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정부때 딱 이랬는데”…새 정권 초반부터 불 붙는 서울 집값> (6월19일 매일경제)
서울 집값의 상승세가 심상치 않다. 지난 19일 한국부동산원이 발표한 ‘주간 아파트 가격 동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매매가격은 전주 대비 0.36% 상승했다. 문재인 정부 이후 최대 상승 폭이다.
이번 정부에서 ‘주택 가격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작동하고 있다. 한국은행이 24일 발표한 ‘소비자동향조사’에 따르면 1년 뒤 집값에 대한 주택가격전망지수가 120으로 전월 대비 9포인트 뛰었다. 이 역시 문재인 정부 이후 최고치다.
이를 부추기는 듯한 언론 보도도 늘고 있다. 연일 부동산 가격 상승 기사가 포털 메인에 배치된다. 자극적인 단어로 ‘지금 안 사면 안 될 것 같은’ 불안감을 자극했다. 주로 경제지에서 이러한 상황이 연출됐다. 다음은 지난 19일 이후 한국경제의 네이버 기준 랭킹뉴스 20위권 내 포함된 부동산 기사다.
<“집값 상승, 남 얘기인 줄 알았더니”… 8억 상계동 아파트 ‘들썩’> (6월19일 한국경제)
<“4.7억에 샀는데 5억 넘었어요”… 노원구 아파트에 무슨 일이> (6월20일 한국경제)
<“1년 만에 7억 넘게 뛰었다”… 집값 들썩이는 이 동네> (6월21일 한국경제)
<10억에 팔렸었는데… 마포구 아파트, 네 달 만에 가격이> (6월22일 한국경제)
‘진보 정권’을 부각하는 기사도 순위권을 차지했다. 지난 19일 매일경제의 <“문재인 정부때 딱 이랬는데”…새 정권 초반부터 불 붙는 서울 집값> 기사는 네이버 기준 매일경제 기사 조회수 8위를 차지했다. “좌파 집권하면 부동산 가격 상승 학습효과”라는 댓글에 수백개의 공감이 달렸다.

검색창에 ‘집값’을 검색했을 때도 비슷한 기사가 쏟아졌다. <“아직 덜 올랐다” 기대감 폭발… 한 달 만에 2억 뛴 아파트>(6월21일, 한국경제), <“서울 집값 연말 이후 더 오른다?” 기대 심리 얼마나 높으면>(6월22일, 해럴드경제), <“부동산·코스피 다 오르는데 영끌해야죠”… 가계대출 증가세 심상찮다는데>(6월22일, 매일경제) 등이다.
집값 상승을 부추기는 듯한 보도를 낸 언론사들은 사설에선 오히려 집값 상승을 경고했다. <서울 아파트 7년만의 최고 상승… 文정부 ‘미친 집값’ 재연 안돼>(6월20일 매일경제), <서울 집값 꿈틀·주담대 급증… 패닉바잉 막아야>(6월13일 매일경제) <이 대통령 첫 숙제 서울 집값, 조기 진압 서둘러라>(6월16일 한국경제) 등이다.
미국 예일대 교수 “언론의 논조로 ‘투기적 버블’ 발생 가능”
언론의 기사는 부동산 가격에 얼마나 영향을 줄까.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로버트 실러 미국 예일대 교수는 2015년 논문에서 언론의 보도가 부동산 경기에 충분히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중들이 부동산 시장에 대해 비슷한 생각을 가지도록 언론이 유도하기 때문이다. 정보 접근에 한계가 있는 대중은 언론을 통해 시장 상황을 예측할 수밖에 없다.
로버트 실러 교수는 언론이 가격 상승에 대한 정보를 선택적으로 보도하거나 긍정적인 논조로 전달함으로써 대중들에게 주택가격 상승이라는 기대심리를 자극할 수 있다고 했다. 부동산 경기에 대한 긍정적인 논조가 주류를 이룰 경우 시장에 ‘투기적 버블 현상’(bubble phenomenon)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한국에서 실증 연구가 이뤄진 적도 있다. <부동산 뉴스와 주택경기의 동적 관계에 대한 고찰>(2021, 서정석) 논문이 한국의 온라인 기사 논조를 분석한 결과, 단기적으로 주택 매매 거래량에는 부정적인 영향을, 아파트 가격에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볼 수 있었다. 다만 논문은 “장기적으로는 주택 가격 및 거래량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실제 시민들은 언론 보도가 부동산 가격에 영향을 준다고 인식하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2022년 발간한 ‘부동산 보도 현황과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조사 응답자 1005명 중 84%가 “부동산 보도가 주택가격 상승에 영향을 준다”고 답했다. ‘부동산 시장을 불안정하게 만든 요인’에서도 언론이 정부, 정치권, 투기권에 이어 4위를 차지했다.
“이념화된 부동산 불패 신화… 언론부터 벗어나야”
부동산 보도의 문제는 현장 기자들도 인지하고 있다. 특히 온라인으로 쏟아내는 ‘시세 중계’ 보도가 부적절하다는 데에 공감대가 있다. 언론진흥재단 연구에 참여한 기자도 “시시콜콜한 시장의 흐름을 이렇게 매일 중계할 필요가 있을까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언론사 내 독자위원회에서도 이러한 지적이 나온 바 있다. 2024년 한국경제 독자위 3차 회의에서 박병원 당시 독자위원장(전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시장 분위기에 편승해 부동산 뉴스에서 자극적인 제목을 잡는 경우가 없지 않았다”고 했다. 김도영 위원(서강대 교수)도 “한경의 부동산 기사 제목들이 가격 인상을 부추긴다는 느낌이 있다”고 했다.
언론 현장에서 문제의식이 없는 건 아니다. 그럼에도 같은 문제가 반복되는 이유가 뭘까. 우선 온라인 위주로 바뀐 신문의 유통 구조가 있다. 온라인 구조에선 불안감을 자극하는 쪽으로 제목을 달아야 조회수가 많이 나온다. 집값과 정권의 성향을 연관 짓는 제목도 정치 고관여층의 눈길을 끌 수 있다.
또 언론의 수익 구조가 기업 광고에 많이 의존하고 있다. 주택 경기가 활성화될 때 이득을 보는 기업들이 주요 수입원이라 이해관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입주권 가격도 폭등… 힐스테이트 메디알레 막차 출발>(6월23일 디지털데일리)처럼 기사 형식을 띠고 있지만 보도가 사실상 아파트 광고의 기능을 하기도 한다.

건설 자본이 언론사를 소유하는 경우 노골적인 아파트 홍보 기사가 지면에 실린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등 부동산 관련 기사에 등장하는 전문가 멘트도 기업들 이익에 부합하는 쪽으로 나오기 쉽다. 이러한 전문가 단체 대부분이 기업에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관련 기사 : 서울신문, 대주주 ’호반’ 동정보도 5배 많고 부정 기사는 ‘침묵’]
‘집값의 거짓말’ 등의 책을 낸 김원장 전 KBS 기자는 통화에서 언론이 ‘부동산 불패신화’를 공고히 하는 데 일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원장 기자는 “일단 기사의 총량이 너무 많다. ‘일주일 새 몇억 원 올랐다’는 기사가 쏟아지는데 국민들이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있나”라고 말했다. 이어 “행동경제학적 관점에서 볼 때도 사람은 자신에게 없는 것을 더 크게 본다. 부동산이 없다는 그 감정을 보도가 자극하는데, 이것은 오히려 시장 경제를 방해하는 것”이라고 했다.

시장 원리로 따지면 부동산 가격을 낮추기 위해선 공급을 늘려야 한다. 정부가 공급을 늘린다는 등 정책 발표를 하면 부동산에 대한 사람들의 기대 가격이 하락하고 실제 수요가 하락해 결과적으로 가격이 낮아진다는 것이 교과서에서 가르치는 경제학이다.
하지만 만약 아무리 공급이 이뤄져도 ‘부동산 가격은 오를 것’이라는 기대 심리가 있으면 가격도 떨어지지 않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진보 정권→집값 상승’ 논리를 믿으면 시장 요인과 무관하게 믿음이 현실로 이어지는 ‘자기실현적 예언’이 발생한다. 이러한 의사결정이 이념화돼 있어 비합리적이며 그 핵심에 ‘언론’이 있다는 것이 비판의 핵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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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원장 전 기자는 “서울시 추산 올해 입주 물량은 4만7000가구다. 2000년 이후 네 번째로 많다. 그런데도 집값이 오르는 건 사람들 마음 때문”이라며 “이런 심리를 누가 조장하는가. 언론이 매일 ‘집을 지금 사야 한다’는 프레임의 기사를 내지 않나. ‘부동산은 불패’라는 이념이 하나의 종교적 신념처럼 변질됐다. 언론도 이를 세뇌시키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이 이 프레임에서 벗어난 보도를 더 많이 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래야 이들이 사설에서 주장하는 논조처럼 집값 안정이 이뤄진다는 것이다. 김 전 기자는 “목동만 해도 공급이 얼마나 늘었나. 지난 10년 동안 재건축·재개발이 활발했던 반포, 잠실은 집값이 많이 내려갔나”라고 물은 뒤 “공급으로 해결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언론이 프레임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는 더 큰 영향을 미칠 것이다. 지금이 굉장히 위험한 시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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