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른바 ‘쿠팡 블랙리스트’ 의혹을 처음 제보한 김준호씨는 지난달 24일 경찰에 의해 자택, 휴대전화, 노트북 등을 압수수색 당했다. 또 다른 공익제보자 A씨에 대한 압수수색이 이뤄진 지 한 달여 만이다. 반면 쿠팡에 대한 강제수사는 없었다.
쿠팡 블랙리스트는 쿠팡이 지난 7년간 약 1만6450명에 대한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활용한 의혹을 말한다. 지난 2월 MBC 보도를 통해 쿠팡이 노동자, 언론인, 활동가, 정치인 정보 등을 수집해 활용한 블랙리스트 존재가 드러났다.
그러부터 반년이 지난 지금 경찰의 수사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피해자들과 ‘쿠팡노동자의 건강한 노동과 인권을 위한 대책위원회(쿠팡 대책위원회)’가 쿠팡을 개인정보보호법·근로기준법 위반과 부당노동행위로 고소·고발한 사건, 쿠팡이 공익제보자 2명을 영업비밀 유출과 업무상 배임으로 고소한 사건이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쿠팡이 제보자를 고소하면서 낸 148건의 자료에 블랙리스트는 포함되지 않아, 제보자가 공익신고자로 보호 받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라는 해석도 나온다.
쿠팡은 자사에 비판적 보도를 한 언론사들에도 동시다발적인 소송을 제기했다. 김준호씨는 쿠팡의 ‘일단 고소’ 대응이 쿠팡 물류센터 노동자였던 고 장덕준씨 과로사를 대하는 태도와 닮았다고 말한다. 고인은 산업재해 사망을 인정 받았지만, 쿠팡은 손해배상 책임을 부인하며 유족과 소송을 이어가고 있다. ‘블랙’은 고인의 생전 문자에도 여러 차례 등장했다. 지난달 30일과 5일 김씨와 나눈 대화를 일문일답으로 정리했다.

- 지난 24일 경찰 압수수색을 받았다. 어떻게 압수수색이 벌어졌나.
“아침 9시쯤 경기남부청 수사관들이 집 앞에서 전화를 걸었다. 사건이 접수됐다는 연락도 받지 못하던 차였다. 다른 공익제보자 A씨를 6월 압수수색할 때에는 그에게 ‘당신 김준호에게 이용만 당했다’는 식으로 말했다고 한다. 제 압수수색 영장은 7월에 나왔는데 말이다. 무죄 추정 원칙을 어기고 범죄로 전제하는 수사였다.”
- 쿠팡에서 무슨 일을 했나.
“경기 이천 호법물류센터 HR채용팀(인사팀)에서 2022년 11월부터 지난해 4월까지 일했다. 1년 단위 계약직이었다. 일용직과 계약직 노동자 채용, 일용직 노동자들의 급여 관리, 채용 공고, 협력업체인 셔틀버스과 계약 대금 정산 등을 맡았다. 신입사원 업무 프로세스 교육도 했다.”
- 어떻게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알았나.
“채용 관련 업무를 하면 블랙리스트를 무조건 접할 수밖에 없다. 블랙리스트 파일은 날마다 업데이트됐다. 행정팀이 날마다 보내주는 파일 안에 블랙리스트에 오른 사람이 포함됐다. 그걸 ‘사원평정’이라 부르는 시트에 붙여넣는다. 같은 파일 내 다른 시트에 이름, 생년월일, 연락처를 입력하면 자동 탐색된다. 명단에 오른 사람은 빨간 글씨로 ‘사원 평정’이라고 뜨는데 지원해도 바로 근무불가 통보를 받는다. 이름란에 사람 이름도 아닌 ‘JTBC 작가’가 적힌 걸 보고 블랙리스트임을 깨달았다.”

- 공익제보는 언제 결심했나.
“일할 때부터 폭로하고 싶었다. 업무를 못한다, 업무량이 딸린다, 우리 말을 안 듣는다는 이유로 채용 배제하라는 요청을 받았다. 회사 사무실 내에서 다들 그렇게 얘길 했다. 쿠팡 셔틀버스가 정류장에 멈추지 않아 일용직 노동자가 못 탄 적 있다. 그 분이 회사 책임이니 하루치 임금을 달라고 요구했더니 채용에서 배제됐다. 그 일을 내가 맡았다. 퇴사한 뒤 물증이 없던 차에 같이 일한 동료(또다른 공익제보자 A씨)로부터 연락이 왔다.”
- 지금도 블랙리스트가 작동되고 있을까.
“그렇다. 지금도 저는 계속 채용을 거부당하고 있다. 해당 리스트에 등재된 사람들도 거부 결과가 난다. 최효 쿠팡물류센터노조 인천분회장은 ‘근무 태만’으로 등록돼 있다. 뉴스타파 기자들은 ‘회사 명예훼손’이다. 저는 ‘기타’다.”
- 경찰의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는 어떤가.
“최초 수사관이 올초 저와 변호사에 대한 고발인 조사를 하면서 ‘나는 잘 모른다, 뭐가 문제냐’는 식으로 얘기해서 수사관 교체 요구를 했다. 편파 수사다. 쿠팡풀필먼트는 보도가 나온 뒤 본사 이전까지 했다. 블랙리스트 폭로 뒤 한 달도 안 돼서다. 서버 교체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충분히 있다. 그런데 경찰은 그에 대한 증거인멸 우려와 강제수사는 하지 않는다. 회사를 수사하는 데는 부담을 느끼면서, 회사를 고소한 개인을 수사하는 데엔 압수수색까지 나섰다.”
당시 조사에 동석한 김병욱 법무법인 두율 변호사는 5일 통화에서 “(교체 전) 수사관이 ‘자기는 잘 모르겠다, 회사가 이 정도의 인사관리는 할 수 있는 게 아닌가, 자료 언제까지 받아보고 종결해야겠다’는 식으로 말한 적이 있다”며 “범죄혐의가 없다는 심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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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익제보와 언론보도에 대한 쿠팡의 대응을 어떻게 보나.
“쿠팡 태도는 고 장덕준님 사건만 봐도 알 수 있다. 장덕준 님은 다이어트 보충제라 흔히 말하는 단백질 보충제를 쿠팡에서 시켜 드셨다. 이를 이유로 쿠팡은 그의 사망이 ‘과도한 다이어트’ 탓이라 주장한다. 오마이뉴스가 장씨가 마지막 근무일 뛰어다니며 일하고 가슴을 부여잡는 CCTV 영상을 보도했는데 ‘골프해도 그 정도 걷는다’는 입장을 밝혔다. 거짓으로 고인을 모독하고 있다. 언론보도에도 사과와 재발 방지보다 고소를 먼저 하고 있다.”
쿠팡 측은 공익제보자 고소 등 관련한 질의에 6일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으로 구체적 질의에 답변할 수 없다. 쿠팡풀필먼트는 지난 2월 전 직원 A씨가 민노총 노조간부 B씨(김준호씨)와 공모해 물류센터 운영 설비 관련 자료를 포함한 수십 종의 회사의 기술, 영업기밀 자료를 유출한 정황을 확인하고 이들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등 혐의로 고소했으며 경찰 수사가 진행 중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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