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가 없앤 光州시민들 40일치 물> 지난 3일 사무실로 배달된 조간 신문을 대강 훑어보다 조선일보에서 멈췄다.

이 신문은 1면 톱으로 '정치가 호남 가뭄 키웠다'는 기사를 큼직하게 실었다. 이 지역의 가뭄은 수개월 전부터 지속되고 있어 광주·전남 지역 시민은 물 절약 실천이 이미 일상이다. 수도권에 살아도 호남 지역의 신문을 이따금 읽어 보면 가뭄이 이곳의 최대 현안이라는 점을 짐작할 정도로 지독한 가뭄이 장기간 이어진다.

전국 단위 종합일간지가 왜 이제 와 새삼스럽게 호남 가뭄을 큰 비중으로 다룰까 곰곰이 생각해 봤다. 처음엔 의아했고 나중엔 언짢았다. 지역의 자연 재난을 마치 강 건너 불구경하는 듯한 일부 서울 언론의 그릇된 관점이 보여서다.

그날 치 가뭄 기사는 이렇게 시작한다. "문재인 정부의 4대강 보 해체 결정 등 비상식적 물 정책이 호남권을 덮친 가뭄 피해를 더 키웠다는 분석이 나왔다." 무엇보다 지역의 자연 재난을 정파적 뉴스로 유통하려 한 것이 못마땅했다.

▲ 4월 3일 조선일보 1면
▲ 4월 3일 조선일보 1면

 

'피해 지역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루빨리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기능해야 한다'는 재난보도 준칙을 굳이 들추지 않아도, 물 부족으로 실제 시민이 겪는 어려움이 무엇인지 짚고 실효가 큰 대책을 찾는 일에는 통 관심이 없어 보였다. 광주 시민을 걱정하는 것처럼 제목을 뽑았는데, 정작 기사에 광주 시민 반응은 단 한 줄도 없었다.

가뭄 극복을 위해 광주·전남 지역에서 물 절약 캠페인이 한창이다. 샤워 시간을 절반으로 줄이고, 수압을 40%까지 낮추고, 설거지통을 사용하고, 빨래를 한꺼번에 모아서 하는 실천으로 수돗물 절수율을 높이는 운동이다.

농사철을 앞두고 농업용수 부족 사태를 막기 위해 관계 당국은 백방으로 힘쓴다. 소방관들은 소방용수 확보하는 일에 비상이 걸렸다. 광주시가 지난해 11월 시민정책참여단을 대상으로 물 절약 실천 의견을 묻는 자체 온라인 설문조사를 했는데 응답자(2천277명)의 97.7%(2천226명)는 '가뭄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지난해 광주·전남의 가뭄은 기상 관측이 시작된 1974년 이후 가장 심각했다. 1년 365일 중 281.3일이 기상가뭄이었다. 유희동 기상청장이 "기후 변화를 넘어 기후 위기 상황이 다가왔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런데도 서울 언론은 호남 가뭄을 자연 재난으로 인식하지 않아 보도를 소홀히 했다고 본다. 호남만 알고 서울은 모르는 자연 재난이 장기간 이어져 왔다. 이런 흐름 속에서 대형 신문사의 정파적 보도는 복합 요인을 단순 요인으로 치환하고, 근거 없는 비난과 분노를 부추긴다. 은연중에 지역감정을 건드리는 느낌도 받는다. 문제 해결에 어떤 도움도 되지 못하는 보도였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께 전남일보 4월 5일자 18면 취재수첩을 소개한다. <남탓 공방에 더욱 말라가는 광주·전남>을 쓴 최황지 기자는 "지역의 물 부족 상황을 먼 나라 이야기 듣듯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외지인"들이 가뭄 위기를 "지역이 초래한 사고"로 여기고 "근본적 대책 마련보다 남탓 공방"으로 초점을 흐리는 행태를 비판한다. 광주·전남 지역의 치수 대책이 후진적이어서 가뭄이 들었다는 외부의 비판이 왜 잘못된 것인지 조목조목 반박한다. 물 관리 주체가 일원화 돼 있지 않아 극심한 가뭄에도 각 주체가 '물그릇'을 움켜쥐고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의 개선을 촉구한다. 광주·전남 지역 여론을 알고자 하면 전남일보를 비롯한 이 지역 신문의 홈페이지를 찾아가 '가뭄'을 키워드로 검색해 보면 된다.

조선일보의 가뭄 보도를 보고 회사 동료와 여러 차례 의견을 주고받았다. 팩트체크가 아닌 보도 행태와 관점에 대한 논의가 주를 이뤘다. 동료는 "실질적인 가뭄 대응책을 살피거나 주문하는 것이 아니라, '이 재난이 전 정권 때문이다'라고 하는 전형적인 서울 시각의 정치 기사"로 읽었다고 했다.

또 "'법률 기술자'가 있는 것처럼 '언론 기술자'도 존재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원하는 효과를 극대화하면서 문제 해결은 요원한 일로 남겨두고 (법적) 리스크는 최소화하는 것. 동료가 말한 언론 기술자의 정의다. 꼭 조선일보를 두고 하는 얘기는 아니다. 한국에서 기자라는 업을 선택한 이들은 이번 가뭄 보도를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지난 4~6일 광주·전남 지역에 단비가 내렸지만 완전한 가뭄 해갈을 기대할 정도는 아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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