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7일 중앙 언론사 편집국장과 보도국장을 청와대로 초청해 ‘대화’를 갖는다. 청와대는 당초 ‘국민과의 대화’를 가질 예정이었지만 이를 ‘언론과의 대화’로 바꿨다. 청와대는 그 형식이 바뀐 데 대해 “노 대통령이 하고자 하는 말을 진솔하게 하기 위해서는 여론을 대변하는 언론인과 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청와대는 이 자리가 국정 전반에 대한 대통령의 구상과 생각을 밝히고 국장들과의 허심탄회한 대화를 통해 이에 대한 의견을 듣는 자리가 될 것이라고 밝혔다.
‘국민과의 대화’이든 ‘언론과의 대화’이든 국정 최고책임자로서 대통령이 국정운영에 대한 구상을 밝히고 이에 대한 각계의 의견을 청취하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이는 노무현 대통령의 장기이자 특징 가운데 하나다. 집권하자마자 강금실 법무장관 인사 등에 반발한 검찰에 대해 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검사들과의 대화’를 가진 것은 아직도 국민들의 기억에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러나 이번 ‘언론과의 대화’가 과연 ‘국민과의 대화’의 한 방식으로서나, ‘언론과의 대화’ 방식으로서나 적절한 방식인지는 의문이다. 대통령이 언론사 국장들과의 청와대 ‘대화 자리’를 가진 것은 과거 정권에서도 자주 있었던 일이다. 권위주의 정권일수록 국민과의 직접적 대화 대신에 언론사 사주나 사장, 국장들과의 ‘비공식 만남’을 통해 은밀하게 권력의 의중을 전달하고 언론의 ‘협조’를 구하는 방식을 선호했다. 일부 언론사 사주들은 이 자리를 빌려 ‘충성서약’을 하기도 했다.
이번 노 대통령과 ‘국장단과의 대화’가 과연 적합한 방식인가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이런 과거의 음습한 ‘권언관계’가 연상되기 때문만은 아니다. 김대중 정권 이후 언론과의 관계에는 큰 변화가 있었다. 청와대에서 언론사 국장단이나 사장단을 불러 ‘회동’과 ‘대화’를 가졌지만 그것은 과거 정권과는 확연히 구분되는 것이었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이 집권한 이후에도 언론사 국장단과 청와대 회동을 가진 적이 있지만 그 자리는 거의 공개적인 자리였다. 과거와 같은 권언 유착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그것이 대통령과 언론이 만나는 형식으로서는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게다가 그것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전반적인 구상을 밝히는 자리라면 더욱 그렇다. 30여명의 국장들이 빙 둘러 앉은 가운데 대통령이 주도적으로 화제를 이끌어 가는 상황에서 ‘생산적인 토론’이나 ‘본격적인 검증’이 가능할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청와대로서는 국정운영 전반에 대한 대통령의 구상을 밝히고, 이에 대한 국민들의 이해와 협조를 구하는 자리로 이번 ‘대화’를 기획했을 수 있다. 청와대 출입기자들과 일문일답을 갖는 방식이나 방송에 출연해 패널들과 대화를 갖는 방식보다는 ‘품격 있는 대화의 형식’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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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언론이다. 대통령과 허심탄회한 대화의 자리를 굳이 피할 까닭은 없겠지만 대통령과 언론사 편집·보도국의 수장들이 이런 형식으로 대화의 자리를 갖는 것이 과연 적합한 것인지, 바람직한 것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과 청와대는 나름의 ‘필요’와 ‘이유’가 있겠지만,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나 ‘필요’와 일치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당이 이번 ‘언론과의 대화’에 대해 “언론인 30여명이 한 사람씩 발언을 해도 답변시간을 빼면 실제 1~2분도 채 안될 것”이라면서 “언론인들을 들러리 세우고 있다”는 비난성명을 발표한 것은 기실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뼈아픈 지적이다. 들러리나 서는 언론의 모습으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청와대도 언론을 들러리 세우는 방식으로는 국민들의 진정한 이해와 협조를 구하기 어렵다는 점에 유념해야 한다. 이런 ‘언론과의 대화’는 이번으로 끝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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