리바게뜨 상표권’ 관련 기사가 파리바게뜨 운영사인 SPC의 5억원 협찬을 약속 받고 삭제된 일이 있었다. 이 사건은 같은 달 22일 한국기자협회 경향신문지회가 ‘독자 여러분께 사과드립니다’는 제목의 성명을 통해 알려졌다. 이 사건에 대한 논란이 분분하다. 독립 언론 기치를 내건 경향신문마저 기사로 뒷거래를 하는 행태가 드러났다며 실망하는 이들도 있고, 용기 있는 내부 고발이라며 자정 노력을 평가하는 의견도 있었다.개인적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가장 인상
연말에야 한 해를 돌아보는 게으름을 반성하면서도, 그나마 이 시기에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 걸 보면 인위적인 시간의 구분이 고맙다. 이번 연말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면 지금이 2010년대의 끝자락이다. 십년간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더 극적으로 바뀌었다. 뉴스가 종이와 방송에서 인터넷이란 생소한 공간으로 가게 된 것도 2000년대 전후부터 십여 년간의 격변이었는데 지난 10년간 다시 또 변해 뉴스가 주로 스마트폰으로 소비되고,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된다. 이 기간 기성 매체와 언론인 권위가 추락했다. 어쩌면 당연한
“개가 사람을 물면 뉴스가 아니지만 사람이 개를 물면 뉴스다.”대부분의 저널리즘 교과서가 인용하는 오래된 격언이다. 일반적 현상보단 예외적이고 돌출적인 사건이 뉴스가 된다는 의미다. 그런데 이 격언의 유효기간이 끝난 듯하다. 사회가 복잡해지고 온라인으로 정보가 빠르게 전파되는 지금 시대엔 사람이 개를 무는 드문 일보다 개가 사람을 무는 것처럼 상대적으로 자주 발생하는 일이 중요하다. 특히 ‘무는 행위’ 그 자체보다 그 행위 맥락과 영향이 더욱 중요하다. 장난스레 자신의 반려견을 살짝 깨무는 사진을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올린다고 언론들
어떤 사안에 대한 찬성(지지) 혹은 반대(비판)의 입장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그 과정을 알기 위해선 어떻게 그 입장을 가지게 되었는지를 물어야 한다. 만일 그 과정을, 입장에 대한 근거를 제시하지 못할 경우 그건 입장이라기 보단, 그저 좋아하고 싫어하는 감정에 가깝다. 호불호의 감정을 갖는 것이 나쁘진 않지만, 분명한 것은 그게 '입장'은 아니라는 점이다.호불호와 입장의 개념을 굳이 설명하는 이유는 이 차이가 정치와 공론장의 상태를 진단하는 중요한 잣대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의 정치는 호불호를 유발하고 있을까,
지난해 7월 언론사를 퇴사해 같은 해 11월, 지금 일하고 있는 정책연구소에 취업했다. 기자는 기사를 잘 써야하듯 연구원으로 성공적인 전직을 하려면 ‘연구’를 잘 해야하지만, 연구할 주제를 찾는 일부터 쉽진 않았다. 그러던 중 평생 살아온 서울에서 주거지를 제주도로 옮긴 지난 5월부터 ‘기본소득의 재원안’을 마련하는 연구에 착수했고, 5개월 동안의 연구를 통해 지난 10월28일 ‘2021년부터 모든 국민에게 월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국민기본소득제’ 정책을 발표했다.개인적으로 봤을 때 연구 주제를 정하는 일이 기사감을 찾는 것과
법정에서 변호사가 물었다. “보도 내용을 얘기해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는 밝힐 수 없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말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가 재차 압박했다. “누구인지 얘기를 안 하면 허위 사실의 보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처벌 대상인지는 잘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얘기할 수 없습니다”고 답했다.8년여 전 강용석 변호사가 중앙일보 기자를 무고한 죄로 재판을 받을 당시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변호사와 나눴던 문답의 내용이었다. 당시 강 변호사쪽의 변호인은 내가 썼던 기사가 허위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찾으려 했고, 그 과
한동안 ‘회색론자’로 분류되는 상황에 괴로웠다. 분명 검찰개혁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서초동에도 광화문에도 선뜻 발길이 가지 않는 내 자신을 결코 회색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검은색과 흰색 사이엔 회색만 있지 않다. 다채로운 총천연색들이 존재한다. 왜 그 색채들이 ‘마이너’가 돼야 하고 검은색과 흰색만 ‘메이저’가 돼야 할까. 그게 진정한 나의 문제의식이었다.먼저 다양한 색들을 살펴보기 전에 검찰개혁조차 ‘흑백’ 논란으로 달성될지 의문이다. 검찰개혁 과제라고 일컬어지는 특수부 폐지, 공수처 설치, 수사권 조정, 피의사실공표
세월호 참사 이후인 2015년과 2016년에 한 차례씩 대학교 심리학 교양과목에서 ‘직업으로서 기자'를 소개하는 특강에 간 적 있었다. 서로 다른 대학에서 진행된 두 번의 특강엔 모두 100명이 훌쩍 넘는 학생들이 참석했고, 그 학생들은 과제로 A4 용지 한 장 이상의 소감문을 제출했다. 놀랍게도 두 특강 소감문에서 압도적으로 많이 발견된 문장은 ‘기자라면 그저 기레기인 줄 알았다'였다. 필자의 강연 주제가 언론을 향한 불신·혐오가 아니었는데도 정말 많은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자신의 언론관을 밝혔다. 내 강연을 어떻게 들었을까 궁금해
개인적으로 딸 입시 논란이 있기 전까지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보도들을 심드렁하게 바라봤다. 평소 조국 후보자에게 관심이 없거나 문재인 정부의 사법개혁에 무심한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조국 후보자의 말과 글뿐 아니라 논문까지도 상당히 찾아서 읽은 편이었다. 진보적 법학자로서 그를 평가한다면 ‘법이 가진 자의 수단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법을 통한 정의실현을 위해 싸운 지식인’이라고 봤다. 이렇게 볼 만한 사례가 차고 넘친다. 일례로 한국은 정리해고에 반대해 비폭력적 쟁의를 한 노동자들이 ‘위력에 의한 업무방해죄’로 형사 처벌을 받는 유일한 사회다. 이 일로 많은 이들이 고통을 겪었으나 노조를 ‘귀족’과 동일시해 혐오하는 이 사회에선 관심을 가지는 전문가 자체가 희귀했다. 반면 그는 ‘쟁의행위에 대한 업무방해죄 적용 비판’이란 논문으로 전문가로서 기존 법리에 도전했다. 삼성 X파일의 통신비밀보호법 적용, 소비자불매운동의 법적인 지위 등에서도 활발하게 논문을 쓰며 정의에 부합하는 법을 만들기 위한 그의 노력을 나름 감사해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