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방송 독립을 위한 방송3법 개정안이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1년을 끌어온 방송3법 개정 논란이 국회 문턱을 넘게 됐다. 다만 국민의힘이 대통령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밝힌 상태여서 공은 윤석열 대통령에 넘어갔다.

김진표 국회의장은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 방송법 개정안 대안, 방문문화진흥회법 개정안 대안,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 대안이 가결되었다고 선포했다. 방송법과 교육방송법 개정안은 재석 176인 중 찬성 176인 찬성으로, 방문진법 개정안은 재석 175인 중 찬성 175인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와 함께 노란봉투법(노동조합법 개정안)도 통과됐다.

애초 국민의힘은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을 통해 방송3법 개정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고 밝혀 노란봉투법을 포함한 법안 4건이 모두 통과되는데, 최대 5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본회의 직전 국민의힘이 필리버스터를 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하면서 본회의 개의 2시간도 걸리지 않고 이 법안들이 통과됐다. 민주당의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탄핵소추안이 발의된 것이 원인이 됐다는 설명이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오후 기자들과 만나 “우리당은 필리버스터 하지 않기로 했다”며 “필리버스터라는 소수당의 반대토론 기회마저도 국무위원 탄핵에 활용하겠다는 정치적 악의적인 의도를 묵과할 수가 없다”고 밝혔다고 참석한 기자가 전했다. 발언록을 보면, 윤 원내대표는 “4가지 악법을 국민들께 알리고 싶었지만 방통위원장을 탄핵해서 국가 기관인 방통위를 장시간 무력화시키는 정치적 의도를 막기 위해서 필리버스터 포기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윤 원내대표는 “국민 여러분께 4대 악법에 대해 소상히 설명드릴 기회를 불가피한 사유로 포기하면서 국민여러분께 송구하다는 말씀 다시한 번 드린다”고 밝혔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9일 오후 방송3법 개정안이 가결되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김진표 국회의장이 9일 오후 방송3법 개정안이 가결되었다고 선포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필리버스터가 진행되면 본회의가 계속 진행중이기 때문에 이날 국회에 제출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탄핵소추안도 72시간 내에 표결할 수 있게 된다. 국민의힘은 이런 이유로 어차피 통과될 것으로 예상되는 노란봉투법과 방송3법에 대한 필리버스터를 포기하는 대신, 이동관 위원장 탄핵안 표결을 못하도록 지연하려는 결정을 한 것으로 보인다. 탄핵 소추안이 72시간 내에 표결 해야 하는 만큼 12일까지 표결을 못할 경우 민주당은 정기국회 내에 다시 탄핵안을 발의할 전망이다.

더불어민주당 과방위원들은 법안들의 본회의 통과 이후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의힘은 이동관 위원장을 비호하기 위해 본인들이 공언한 방송법 필리버스터까지 포기했다”며 “이들이 얼마나 끈질기게 방송장악에 집착하고 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밝혔다. 과방위원들은 “그러나 이들이 아무리 억지를 써도 이동관 위원장의 불법 행위, 차고 넘치는 탄핵 사유는 사라지지 않는다”며 “민주당은 앞으로도 방송장악 저지, 공영방송 독립을 위해 당력을 집중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필모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본회의 표결에 앞서 방송3법의 제안설명에서 “공영방송을 국민께 돌려드리기 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며 “공영방송 이사회 수를 늘리고 그 참여를 다양화해 어떠한 정치세력도 이사회를 장악하고 이를 통해 사장을 선출할 수 없도록 하는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정 의원은 “공영방송을 국민의 품으로 돌려주는 정치권력 방송장악 금지법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정 의원은 권력을 장악한 윤석열 정권이 공영방송을 계속해서 흔들고 있다면서 △KBS 이사장과 사장은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해임됐고, 속전속결로 후임 사장 선임절차를 진행 중에 있으며 △MBC의 경우에도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위 권태선 이사장과 김기중 이사 역시 방통위의 부당하고 위법적인 조치로 해임의 문턱까지 가기도 했다고 제시했다.

방송법 일부개정법률안 대안은 KBS 이사회 수를 21명으로 증원하고 이사 추천 권한을 방송 미디어 관련 학회, 시청자위원회 등 다양한 주체로 확대하는 한편 한국방송공사의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설치해서 국민들이 직접 공사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사회는 특별다수제와 결선투표 방식을 거쳐 사장을 임명 제청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방송문화진흥법 개정안도 방송문화진흥위 이사의 수를 21명으로 증원하고 이사추천 권한을 방송 및 미디어 관련 학회, 시청자위원회 등 다양한 주체로 확대하는 한편 방송문화진흥위에 사장후보국민추천위원회를 설치해 국민들이 직접 MBC의 사장 후보자를 추천하고 이사회는 특별다수제와 결선투표 방식을 거쳐 사장을 추천할 수 있도록 했다. 한국교육방송공사법 개정안도 마찬가지 구조로 돼 있다.

본회의에서 법안 표결에 들어갈 때 이미 국민의힘 의원들은 모두 퇴장한 상태였다. 국민의힘은 민주당 탄핵 남발 규탄대회를 열어 이동관 방통위원장 탄핵안 발의와 방송3법 처리를 규탄했다.

▲방송법 개정안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한 결과 재석 176인 중 176인 찬성한 것으로 전광판에 나타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방송법 개정안이 9일 오후 국회 본회의에서 표결한 결과 재석 176인 중 176인 찬성한 것으로 전광판에 나타나고 있다. 사진=국회방송 영상 갈무리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규탄사에서 “민주당이 또다시 탄핵폭거 경제죽이기법, 방송영구장악법을 날치기 처리하면서 국정과 법치의 쇠사슬을 채웠다”며 “여당과 대통령 협치 손을 내밀어 민생부터 살리자고 호소했으나 민주당은 정쟁 폭탄을 터뜨렸다. 정치도의도 포기한 참 나쁜 야당”이라고 비판했다. 김 대표는 “민주당 속셈은 대선불복이라고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다”며 “방송장악의 뿌리가 끊기면 좌편향 공영방송을 앞세운 대국민 선전이 어려우니 방통위 무력화에 집착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무차별 정치공세를 취한 민주당에게 우리 국민은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불과 며칠전까지 신사협정으로 정책경쟁을 약속한 민주당이 또 탄핵안을 발의한 것은 국민에 대한 배신”이라며 “심판의 부메랑 되어 민주당에 돌아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날 민주당이 발의한 탄핵소추안의 당사자인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국회 예결위 회의장에서 “어떠한 법률 위반도 없는데 저를 야당이 숫자를 앞세워서 탄핵하겠다는 것은 민심의 탄핵을 받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 위원장은 방송 3법 통과를 두고 “논리적인 앞뒤가 안맞는 황당한 법안 밀어붙이기에 반드시 민의의 심판과 탄핵이 있으리라고 본다”며 “그 연장선상에서 대통령이 거부권 행사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저는 용산 관계자는 아니지만 감히 그렇게 말할 수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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