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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에서 기본소득을 연구한 이유
제주에서 기본소득을 연구한 이유
[ 윤형중 칼럼 ]

지난해 7월 언론사를 퇴사해 같은 해 11월, 지금 일하고 있는 정책연구소에 취업했다. 기자는 기사를 잘 써야하듯 연구원으로 성공적인 전직을 하려면 ‘연구’를 잘 해야하지만, 연구할 주제를 찾는 일부터 쉽진 않았다. 그러던 중 평생 살아온 서울에서 주거지를 제주도로 옮긴 지난 5월부터 ‘기본소득의 재원안’을 마련하는 연구에 착수했고, 5개월 동안의 연구를 통해 지난 10월28일 ‘2021년부터 모든 국민에게 월30만원을 지급할 수 있는 국민기본소득제’ 정책을 발표했다.

개인적으로 봤을 때 연구 주제를 정하는 일이 기사감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다소 엉뚱하게 보이겠지만, 내겐 기본소득의 재원 방안을 마련하는 연구에 착수한 배경이 2015년 3월에 기획기사로 썼던 평창동계올림픽 분산개최 기사를 쓰게 된 이유와 비슷했다. 이 기획기사는 2014년 설악산과 가리왕산에서 야생동물의 흔적을 찾던 취재에서 비롯됐다. 단 3일의 스키 활강종목 경기를 위해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인 가리왕산을 파헤치는 결정을 내리고, 야생 산양의 서식지인 설악산 대청봉에 케이블카를 만들려는 시도들은 모두 올림픽 때문이었다. 게다가 800미터 이상의 높이 기준을 충족하는 활강 스키 종목은 동계올림픽이 열리는 지역마다 환경 파괴의 주범으로 꼽혔다. 그렇다고 이미 확보한 개최권을 반납하자는 주장으로는 국민 다수를 설득하긴 어려웠다. 

그런 와중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올림픽을 치르는 방식의 일대 전환이 필요하다며 환경 파괴와 경제적 비용을 줄이는 ‘분산개최’ 방식을 먼저 제안했고, 이 방안에 대한 대중의 관심도 커졌다. 하지만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이를 일축하자 순식간에 이 논의가 사라졌다. 당시 개인적으로는 ‘분산개최’ 방안이 제대로 논의되지 못한 채 사장되는 것이 아쉬웠다. 그래서 마련한 기획이 건축설계사무소를 섭외해 서울과 전북 무주 등의 기존 시설들을 올림픽 기준에 맞는 경기장으로 개조하는 설계를 하고 그 비용을 추산해 구체적으로 얼마의 예산을 절감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기사들이었다.

[ 관련기사 : 한겨레) ‘아이스하키, 올림픽수영장·목동링크 활용 땐 1137억 절감’

마찬가지로 그동안 기본소득에 대해 많은 연구와 논의가 축적됐지만, 아직은 시기상조란 의견이 대세였다. 그 이유는 기본소득의 재원을 마련하기가 어려울 것이란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9월 발간된 유종성 가천대 교수의 논문 ‘기본소득의 재정적 실현가능성과 재분배효과에 대한 고찰’에서 제시된 ‘역진적인 조세지출만 폐지해도 상당한 금액의 기본소득 지급이 가능하다’는 주장에서 새로운 연구의 단초를 발견했다. 그것은 경제에 큰 부담을 주지 않고서도 실시 가능한 기본소득 재원안을 제시한다면 새로운 논의가 시작되지 않을까라는 문제제기였고, 이에 천착한 결과물이 LAB2050이 지난 주에 발간한 보고서 ‘국민기본소득제 : 2021년부터 실현 가능한 모델 제안’이다.  

국민기본소득제는 ‘기본소득’이란 거대한 패러다임을 우리 사회의 현실에 맞게 실현 가능한 방안으로 LAB2050이 만든 정책 이름이다. 기본소득은 주로 보편성, 무조건성, 정기성, 현금성, 개별성 등 지급하는 방식의 특징들로 정의되지만 국민기본소득제는 이런 특징을 포함하면서도 세금제도와 기존의 재정 지출구조를 전면적으로 개혁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궁극적으론 경제적 불평등을 줄이기 위한 적극적인 사전분배 정책의 성격이 강하지만, 개인적으론 이 정책을 설계하면서 기존의 구조에서 어려웠던 개혁을 실현하자는 취지가 강했다. 국민기본소득제가 실시되면 불충분한 금액이지만 사각지대는 없어진다.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사진=gettyimagesbank

 

정부의 지출구조가 기존 환경에선 쉽게 개혁되기 어려워 이전의 구조에서 벗어나 새로운 틀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오래 전부터 제기됐었다. 이를 테면 유류세의 상당액은 교통시설특별회계에 전입되는데, 이 금액이 매년 3조원 이상 남는다. 3조원 이상 남는 이유는 이 특별회계가 주로 쓰이는 것이 도로 건설인데 우리나라에 더 이상 도로를 지을 곳이 마땅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특별회계가 존재하는 한 어떻게든 도로를 더 지어야 한다. 이 뿐만이 아니다. 지금의 복권기금이 쓰이는 구조의 정당성과 공공재인 주파수 매각대금이 사용된 관행이 적절한지도 문제제기가 필요하다. 이런 여러 개혁과제들을 이해관계를 조정해 해결할 수 있을까. 국민기본소득제는 이 모든 개혁을 한꺼번에 추진하는 패키지 정책에 가깝다.

내가 사는 제주시 조천읍 함덕리는 함씨 성을 가진 할머니가 덕을 베풀었다는 설화에서 이름이 유래됐다고 한다. 함씨 할머니는 사람들이 다니기 좋게 돌을 날라 다리를 놓고 있었는데 어느 해엔가 모진 흉년이 들어 마을 사람들이 굶자 죽을 쒀놓고 돌을 날라온 사람에게 죽을 나눠줬다고 한다. 그 결과 동네에는 다리가 생겼고, 누구도 굶어죽지 않았다. 나는 함씨 할머니의 덕을 오늘날의 버전으로 구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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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19-11-10 21:57:40
큰 틀에서는 어는 정도 동의하나, 여기에도 참여와 경쟁이 조금 필요하다. 급진적인 개혁은 불안정성을 키울 수 있다. 지자체마다 조금씩 발전하는 게 어떨까. 미국처럼 주마다 법이 다르듯, 지자체마다 복지가 다르다면 국민의 정치참여(투표)는 늘어나지 않을까. 기득권(세금 문제)을 설득할 수 없을 땐, 조금씩 바꿔가는 것이 답이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