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에야 한 해를 돌아보는 게으름을 반성하면서도, 그나마 이 시기에 돌아보는 기회를 얻는 걸 보면 인위적인 시간의 구분이 고맙다. 이번 연말에 조금 더 의미를 부여하면 지금이 2010년대의 끝자락이다. 십년간 세상도 많이 변했지만, 언론을 둘러싼 환경은 더 극적으로 바뀌었다. 뉴스가 종이와 방송에서 인터넷이란 생소한 공간으로 가게 된 것도 2000년대 전후부터 십여 년간의 격변이었는데 지난 10년간 다시 또 변해 뉴스가 주로 스마트폰으로 소비되고, 소셜미디어에서 공유된다. 

이 기간 기성 매체와 언론인 권위가 추락했다. 어쩌면 당연한 흐름이었다. 뉴스 생산, 발행, 유통 모두를 매체 이외의 기관, 개인이 담당하기에 어렵지 않은 환경이다. 권위만 잃은 것이 아니라 불신의 상징이 되었다. 기자라는 명칭보다 ‘멸칭’이 더 자주 불린다. 문제는 언론계에 문제를 개선할 만한 ‘기반’이 있느냐다. 온라인과 모바일로 인해 뉴스 소비가 늘었는데 언론사는 여전히 먹고 살 길을 못 찾고 있다. 그나마 살 만한 언론사들은 기형화한 수익 모델에 의존한다. 광고 효과 없는 광고를 팔기 위해 기업과 유착하거나 포털에서 클릭수를 늘려보려고 선정적 제목을 단다. 

암울한 상황들을 먼저 나열한 이유는 그래도 희망적인 얘기를 해보고 싶어서다. 언론계가 처한 상황은 암담하지만 여전히 기사를 통해 세상에 필요한 것들이 알려지는 언론의 역할은 여전하다. 그 역할을 잘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발품을 팔며 묻고 듣는 기자들이 있다. 필자는 특히 구조적 문제에 천착하며 사회 문제 개선에 기여하려는 보도들을 눈여겨봤다. 그 기준으로 올 한 해 고맙게 읽은 기사들을 정리해봤다. 

올 3월 한겨레신문의 기획기사 ‘자영업의 약탈자들’(장나래·김완 기자)은 500만명이 넘게 종사하고, 한 해에 100만명이 진입하는 자영업 분야의 고질적 착취 구조를 드러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정보 비대칭이 발생하기 쉬운 시장에서 어떻게 사기가 판을 치는지를 보여주는 보도였다. 이 기사들을 다시 읽다보면 지금은 어떤지 궁금하다. 자영업은 여전히 트렌드가 빨리 변하고 정보 얻기가 쉽지 않을 텐데 창업 컨설팅 업계는 정화됐을까. 정부는 제대로 감독을 하고 있을까. 

필자가 거주하는 제주도와 관련한 기사로는 한겨레 애니멀피플팀이 올 4월 말에 연재한 ‘동물 노예의 섬, 제주’라는 기획기사(김지숙·신소윤 기자, 박선하 PD)들이 돋보였다. 제주의 여러 관광지에서 접하는 ‘열악한 전시용 동물의 상황’을 눈여겨보긴 했지만 기사에서 보여주는 현실은 더 참혹했다. 쇼를 위해 동원되는 코끼리, 돌고래, 바다사자, 흑돼지와 거위 등이 어떻게 무대에 올랐는지, 무대 뒤편에서 동물들이 어떤 모습이었는지가 담긴 기사들을 찬찬히 읽으며 지금은 이 지역의 주된 현안이 아니지만 머지않아 제주에서 ‘자연과 인간의 공존’이 주된 의제가 됐으면 하는 기대를 품기도 했다. 

[ 관련기사 : 한겨레) [영상] 코끼리쇼·돌고래쇼·흑돼지쇼… 노예 동물들의 섬, 제주 ]

지난 11월 종이신문과 인터넷 인터랙티브 웹페이지 양쪽 모두 충격적인 시각물을 보여준 경향신문의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는 기획(황경상·김지환·최민지 기자, 이아름 기획자, 김유진 디자이너)은 새롭지 않은 구조 문제를 어떻게 공론장에 제기할 것인지를 과제로 품는 언론인들에게 해답을 제시했다. 노동자들이 어떻게 사망했는지 꼼꼼히 취재해 새롭지 않은 문제에서 새로운 사실들을 건져냈고, 안전이 아닌 위험이 비용인 사회로의 전환이 요구된다는 ‘대안’도 내세웠다. 이제는 정치가 답을 해야 하는 문제고 그때까지 언론은 계속 다뤘으면 한다. 

▲ 경향신문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인터랙티브 홈페이지 갈무리.
▲ 경향신문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인터랙티브 홈페이지 갈무리.

[ 참고 : 경향신문 인터랙티브) ‘매일, 김용균이 있었다’ 인터랙티브 홈페이지 ]

지난 5월 ‘지옥고 아래 쪽방’에 이어 11월 ‘대학가 신쪽방촌’ 기획을 이어간 한국일보 기획기사(이혜미·김혜영·박상준·박소영·이진희 기자와 미디어플랫폼팀의 안경모·박인혜·한규민·백종호·김정영·오준식)는 가장 가난한 주거 공간이 가장 괜찮은 돈벌이라는 역설을 데이터로 입증했다. 특히 5만원 비싼 창문 방을 얻느냐가 생사의 갈림길이었던 국일고시원 화재 현장에서 기자가 문제의식을 심화시켰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 관련 기사 : 한국일보) 대학가 新쪽방촌

가독성이 높은 편은 아니지만 SBS의 ‘국회 예산회의록 전수분석’은 매년 이어졌으면 하는 보도다. 특히 엉터리 예산 심의나 특혜성 예산 편성에 대해선 해당 정치인에게 끝까지 묻고 따지는 보도가 지속됐으면 한다. 

[ 참고 : SBS) 2019 예산 회의록 전수 분석 ]

한 지역을 치밀하게 탐구해 혐오와 편견에 대항한 시사인의 ‘대림’ 기획(김동인 기자)과 한국판 제인스빌 이야기인 한겨레21의 ‘공장이 떠난 도시, 군산과 울산’(조윤영·방준호 기자) 기획은 지역 탐사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보도다. 기초생활보장법 제정 20주년인 2019년에 유독 많았던 복지 사각지대의 비극적 사건들을 입체적으로 분석하는 기사들도 적지 않았다. 필자가 이 사안에 가진 문제의식들은 대부분 서울신문(이현정 기자)과 한겨레신문(박현정 기자)의 보도들에 기반했다. 이 외에도 미처 언급하지 못한 고마운 보도들이 많았다.

[ 관련 기사 : 시사인) 대림동에서 보낸 서른 번의 밤 ]
[ 관련 기사 : 한겨레) 공장이 떠난 도시 이야기 ]

아무 비용도 내지 않으면서 읽은 이 기사들에, 또 취재한 기자들에게 뒤늦게나마 표현하고 싶다. 그 기사들을 써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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