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대통령 탄핵 당시 방송 보도가 공정하지 않았던 것은 의도에 의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계몽주의적이고 선정주의적인 보도 태도 때문이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언론광장(상임대표 김중배)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한국 방송의 성찰과 개혁'을 주제로 4월 월례포럼을 열었다.
박인규 언론광장 총무(프레시안 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포럼에서 첫 번째 발제자로 나선 강형철 숙명여대 교수(언론정보학부)는 "탄핵방송의 불공정성은 '정권과의 유착'이나 '여론의 반영' 등의 이유로 의도된 것이라기보다는 한국 방송 저널리즘의 '선정적 계도주의'가 나타난 것으로 판단한다"며 "공영방송은 중요한 이슈를 제기함으로써 '진보성'을 실천하되 그것에 대해 충분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선정적이고 계도적인 태도로 일관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강 교수는 지난 2004년 대통령 탄핵 당시 방송보도를 '불공정했다'고 결론 내린 '탄핵방송보고서'와, '공정했다'고 평가한 윤호진 한국방송영상산업진흥원 연구원 등 양측 모두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취했다. 당시 탄핵 보도가 '옳지 않은 것을 옳지 않다고 말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소장 기자들의 '독자적인' 판단에 의한 것이었다는 점을 인정하더라도 '중립'이 어느 편에도 서지 않은 채 현상을 바라보는 것이라고 한다면 공정성을 잃었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방송의 채널 가치는 감소하는 반면 공적의무비용은 상승 추세"
강 교수는 "사회가 지상파 방송에 특권으로 제공하는 채널 가치는 감소하는 반면 제작비 상승 등으로 공적의무비용(기회비용)은 상승하고 있다"며 "사회가 보다 질 높은 뉴스 보도를 원한다면 수신료로 공적가치 유지비용을 조달하는 공영방송에게 이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계도성에 입각한 정파적 방송이 수신료 감소로 이어지기 때문에 공정성 문제 또한 수신료로 해결이 가능하다"며 "수신료를 통한 공영방송의 유지는 다양한 의견을 아우른다는 의미에서의 하버마스(독일의 커뮤니케이션 학자)의 '공론장' 개념의 실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지정토론자들은 특히 '공정성' 부분에 대해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장해랑 KBS 1TV 편성팀장은 탄핵방송이 불공정한 것으로 평가된 부분에 대해 "곤혹스럽다"는 반응을 보였다. 특히 "'PD 저널리즘'의 정파성에 대한 일부의 지적에는 동의할 수 없다"며 "다큐멘터리 PD들은 정파성을 배제하기 위해 '객관적 주관'을 동원하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승수 전북대학교 교수(신문방송학과)는 "양극화와 계급화가 첨예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공정성과 같은 통합적이고 균형적인 가치가 성취되거나 유지될 수 있다고 보느냐"며 공정성 개념 자체에 대한 도발적인 문제제기를 했다.
"탄핵방송보고서, 과학적으로는 잘 됐지만 정치적으로는 잘못됐다"
객석에서 토론을 지켜보던 강명구 서울대학교 교수(언론정보학과)는 언론학회의 탄핵방송보고서에 대해 "과학적으로는 잘 됐지만 정치적으로는 잘못됐다"고 평가했다. "(과학적) 합리성의 배후에는 화자의 진정성이 있어야 하는데, 탄핵방송보고서에서는 화자의 정치적 의도가 호도된 채로 포함됐다"는 것이다.
'디지털 컨버전스 환경과 한국 방송의 정체성’을 주제로 발표한 정윤식 강원대학교 교수(신문방송학과)는 공영방송제와 방송의 공익성을 한국 방송 정체성의 상수로 △디지털 전환 △경쟁 및 상업화 △미디어 자이언트 및 외국자본 등을 변수로 설정하고, 케이블 TV, 위성 방송 등 뉴미디어 도입, 디지털 컨버전스 환경 도래 등에 따른 △공익성 논쟁 △정책결정기관 및 규제기관의 관할권 분쟁 △미디어 간 경쟁체제 가속화 등 방송의 정체성 혼돈을 초래하는 요인들을 짚었다.
그리고 한국 방송의 정체성 확립 방안을 △새로운 방송질서의 구도 설정 △정치적 독립 보장 장치 △프로그램의 공익성 강화 방향 △지상파·케이블·IPTV의 경영전략 △수신료 문제를 중심으로 한 방송 재정 문제 △한·미 FTA 협상 결과를 중심으로 한 방송시장 개방 법제와 정책 등으로 구분해 다뤘다.
정 교수는 "IT 산업의 거품 붕괴로 미디어가 도산하고 있는 시점에서 한가한 경쟁론과 공익론이 무슨 소용이냐"며 "미디어 재정과 요금 문제, M&A 문제 등 미디어의 존속 발전 보장을 위한 실용주의적이고 계량주의적인 인식과 접근방법이 미디어 융합이나 뉴미디어 정책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언론광장은 전·현직 언론인과 언론학자, 각계 전문가들이 참여해 언론의 사회적 역할과 한국 사회의 진로에 대해 토론하는 모임으로, 회원뿐만 아니라 관심 있는 일반 시민들도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포럼인 '언론광장 월례포럼'을 정례적으로 열고 있다.
'한국 방송의 성찰과 개혁' 출판기념회 열려…김학천 교수 편저
한편, 이날 월례포럼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한국 방송의 성찰과 개혁'(한국학술정보) 출판기념회를 겸한 열린미디어연구소(소장 김학천) 후원행사가 열렸다. '한국 방송의 성찰과 개혁'은 김 소장(전 EBS 사장, 건국대 교수)의 정년퇴임을 기념해 김 소장 편저로 발간됐다.
이 책은 한국 방송의 역사, 언론사상, 방송정책, 뉴미디어, 방송 기술, 교육, 콘텐츠·규제 등에 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는 논문과 에세이들을 묶었다. 김 소장뿐만 아니라 강명구 교수, 정윤식 교수, 김승수 교수, 황용석 건국대 교수(신문방송학과), 김광호 서울산업대 교수(매체공학과), 이완기 MBC 기술본부장, 임정훈 EBS 제작위원 등이 집필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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