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력의 대이동을 예고하며 총선이 끝났다. 투표 당일인 15일 주요 일간지들의 선거보도는 외형상 대동소이했다. 그러나 이 속에서도 특이한
기류는 여전히 감지됐다.
사설을 보자. “이번 선거에선 나라가 무엇으로 먹고 살 것이냐 라는 절박한 과제는 뒷전으로
밀린 채 눈물 흘리고 절하고 단식하는 등의 감성적 이벤트 운동이 판을 쳤다(조선).”
“단식·삭발·낙루·3보1배 등의 극단적인 행동에
마음이 흔들릴 게 아니라 과연 이들이 언제 민생을 위해 이런 고행을 했는지 따져봐야 한다(중앙).”
“탄핵 찬반 바람에 이은 ‘박풍’
‘추풍’ ‘노풍’에 휩쓸려 인물과 정책 대결이란 총선 본래의 의미가 크게 훼손됐다. 되살아난 듯한 지역주의 정서에 눈물, 단식, 삭발, 삼보일배
등 감성 이벤트도 유난히 많았다. 오늘 투표장에 가는 유권자들은 그런 감성정치에 이성이 흐려진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동아).”
“눈물·향수자극·단식·3보1배로 인한 일시적 감정이나 근거 없는 불신과 증오의 마음이 자기의 선택을 강요한 것은 아닌지 점검해보아야
한다(경향).”
구구절절 옳은 말이다. 그런데 속셈이 뻔히 보이는 감성적 이벤트와 이를 이용한 바람을 좇아간 것은 신문들 자신
아닌가. 정치인들이 연출한 쇼를 확대 재생산해 이를 선거판의 변수로 만든 책임으로부터 과연 신문은 자유로운가. 선거 막판까지도 실체 없는 바람을
부채질해 특정정당 편들기를 노골화한 신문들이 투표 당일에 와서 바람에 흔들리지 않는 냉정한 선택을 주문하는 것은 병 주고 약 주는 격이다. 같은
날 다른 지면에 실린 기사를 들춰보자.
“바람의 선거…정책은 날아갔다”(조선 6면) “탄핵風이 셀까…朴風·老風이 셀까”(중앙
4면) “風·風·風…’바람난’ 한달”(중앙 6면) “탄핵風…朴風…老風…바람으로 시작해 바람으로 끝났다”(동아 4면) “말따라 風따라 판세
출렁”(경향 2면).
바람을 부추겨온 신문이 투표 당일에서야 바람과 감성의 정치현실을 개탄하면서 유권자들의 냉정한 선택을 주문한
이유는 무엇일까. 모든 책임은 정치권에 있다고 책임을 전가하기 위해서다. 발 빼기에만 능숙한 신문들이 여론을 주도하는 한 아무리 사람이 바뀌어도
우리 정치의 미래는 암울해 보일 뿐이다. (원고 전문은 www.mediatoday.co.kr 참조)
김재영/충남대 언론정보학과 교수·총선미디어연대 미디어평가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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