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의 광장에서 들어올릴 N개 깃발을 위해 
각자의 광장에서 들어올릴 N개 깃발을 위해 
[ 윤형중 칼럼 ]

한동안 ‘회색론자’로 분류되는 상황에 괴로웠다. 분명 검찰개혁은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하지만 서초동에도 광화문에도 선뜻 발길이 가지 않는 내 자신을 결코 회색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 검은색과 흰색 사이엔 회색만 있지 않다. 다채로운 총천연색들이 존재한다. 왜 그 색채들이 ‘마이너’가 돼야 하고 검은색과 흰색만 ‘메이저’가 돼야 할까. 그게 진정한 나의 문제의식이었다.

먼저 다양한 색들을 살펴보기 전에 검찰개혁조차 ‘흑백’ 논란으로 달성될지 의문이다. 검찰개혁 과제라고 일컬어지는 특수부 폐지, 공수처 설치, 수사권 조정, 피의사실공표 폐지 등이 모두 달성되면 앞으로 검찰은 권한을 남용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수사하며 우리 사회에 소금 같은 역할만 하게 될까. 쉽게 얘기해 저 개혁이 이뤄지면 검찰은 2013년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이 재발할 때 공정하게 수사할 수 있을까. 노동자에겐 엄격하면서 기업인에겐 관대한 수사권 행사도 사라질까. 권력자가 정적을 공격하고 자신의 입지를 강화하고픈 유혹을 가질 때, 검찰 스스로 권력 수단이 되길 거부할 수 있을까.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 연합뉴스
▲ 서울중앙지방검찰청. ⓒ 연합뉴스

저 개혁 과제들이 다 달성된다고 해도 이 질문들에 완벽히 그렇다고 답변하기가 어렵다. 특수부 기능은 다른 곳으로 갈 것이고, 검찰 기능을 일부 공수처와 경찰에 넘긴다고 해도, 전체 사정 권력을 총괄하는 자의 의지를 구조적으로 거스르기가 어렵다. 오랜 기간 축적돼 그것이 문화가 된 구조적 문제는 권한을 일부 재조정하는 수준의 제도 도입으로 완전히 해결하기가 어렵다. 서초동에 모인 민심을 제대로 받들기 위해서라도 개혁된 검찰의 상을 제대로 그려볼 필요가 있다. 조국 장관이 중심이 된 구도에서 이 논의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해 아쉽다.

무엇보다 검찰개혁만큼 중하다고 생각하는 사안들이 차고 넘친다. 한국은 현재 장기 저성장 국면 초입에 있다. 경제 체질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인구구조도 급격하게 변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초고령화 사회로 질주하고 있다. 그 가운데 격차는 점점 확대되고 있고, 기술은 생산성을 높일 뿐 아니라 빠른 속도로 노동을 대체하고 있다. 넘쳐나는 쓰레기와 에너지 생산·소비체계는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해치고 있다. 모두들 더 불안해지는 가운데 혐오가 배태되고 혐오는 차별을 자행한다. 소수자들은 이제 단순히 ‘마이너’라서 힘든 게 아니라 넘쳐나는 혐오의 시선들을 극복해야 한다. 이 사안들이 과연 ‘검찰개혁’보다 가벼울까. 이런 문제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도대체 서초동도, 광화문도 아닌 어느 곳에서 깃발을 들어야 할까.

비슷한 문제의식은 9년여 기자 생활을 할 때도 가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를 ‘아젠다형 저널리스트’라고 생각했다. 어느 부서에 가든, 어느 국면에 있든 일상적 업무를 소화하면서도 내 나름의 어젠다를 저널리즘으로 제기하려 노력했다. 산업계 기자였을 땐 기업 지배구조에 천착했고, 2012년 대선 당시엔 선거일 당일 오전 9시부터 저녁 6시까지만 보장되는 선거권 확대를 위해 ‘투표 못하는 직장들’이란 기획을 하며 연속 보도를 이어갔다. 2013년엔 아동학대와 부동산 사기 문제에 집중했고, 2014년엔 가리왕산과 설악산의 생태보전 문제를 제기했다. 그 연장선상에서 2015년 평창올림픽 분산 개최 기획안을 짜기도 했다. 손배 가압류로 피해를 입는 노동자들을 조명해 노조 혐오를 넘어 노사간 공존 문화를 만들고도 싶었다. 정치부 기자일 땐 정책 중심의 보도를 주장했다. 그동안 나름대로 공론장에서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어젠다를 제기하려 했지만, 결국 우리 사회의 주요 어젠다가 되지 못했고 논의가 숙성되거나 해결에 진전이 있었던 적도 드물었다. 세상이 쉽게 바뀌지 않는 것이야 당연하지만 공론장에서조차 다양한 문제제기가 쉽지 않았다.

▲ 지난 10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열린 ‘제8차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과 손팻말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 지난 10월5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초역 사거리에서 열린 ‘제8차 검찰개혁 촛불 문화제’에서 참석자들이 촛불과 손팻말을 흔들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 연합뉴스

조국 법무부장관을 둘러싼 논란 초기엔 그나마 한국 사회의 ‘계급 불평등’이란 의제가 떠올라 반갑기도 했지만 어느새 그 의제는 사라졌고 광화문과 서초동만 남았다. 조국 장관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아니면 일부 제도를 담은 검찰개혁안에 찬성하는가 반대하는가도 공론장에서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지만 그것만이 전부가 되지는 않았으면 한다. 마침 경향신문이 지난 7일 청년 10명의 릴레이 기고로 “광화문과 서초동 사이… ‘나의 깃발을 들겠다’”는 기획을 내놨다. 흑백이 지배하는 공론장에 다양한 빛을 비추는 좋은 기획이라고 본다. 해시태그를 쓰며 응원하고 싶다. #서초동도광화문도아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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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아 2019-10-09 22:44:33
이건 뭐 기사마다 칼럼마다 거머리 새퀴처럼 붙어서 엉뚱한 댓글 싸지르며
귀신 씻나락 까먹는소리나 해대고 ... 좌우지간 답이 없는 씹선비네.
허풍아! 눈 크게 뜨고 제목부터 천천히 두 번 세 번 읽고 내용 제대로 이해하고 댓글 달아라.

바람 2019-10-09 16:48:02
검찰, 무소불위 권력. 개혁을 위해 장관도 아픔을 이겨내야 하지만, 시민 또한 목숨을 건다. 우리 자녀가 공정한 사회에서 살 수 있도록 목숨을 걸고 나가 응원하는 것이다. 얼굴을 내놓고, 밥벌이를 제쳐놓고 가장 센 권력에 대항하는 것이다. 가장 큰 권력에 대항하는 게 쉬운가. 그대는 국민의 간절함과 고통, 향후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것에 대해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