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평소 정치혐오에 반대하고, 정치가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내 나름대로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이지만,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마음 건강을 위해 사회·정치 뉴스를 끊고 싶어진다. 결정타는 민주당 영입 인재 원종건씨의 기자회견문에서 발견한 “명예로운 감투는 내려놓고 자연인 신분으로 돌아가겠다”는 문장이었다. 

민주당 영입을 ‘명예로운 감투’로, 그 감투를 내려놓는 상태가 ‘자연인’이라는 이 시각 안에 사람들이 정치를 왜 혐오하는지 집약돼 있다. 정치는 자연인과 동떨어진 그들만의 세계에서의 명예로운 감투라는 시각이 대중의 의심으로만 존재하던 것이 아니었다. 집권당 공천이 유력했던 ‘영입인재 2호’가 자신의 퇴장식에서 비장하게 내놓은 입장이었다. 자신이 무슨 문제에 천착할 것인지 그 문제 해결을 위해 어떤 정책을 내놓을 것인지 말하지 않는 ‘정치 인재’들을 앞다퉈 영입하는 ‘이벤트 정치’는 제발 이번 선거가 마지막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미투 논란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 원종건씨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 미투 논란 의혹이 제기된 더불어민주당 영입 인재 원종건씨가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에서 입장을 밝히기 위해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혐오를 반대한다면서도 정치를 바라보며 회의감이 커지는 이유는 차고 넘친다. 미진하게나마 유권자 의사가 비례적으로 반영되는 투표 제도가 도입되자 지난 총선에서 예상 외로 정당 투표 쪽에서 선전했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가 입국해 정치 활동 재개를 알렸다. ‘새정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나, 누구를 대변할지 명확히 밝히지 않으면서 거대 양당에 싫증나고, 정치를 혐오하는 이들에게 표를 구하는 이미지 전략이 새정치가 아니라는 것은 그 전략을 구사하는 당사자도 분명 알 것이다. 

부족하게나마 도입된 연동형 비례대표제 수혜자가 이미지 정치인일지 현실의 여러 고통들을 대변하는 목소리일지는 정치 공론장에 달렸다. 언론인 역할이 막중한 셈이다.

선거가 가까워지는데도 거대 양당의 선거 의제가 보이지 않는다. 조국·윤석열로 대표되던 집권 세력과 검찰의 쟁투가 추미애·윤석열로 주연만 바뀐 듯하다. 검찰개혁도 분명 중하지만, 심화하는 경제 불평등과 사각지대가 커지는 사회안전망, 기후위기, 사회가 감당 못하는 수준인 저출산·고령화 추세,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 등의 문제보다 압도적으로 중요할까. 왜 이런 문제들은 여전히 정치권에서, 공론장에서 주변부 의제에 불과한 걸까.

이런 구조적 문제에 무력한 정치는 어쩌면 이해가 가능하다. 누가 권력을 가져도 해결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명 정치가 해결 가능한 문제를 방치하거나 조장한다면 유권자와 권력을 획득한 자들 사이의 공감대가 무너지게 된다. 한 해 7조5000억원 규모 사행 사업의 독점권을 쥔 공기업 한국마사회 행태와 이를 방치하는 정치가 그 사례다. 

▲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했다. 사진=노순택 사진작가·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 ‘마사회 고 문중원 기수 죽음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시민대책위원회’는 지난 17일부터 21일까지 오체투지 행진을 진행했다. 사진=노순택 사진작가·고 문중원 기수 시민대책위출처 : 미디어오늘(http://www.mediatoday.co.kr)

한국마사회는 정부가 임명하는 대표이사와 임직원 900여명에겐 평균 1억원에 가까운 연봉을 주는 안온한 직장이지만, 실제 경마업을 작동시키는 조교사, 마필관리사, 기수 등은 명목상 독립사업자일뿐 실제론 고용 관계에 가까운 특수고용직이다. 게다가 마사회가 권한을 준 조교사만 일할 수 있어 철저히 ‘갑을관계’로 종속되고, 갑에게 잘 보이는 것이 을이 기회를 얻는 중요한 방법이란 고발에 피가 서려있다. 

지난해 11월 사망한 문중원씨를 비롯해 7명의 기수와 마필관리사가 경마장의 부조리를 고발하며 사망했다는 게 이 문제를 제기하는 시민대책위 입장이다. 정부는 마치 이 문제를 민간 기업 사건처럼 외면하고 있다. 사행 사업 독점권을 주면서도 상당수 종사자 처우를 불안하게 한 것도 정부이고, 마필관리사와 기수에게 갑질할 권한을 조교사에게 준 것도, 조교사에게 갑질할 권한을 마사회에 준 것도 궁극적으론 정부다. 

민간 기업에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동을 하게 하는 ‘어려운 과제’가 아닌,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을 기대하는 것조차 난망한 일일까. 사행 사업 이익을 잘 나누는 것은 충분히 정부가 할 수 있는 일이다.

선거를 목전에 둔 정치권이 진짜 정치를 하도록 견인하는 역할을 언론이 했으면 하는 바람이 과도한 것일까. 정치가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집중 조명하고, 당장은 어려워도 정치가 꾸준히 개선을 도모해야 하는 의제가 무엇인지 언론이 분별하고 제시했으면 한다. 무엇보다 이벤트 기획자와 이미지 정치인을 외면하고, 정치 현장에서 무슨 의제를 다루고, 어떤 정책을 제시할 것인지를 철저히 따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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