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지상파3사 연말 시상식이 지상파의 영향력 하락을 여실히 드러냈다. 이대로라면 매년 ‘민망한 시상식’을 반복할 것만 같다.
지난해 연예대상 시청률(닐슨코리아 전국, 1·2부 혹은 1·2·3부 합산 기준)은 MBC 6.8%, SBS 6.27%, KBS 4.5% 순이었다. ‘놀면 뭐하니’와 ‘나혼자산다’ 등이 선전한 MBC 시청률이 제일 높았다. 연기대상 시청률은 SBS 5.05%, MBC 4.15%, KBS 3.65% 순이었다. SBS는 ‘스토브리그’, ‘낭만닥터 김사부2’ 등 드라마 흥행 면에서 지상파3사 중 가장 성적이 좋았다. 가요대전 시청률은 MBC 4.85%, SBS 3.97%, KBS 3.3% 순이었다.
이는 10년 전과 비교해볼 때 극적인 변화다. 2010년 연예대상 시청률은 KBS 18.8%, SBS 18.75%, MBC 15.45%였다. 같은 해 연기대상 시청률은 SBS 15.8%, MBC 15.35%, KBS 13.96%였고, 가요대전의 경우 SBS 13.45%, KBS 11.65%, MBC 10.15%를 기록했다. 한 자릿수 시청률을 기록한 프로그램이 없었다. 하지만 10년 사이 지상파3사 연말 시상식의 ‘존재감’은 절반 이하로 추락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제야의 종 타종행사가 취소되고 시상식도 거리 두기가 진행되며 볼거리가 부족했던 점, 사회 전반적인 우울함이 행사에 반영되며 시상식을 즐기기 어려웠던 점을 고려하더라도 지상파로서는 무겁게 받아들여야 할 지표다. 이제 지상파 시상식과 함께 새해를 맞이하던 시청습관은 사라졌다고 봐야 한다. 이는 2011년 종합편성채널의 등장과 CJ ENM의 성장, 넷플릭스 등 OTT 플랫폼의 대중화에 따른 결과다.
2020년 지상파3사 연기대상 후보작 가운데 OCN ‘경이로운 소문’, tvN ‘철인왕후’, ‘슬기로운 의사생활’, ‘사랑의 불시착’, JTBC ‘이태원클라쓰’, ‘부부의 세계’,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 시즌2, ‘인간수업’, ‘스위트홈’은 없었다. JTBC ‘아는 형님’, ‘싱어게인’, ‘히든싱어’ 시즌6, TV조선 ‘아내의 맛’, ‘미스터트롯’, ‘미스트롯2’, ‘사랑의 콜센타’, ‘뽕숭아학당’, ‘우리 이혼했어요’도 연예대상 후보에 없었다.
시상식에 등장하는 드라마와 예능이 생소한데, 시상식에 몰입될 리 없다. 2020년 MBC 연기 대상작인 ‘꼰대인턴’ 최고시청률이 7.1%였다는 점은 앞으로의 지상파 연말 시상식 전망을 어둡게 한다. MBC는 지난해 경영난으로 드라마 편성을 줄였다. 각종 ‘비대칭 규제’ 속에서 경영위기에 몰리고 있는 지상파는 오히려 예능과 드라마 편성을 줄여야 하는 형편이다.

심의에서 자유롭고, PPL도 없는 경쟁자들이 가득한 OTT 플랫폼에서 지상파의 작품들은 더욱 설 자리를 잃는다. 2020년 CJ ENM은 4091억 원, 넷플릭스는 3331억 원의 제작비를 콘텐츠에 투자했다. 코리안클릭에 따르면 넷플릭스 월간 순 이용자는 2020년 10월 말 현재 725만 명으로 급증했다. 장르물에 익숙해진 세대, 보고 싶을 때 몰아서 볼 수 있는 ‘편성 붕괴의 시대’, 그리고 PPL 없는 오리지널 콘텐츠. 시청의 ‘질’이 다르다.
돌이켜보면 이번 연말 시상식 지표는 지상파3사 채널의 독과점 붕괴에 따른 예견된 결과였다. 방송통신위원회 채널별 시청점유율 조사에서 KBS 1TV·2TV와 MBC, SBS의 합산 시청점유율은 33.13%(2019년 기준)다. 개인 시청시간으로 환산하면 우리는 하루 평균 196분간 고정형TV를 시청하는데 지상파 4개 채널 시청시간은 65분가량이다. 이마저도 연령대가 낮을수록 시청시간은 더욱 줄어드는데, 40대는 56분, 20대는 21분이다. 30대 시청시간은 KBS2-tvN-MBC-JTBC 순이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방송사들은 연말 시상식이 한 해를 정리하고 다음 해를 포석하는 기능으로 작용한다고 생각한다. 연말에 새로운 콘텐츠 찾아보기보다는 시상식 틀어놓는 것이 연말의 풍경이기도 했다. 그러나 점점 시청률이 빠지고 넷플릭스를 찾는 사람들이 늘며 그들만의 잔치에서 한 해의 모든 것을 보여주긴 어려워졌다”며 “연말 시상식이 쓸모가 있는지, 의미가 있는지 질문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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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 평론가는 “지상파 연말 시상식은 방송사 내적으로 의미는 있지만 앞으로는 과거만큼의 위상이 될 수 없고, 조촐한 방송사 행사 행태로 자리 잡을 것”이라 전망했다. 이어 “시청자들이 백상예술대상에 관심을 갖고 의미를 부여하는 이유가 그나마 통합 시상 때문인데, 우리도 이제는 통합 시상식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중들은 권위를 가진 시상식을 원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방송사 한 관계자는 “3사가 오랫동안 진행해왔는데 어느 한 방송사가 먼저 못한다고 빠지기가 어려워 보인다. 설령 웨이브(지상파3사 중심 OTT) 시상식으로 바꾼다 해도 시상식 자체가 수상자를 향해 앞으로도 잘해보자는 의미가 강해서 누구에게 대상을 줄지를 놓고 방송사 간 싸움이 날 게 분명하다”고 했다. 결국 ‘자신들만의 잔치’로, 축소된 규모로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관성대로 10년 전, 20년 전 포맷 그대로 편성하고 내보내다가는 연말 시상식이 자사 콘텐츠의 ‘빈곤’을 드러내는 민망한 블랙코미디의 장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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