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사건, 사고로 혈육을 잃은 유족. 이들을 취재하러 나서는 기자의 발걸음은 무겁다. 사랑하는 이를 허망하게 떠나 보내고 망연자실한 유족에게 다가서는 일조차 쉽지 않다. 특히 사회 초년생 기자에게 빈소 취재는 낯설면서도 무척 곤혹스러운 일이다. 유족에게 어떤 방식으로 위로의 뜻을 전해야 할지부터 난감하다. 슬픔에 쌓인 이들에게 말을 걸고, 질문하고, 대답을 들어야 한다. 기자 직업에 대한 불만과 불신을 가감 없이 드러내며 문전 박대 당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 ‘기자를 직업으로 선택한 누구나 감당해야 할 몫’으로 여기고 마음을 다잡으려 해도 그게 잘 안 된다. 장례식장에 도착했는데도 선뜻 빈소로 들어가지 못하고 주변에서 한참 머뭇거리는 기자도 있다. 언론사 내부에서는 이런 모습을 기자답지 않고 나약한 태도로 보는 이들이 적지 않다.

물론 생면부지의 타인에게 여간해서 다가가지 못하는 성격이라면 기자가 아닌 다른 직업을 선택하는 게 나을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주저함이 기자로서의 직업 의식과 동료 시민을 향한 애도의 경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권력자가 아닌 취재원을 수단으로만 삼지 않고 예의를 갖춰 대하는 태도, 이건 현재 한국의 언론 수용자 대부분이 기자에게 바라는 것이기도 하다.

▲ GettyImagesBa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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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지 기자 입장에서 보면 빈소 취재는 비효율적이다. 열 번 찾아간다고 하면 한 번 정도 기사화가 될까 말까 하니 말이다. 특히 취재 인력이 크게 부족한 지역신문에서는 그렇다. 석연치 않은 죽음은 사건·사고 현장과 목격자 그리고 유족을 만나본 다음에야 조금이나마 입체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온 세상이 기자들로 넘쳐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의외로 현장에는 기자가 없다. 전국에 유통되는 뉴스는 지역으로 보면 서울에 집중돼 있고 그 중 정치·연예 등 특정 분야에 쏠려 있다. 지역 소식은 가물가물하다. 언론 유통 시장을 장악한 포털과 SNS에서 서울 아닌 지역의 뉴스는 ‘사건 기사’로 도배되다시피 하지만 그 내막을 파헤치는 차별화된 콘텐츠는 드물고, 혹시 있더라도 독자·수용자에게 잘 전달되지 않는다.

‘몇 월 며칠 어디서 아무개가 죽었고, 경찰은 정확한 경위를 조사 중이다’라는 식의 뉴스를 넘어 그 이면을 들여다 보려면 사건·사고 현장 그리고 장례식장을 찾아가야 한다. 알려지지 않은 죽음을 애도하는 곳에 가 본 경험과 그런 곳을 방문하는 동료들의 말을 들어보면, 기자는 물론이고 찾는 사람이 드문 적막한 빈소가 적지 않다. 유족에게 조심스럽게 다가가 기자임을 밝히고 조문의 뜻을 전한 뒤 고인(故人)이 세상을 떠나게 된 길을 되짚어볼 때 꺼림칙한 점은 없는지를 묻는다. 대화가 힘든 상황이면 연락처를 남기고 조용히 빈소를 빠져 나온다.

최근 지인 소개로 ‘조선인촌 주식회사 소년 직공 김오진’이란 제목의 시를 알게 됐다. 이설야 시인이 2021년 낸 <굴 소년들>에 실린 작품으로 일제강점기 인천 금곡리(현 동구 송림동)에 세워진 최초의 성냥공장, 조선인촌 주식회사에서 일하던 노동자 김오진의 죽음(자살)을 다뤘다. 이 시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실제 발생했던 일을 배경으로 쓰여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시인이 참고하지는 않았지만, 그 소식을 전한 신문 기사도 현재 남아있다.

1940년 1월 9일 송림정 182번지에 사는 조선인촌 주식회사 직공 김오진씨가 공장에서 성냥의 원료로 쓰이는 독성물질 인을 다량으로 숨진 일을 조선일보가 그해 1월 12일자 3면에 보도했다. 기사는 물가는 한없이 오르는 반면 월급은 그대로인 스무 살 공장 노동자가 음독자살을 선택한 것으로 기록했다. 이 기사를 통해 일제강점기 전시동원체제 속 식민지 인천 공장 노동자들의 피폐한 삶을 떠올릴 수 있다. “별이 빛나지 않는 밤/소년은 인(燐)을 삼켰지”로 시작하는 이설야 시인의 작품은 “매일 전쟁 중이라 숟가락조차 우리 것이 아니었”던 인천 성냥공장 직공이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문학적 상상력을 통해 현재의 우리에게 전달한다. 시를 읽고 기사를 찾아 보면서 ‘사회적 죽음’은 오랜 시간이 지나도 사람들에게 울림을 준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9일 인천시 중구 운서동(영종도)의 한 오피스텔 공사장에서 32살 임채웅 씨가 소형타워크레인에서 떨어진 300㎏짜리 공구함에 깔려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경인일보 변민철 기자가 빈소를 찾아가 유족을 만나 <서른 둘 아들 앗아간 산재… 유족들은 아직 ‘악몽 속’>이란 제목의 기사를 썼다. 내년 결혼을 앞두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열심히 돈을 모으는 건실한 청년이 끔찍한 산업재해로 세상을 떠났다.

이 기사에서 눈에 들어온 건 “그 누구도 아들의 죽음에 대해 어떤 변명이나 해명도 내놓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 시공사 관계자는 현장을 찾아간 기자의 인터뷰 요청을 “바쁘다”는 이유로 거절했다. 멀쩡한 사람이 하루아침에 세상을 떠났는데 관계자들은 묵묵부답이다. 답답한 마음에 유족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지역신문 기자를 만났다고 한다. 주목받지 못한, 그래서 알려지지 않은 죽음은 전국 각지에서 매일 발생한다. 억울함을 말하고, 자세한 내막을 듣고 싶어도 도움을 받지 못해 가슴만 치며 애태우는 이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그런 죽음에 무뎌지지 않고 예민하게 반응하는 감수성을 기자는 잃지 않아야 한다. 그건 기자가 갖춰야 할 직업의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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