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오늘

재난 기본소득 논쟁을 제대로 하려면
재난 기본소득 논쟁을 제대로 하려면
[ 윤형중 칼럼 ]

골방에서 구상하고 조심스레 꺼낸 아이디어가 이토록 뜨거운 논쟁으로 이어질 줄 예상하지 못했다. 2주 전 미디어오늘 칼럼으로 제안한 ‘재난 기본소득’ 이야기다. 이 논의가 보다 의미 있게 진행되기 위한 몇 가지 조건들을 보태고자 한다.

우선 ‘재난 기본소득’이 관심을 받은 배경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다른 재난과는 달리 코로나19 바이러스가 ‘광범위한 피해’를 주는데도 기존의 방법으로는 피해자를 선별해 신속하게 지원하기가 쉽지 않았다. 주로 자영업, 돌봄, 제조 공장 등 대면 접촉하는 업종이 경제적 피해를 직접 입고 있지만, 정부 지원은 업종별 지원보단 경제적 취약 계층에 집중됐다. 기존 복지 전달 체계가 있기 때문에 신속하게 지원할 수 있는 장점 때문으로 보인다. 

하지만 전염병이 지속되면 지원을 받은 취약 계층은 여전히 대면 접촉하는 업종에서의 소비를 주저할 것이다. 제조업에서 생산 차질도 여전할 것이고, 세계적으로 총수요가 줄어들어 경기가 심각한 침체 국면에 들어설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그럼에도 한정된 재원을 왜 불필요한 사람들에게도 주는가, 일시적 소득은 소비 성향이 낮다는 경제학자들 지적도 의미가 있다. 평시라면 세제 개혁과 재정 구조조정 등으로 지속가능한 재정안을 설계해볼 수도 있지만, 재난 상황에선 그마저도 불가능하다. 따라서 재난 기본소득이란 아이디어는 다른 모든 대책을 대체하는 배타적인 방안으로 고려되어선 곤란하다. 이번에 18세 이상 성인에게 1인당 160만원 가량의 현금 지급을 발표한 홍콩 정부 역시 임대료 지원, 사업등록세 면제, 관광과 의료 분야 자금 지원 등의 정책을 함께 내놨다. 

‘재난 기본소득을 기본소득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라는 질문도 던질 필요가 있다. 필자 칼럼을 공유하며 공론화에 앞장선 이재웅 소카 대표는 ‘소상공인, 프리랜서, 비정규직, 학생, 실업자 등에 기본소득 50만원을 지급하자’고 주장했고, 신생 정당인 ‘시대전환’은 ‘비임금근로자 650만명, 비정규직 750만명에게 지급하자’고 발표했다. 두 방안 모두 현금을 지급한다는 점을 제외하면 ‘기본소득’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기본소득은 심사하지 않는 ‘무조건성’, 모두에게 지급하는 ‘보편성’, 일정 기간 지속 지급하는 ‘정기성’, 가구가 아닌 개인에게 지급하는 ‘개별성’, 현금으로 지급하는 ‘현금성’ 등 5가지 특징을 주요 요건으로 한다. 여기서 아동수당처럼 ‘보편성’에 어긋나도 특정 인구 집단에 심사 없이 지급하면 ‘범주형 기본소득’으로 분류하기도 하고, 지자체가 현금이 아닌 지역화폐로 지급해도 변형된 기본소득으로 보기도 하지만, 선별과 심사 과정을 없애거나 최소화하는 것은 기본소득의 필수 요건이다. 전 국민에게 현금을 지급하자는 김경수 경남도지사, 이재명 경기도지사, 기본소득당의 제안은 이 요건들 가운데 ‘정기성’을 충족하지 못하지만, 다른 요건들은 갖췄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 요건을 갖추지 못한 방안들은 의미가 없는가. 그렇지는 않다. 피해 대상을 정확하고도 손쉽게 선별할 수만 있다면 기본소득이라 볼 수는 없어도, 그보다 효과적 재난 대책일 순 있다. 하지만 비임금 근로자는 프리랜서나 무급 가족노동자 등을 선별하기가 어렵고, 간접고용이나 특수고용직 등을 포함하는지 여부가 통계를 추산하는 주체마다 다른 비정규직 인원을 특정해 현금을 지급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새 대안을 내는 주체들은 최소한 지급방식과 전달체계를 고려한 현실적 안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그래야 정부 추경안 대안으로서 의미가 있다. 

기본소득은 ‘사회서비스를 구축한다’, ‘인플레이션을 유발한다’, ‘노동유인을 떨어뜨린다’, ‘재정의 지속가능성을 훼손한다’, ‘여러 부작용을 고려하지 않은 인기영합 정책이다’ 등 다양한 비판을 받고 있다. 필자는 어떻게 설계하느냐에 따라 이런 비판 요소를 최소화하는 기본소득안을 만들 수 있단 입장이지만, 지금 재난 상황에 이런 토론이 시급한가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기본소득 분야의 유명한 저서인 ‘21세기 기본소득’의 번역자인 홍기빈 칼폴라니사회연구소장은 페이스북에서 “불필요한 논쟁에 휘말리는 것을 피하려면 기본소득이라는 말 대신 국민재난수당이라고 하는 게 좋을 듯”하다고 밝혔다. 기본소득이란 명명이 지금처럼 주목을 받는 주된 요인이지만, 현실성을 떨어뜨리는 단점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필자가 처음 ‘재난 기본소득’이라고 명명한 취지는 이번 기회에 기본소득 요건을 충족하면서도 재난 대응에 도움이 되고, 나아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재분배 방안을 검토해보자는 것이었다. 

끝으로 이번 논쟁에서 꼭 다뤄졌으면 하는 주제가 ‘재분배’와 ‘증세’에 대한 새로운 시각이다. 한국은 어느 통계로 보나 소득불평등이 악화하고 있고, 가파른 저출산 고령화 추세인데다 빈곤 노인 자살률이 높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수단인 세금, 복지 역할도 미약하다. 조세부담률, GDP 대비 사회복지 지출이 OECD 국가들 가운데 하위권이다. 서로 간 좀 더 신뢰만 할 수 있다면 ‘세금수업’ 저자 장제우씨 표현대로 ‘세금은 비정한 사회를 넘어서는 위대하고도 평범한 도구’로서 역할을 할 수 있고, 신자유주의 첨병이던 IMF 간부들이 ‘IMF, 불평등에 맞서다’란 저작에서 역설했듯 ‘극단적이지 않은 재분배 정책은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주지 않고, 오히려 경제성장의 안정화와 강화에 기여한다는 증거’들이 다수 있다. 그렇다면 ‘재분배 수단으로 기본소득이 적절한가’라는 질문을 나올 수 있다. 총선을 앞두고 그런 논쟁을 치열하게 해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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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 2020-03-10 19:35:28
특별한 재난 상황에서, 현금을 주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공산주의 국가에 둘러싸여 있고, 전쟁의 트라우마를 겪은 사람이 많다. 가장 피해가 큰 대구/경북의 현금지원은 찬성하지만, 나머지는 세제혜택이 더 나아 보인다. All or Nothing 정책은 반대하는 쪽에서 극단적으로 나올 수 있고, 신문은 이걸 매일 대서특필할 것이다. 이는 국민 전체의 불안감을 더 크게 만든다. 국민이 서로 돈의 양으로 비판/비난한다면, 이는 올바른 사회 해결책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