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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원 검증기구를 만들자
취재원 검증기구를 만들자
[ 윤형중 칼럼 ]

법정에서 변호사가 물었다. “보도 내용을 얘기해준 사람이 누구입니까” 나는 밝힐 수 없었다. “취재원 보호를 위해 말할 수 없습니다” 변호사가 재차 압박했다. “누구인지 얘기를 안 하면 허위 사실의 보도로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나는 “처벌 대상인지는 잘 모르나, 그렇다고 해도 얘기할 수 없습니다”고 답했다.

8년여 전 강용석 변호사가 중앙일보 기자를 무고한 죄로 재판을 받을 당시에 참고인으로 출석해 변호사와 나눴던 문답의 내용이었다. 당시 강 변호사쪽의 변호인은 내가 썼던 기사가 허위라고 주장하며 그 근거를 찾으려 했고, 그 과정에서 취재원을 밝히라고 요구했다. 나는 취재원을 비공개할 권리인 ‘취재원 비닉권’을 주장했다. 재판 결과에 관계 없이 당시 사회 분위기만해도 비닉권 주장이 기사의 신뢰성 훼손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2016년 한겨레신문 정치부 기자로 당시 새누리당을 출입했을 땐 ‘한 여당 의원’, ‘비박계 한 의원’ 등의 익명 취재원을 종종 기사에 썼다. 되도록 실명을 쓰고 싶었지만, 불가피했다. 당시 청와대와 친박계 등과 다른 목소리를 내는 비박계 정치인들은 익명이 보장되지 않으면 웬만해선 입을 열지 않았다. 익명을 보장해도 말하려는 이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기사에 반대쪽 의견은 필요했다. 데스크가 그걸 요구하기도 했고, 현장기자 입장에서도 이견을 두루 반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택한 방법은 ‘이견’을 받을 때까지 계속 전화를 돌리는 것이었다. 그러다 문득 ‘내가 임의로 지어서 한 여당 의원의 발언이라고 써도 누구도 검증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루를 분주하게 보내는 언론사에서 취재 윤리는 대개 기자 개인의 양심에 맡긴다. 하지만 구성원 개개인을 믿는 것은 조직 차원에선 리스크다. 신뢰를 강화할 시스템, 잘못된 행위를 할 가능성을 낮추는 시스템이 언론사 내부엔 부재했다. 조선일보에 종종 등장하는 익명의 ‘한 비문 의원’ 역시 회사 차원에서 실제 누가 해당 발언을 했는지를 검증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건 한국 언론만의 문제는 아니다.

▲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위치한 뉴욕타임스 본사 입구.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 미국 뉴욕시 맨해튼에 위치한 뉴욕타임스 본사 입구. 사진=미디어오늘 자료사진

뉴욕타임즈는 2003년 5월 ‘허위·표절 기사를 사과합니다’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자사의 블레어 기자가 쓴 기사 가운데 취재원을 조작한 기사들을 공개하고 공식 사과했다. 이후 기사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실명 인용 원칙을 확립했고, 익명 인용이 불가피한 세 가지 조건도 정했다. 한국 언론만큼 과하진 않지만 해외 매체도 익명 취재원을 인용해 기사를 쓴다.

이런 익명 보도 관행에 새로운 기점이 되는 사건이 이른바 ‘조국 사태’다. 과거 언론 환경에선 ‘언론이 말하고, 독자는 듣는다’였지만, 지금 같은 소셜미디어 환경에선 ‘언론이 말하고, 독자는 의심한다’는 형국이다.  다시 말해 독자는 계속 언론의 취재 내용을 의심하고, 때론 취재 내용과 어긋나는 사실을 발굴해 적극 기사에 반박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독자들은 이제 언론이 어떤 과정으로 정보를 얻었는지 궁금해 한다. 검찰이 선택적 피의사실 공표로 언론에 사실상 편집권을 행사하지는 않는지, 특정 정치권이 정파적 이해를 위해 선택적으로 흘린 정보로 특정한 사안에 영향을 끼치려 하는지 등이 의심 대상이다. 언론이 스스로 정파 목적으로 익명 취재원에 기대서 하고 싶은 얘기를 하고 있단 의심도 받는다.

이젠 언론인이 취재원에게서 ‘단독’으로 받은 정보에 기꺼워할 것이 아니라, 그 취재원이 어떤 취지와 맥락에서 자신에게 ‘정보’를 줬는지 종합 검토하는 게 요구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2013년 국정원 댓글 조작 수사 당시에 채동욱 전 검찰총장에게 혼외자가 있다는 조선일보 보도와 비슷한 제보가 다시 온다면, 과연 지금 언론은 그 사건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어느 쪽으로 결정하든 분명 이전과 달라야 한다. 언론사는 이 취재원의 제보 취지가 무엇인지, 제보 내용을 기사화할 경우 직접 관련 없는 다른 사안에는 어떤 영향을 줄지 ‘조직’ 차원에서 검토하고, 그 검토 결과의 일부를 공개할 필요가 있다. 그걸 하는 언론사는 소셜미디어 환경에서도 여전히 신뢰를 얻을 수 있다.

▲ 취재. 사진=gettyimagesbank
▲ 취재. 사진=gettyimagesbank

언론이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이제 취재 내용 뿐 아니라, 가능한 취재 과정도 독자에게 공개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언론의 취재과정을 의심하고, 또 궁금해 한다. 물론 여기엔 상충되는 이해가 있다. 신원 노출은 취재원의 안전을 위협하고, 내부고발을 위축시켜 언론 자유를 후퇴시킬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두 이해관계의 절충안으로 ‘취재원 검증기구’를 언론사에 설치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언론사 내부에 독립 기구를 만들어 일정 기간 영향력이 큰 기사들 중의 일부를 골라 취재원을 검증하고, 거기에서 얻은 시사점을 취재원이 노출되지 않는 방법으로 독자들에게 공표하는 방안이다. 특히 신뢰를 잃고 있는 정치와 법조 분야의 보도부터 적용하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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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해 배상이 답이다 2019-10-27 20:06:22
징벌적 손해 배상 말고 뭐가 있는지 모르겠다
최소한 가짜 뉴스만큼은 이젠 징벌적 손해배상을 언론을 대상으로 할수 있어야 한다

바람 2019-10-27 17:51:40
뉴욕타임즈는 2003년 5월 ‘허위·표절 기사를 사과합니다’는 사과문을 게재하고, 자사의 블레어 기자가 쓴 기사 가운데 취재원을 조작한 기사들을 공개하고 공식 사과했다. 이후 기사 신뢰성을 높이기 위해 최대한 실명 인용 원칙을 확립했고, 익명 인용이 불가피한 세 가지 조건도 정했다. 한국 언론만큼 과하진 않지만 해외 매체도 익명 취재원을 인용해 기사를 쓴다. <<< 한국언론도 어느 정도 원칙을 세워야 한다. 특히 법조 기자단의 폐해는 심각하다. 대부분 검찰발이다. 검찰과 피의자는 같은 선상에 있는데, 최종심을 무시하고 검찰발만 보도한다. 이런 법조 기자단 행태는 국민 인권을 살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