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어준씨는… 거짓뉴스로 국민을 분열시키고, 거짓뉴스로 돈을 벌었다. 구상권을 청구하든, 시민들에 대한 피해보상이 필요할 것 같다. (김씨에게) 터무니없는 많은 돈이 지불됐다면 전 경영진에게도 책임을 물어야 하지 않겠냐” (박노황 TBS 이사장)

연합뉴스 대표이사 출신 박노황씨는 지난달 18일 TBS 이사장으로 취임하자마자 이강택 전 TBS 대표이사와 방송인 김어준씨에 대한 법적 조치를 예고했다. 그리고 약 20일 후, 그의 경고는 현실이 됐다. TBS는 이 전 대표와 김씨에게 2억 원 규모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전 대표가 김씨에게 과도한 출연료를 줬으며, 지원폐지 조례가 만들어지는 등 손실을 봤다는 주장이다. 회사가 이미 없어진 프로그램 진행자와 전 대표이사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건 전례가 없는 일이다.

미디어오늘은 지난 13일 이강택 전 대표이사를 만나 전례 없는 소송을 마주한 심경에 대해 물었다. 그는 이번 소송에 대해 “어처구니가 없다”면서 TBS의 칼끝이 구성원에게 향할까 우려하고 있었다. 현 정권에서 언론운동 진영이 제대로 된 대응을 못 하고 있다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아래는 이 전 대표와의 일문일답이다.

▲이강택 전 TBS 대표이사. 사진=미디어오늘.
▲이강택 전 TBS 대표이사. 사진=미디어오늘.

- 박노황 이사장 취임 후 TBS 기류가 급격히 변했다. 김어준씨와 함께 소송도 당했는데, TBS가 이렇게까지 할 거라고 예상했는가.

“당연히 예상 못 했다. 박노황 임명 보도와 인터뷰 내용을 봤을 때 ‘박노황이니, 빈말이 아닐 수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과거 연합뉴스 대표이사 재직 시절 국기 게양식을 강행한 적도 있지 않은가. 과잉 충성하는 경향이 있는 인물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 결국 TBS는 손해배상 청구를 진행했다.

“기본적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고소 논리도 맞지 않다. 서울시민 혈세를 이런 식으로 낭비해도 되는 건가. 이게 배임이다. TBS 내부 고충도 있다. 최근 TBS 내부감사가 진행 중이다. 표적 징계를 해서 일부 직원을 내보내려는 흐름 같은데, 구조조정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TBS를 공포로 몰아넣는 건데, 분노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한테 소송을 제기한 건 대처할 수 있는데, 구성원들은 무슨 잘못인가.”

- 소송 이유 중 하나는 ‘김어준 고액 출연료’다. TBS는 김어준씨가 일반적인 진행자 3배에 달하는 출연료를 받았다고 했다.

“물어보고 싶다. 뉴스공장이 일반적인 프로그램이었다면, 왜 이걸 가지고 끝까지 공격하겠는가. 뉴스공장은 일반적이지 않다. 단순히 수년간 청취율 1위를 했다고 그러는 게 아니다. 수익 면에서도 특별했다. 팟캐스트로 1년에 최소 5억 원 이상을 벌었다. 뉴스공장 때문에 TBS 유튜브도 성장할 수 있었다. 이 때문에 IPTV·케이블에서 받는 프로그램 사용료도 높아졌다. 방송 외적으로 많은 영향을 끼친 것이다. 뉴스공장처럼 채널 전체에 영향을 끼친 프로그램은 찾기 힘들다. 여러 가지 상황을 감안해 출연료를 책정한 거다.”

- TBS 법정제재 건수도 문제가 됐다. 김어준의 뉴스공장이 다수의 법정제재를 받은 건 사실이다.

“기본적으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검열의 성격을 많이 가지고 있다. 공정성 등 조항으로 심의하는 것도 문제라고 본다. 위헌성이 높다. 정치권 추천으로 위원이 구성되는 상황에 대한 의문도 있다. 방통심의위 결정 중 납득할 수 없는 부분도 많다. 경미한 잘못 때문에 법정제재가 내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그리고 TBS 내부에서의 변화도 있었다. 법정제재는 점점 줄고 있었다. 뉴스공장을 공중파에 어울리는 프로그램으로 다듬으려는 노력도 계속됐다. 심의팀이 신설되고, 사내 교육과 제작 가이드라인도 만들어졌다. 뉴스공장에 대한 공격은 낙인찍기라고 본다.”

- 이번 소송과 관련해 김어준 측과 연락한 게 있는가.

“없다. 기본적으로 이번 소송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았고, 소장도 못 봤다. 내용을 보고 혹시 협의해야 하거나 공동 대응해야 할 부분이 있다면 그때 연락을 해봐야지. 지금은 너무 이르다.”

▲ 서울 상암동 TBS 사옥. 사진=TBS
▲ 서울 상암동 TBS 사옥. 사진=TBS

TBS를 둘러싼 내외부 상황은 급격히 나빠지고 있다. TBS 지원폐지 조례가 서울시의회를 통과했으며, 서울시가 요청한 추경안도 부결됐다. 3월부터 제작비도 바닥났고, 외부 진행자들은 최저임금을 받고 있다. 2024년 1월이 되면 TBS는 생존을 넘어 생사를 고민해야 한다. 이종배 시의원을 중심으로 한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측은 TBS를 민영화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다.

- 서울시의회 국민의힘은 ‘TBS 민영화’를 주장하고 있다.

“TBS 구성원들의 미래를 볼모로 잡은 거다. 뉴스 유통 구조를 살펴봐야 한다. 미디어법이 만들어진 후 신문사들이 방송사를 소유하게 됐다. 이들에게 낮 시간대 시사정보를 유통하는 라디오는 매력적으로 보일 수 있다. TBS 라디오를 원하는 세력이 분명히 있을 것이다. 혹여 라디오를 종편 사업자에 넘기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도 생긴다. 이런 흐름에 화가 날 뿐이다.

무엇보다 TBS가 그동안 얼마나 많은 혁신을 이뤄냈는가. 서울·수도권 라디오 채널 경쟁력 2위를 기록했고, 다른 공영방송이 시도하지 못한 비정규직 정규직화를 이뤄냈다. 시민참여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기존 공영방송이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 역할을 보완해왔다. 물론 충분하지 않다고 이야기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건 TBS는 한 단계씩 앞으로 나아가고 있었다. 이런 시도들이 모두 멈췄다. 대표이사를 그만둔 지 1년이 지났는데, 그동안 뭘 했나. 조직이 안정화되는 시점인데, 지금은 일자리 걱정뿐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 TBS 민영화가 가능하다고 보는가.

“일반적으론 불가능하지만 서울시와 시의회 여당의 행태를 보면 가능성이 있다. 막무가내로 밀어붙이지 않은가. 민영화로 인해 TBS가 이뤄온 긍정적 역할이 없어지는 것은 둘째치더라도, 종사자들의 고용 안정성 문제는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아무리 매각 조건을 까다롭게 설정한다고 해도 고용 안정성을 담보할 수 없다.

이 정부가 언론을 대하는 모습을 보면 정치적인 압박과 경제적 압박을 함께 건다. 관영 방송사 하나만 두고 나머지는 다 사영화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TBS는 이 구도로 가기 위한 시험 무대라고 본다. TBS는 정권의 눈엣가시이자 제도적으로 가장 취약한 방송사였다. TBS를 먼저 함락해 사영화를 시험할 수 있다고 여겼을 것이다.”

- TBS 구성원들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방송작가 등 오랜 기간 비정규직으로 있다가 정규직이 된 이들도 있다.

“방송작가들이 좋아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TBS가 정상화되면서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겠다고 기대감을 품던 것도 생각나고… 다른 회사에서 비정규직으로 있다가 ‘TBS에는 희망이 있다’는 생각으로 이직한 친구들도 있다. 새롭게 정규직이 된 직원들은 곧 첫 진급을 한다. 조직이 성장하는 시점인데, 쫓겨날까 걱정부터 하고 있다. 자포자기하는 직원도 있다. 조직이 이렇게 전전긍긍하는 모습을 보면 참을 수가 없다.”

- 서울시의회 국민의힘 시의원들은 완강하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이 이겨 김어준이 TBS로 돌아오면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논리가 강하게 작동하고 있다.

“(웃음) 그렇게 정파적인 시각이 있을 수 있나. 그런 발상을 할 수 있는지도 궁금하고, 공식적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TBS의 독립성과 자율성을 강화해 괜찮은 방송사로 만들겠다는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자신들이 방송을 장악한 경험을 가지고 ‘민주당도 그럴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은데, TBS를 독립적인 존재로 대우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는 걸 보여주는 발언이다. 암담하다.”

▲9월8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TBS 지원폐지 조례안 무효 확인 소송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미디어오늘.
▲9월8일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TBS 지원폐지 조례안 무효 확인 소송 기자회견'이 열렸다. 사진=미디어오늘.

TBS는 이강택 전후로 변하고 있다. 노동이사였던 양승창 PD와 이강훈 기자는 지난 5월 사퇴했다. TBS 이사회는 오세훈 서울시장을 상대로 하는 지원조례 폐지 소송을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결국 전국언론노동조합 TBS지부와 직능단체가 주축이 돼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 노동이사 2명이 사의를 표했다. 일각에선 TBS 이사회의 ‘물갈이’가 시작됐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후 노동이사는 선출되지 않았다.

“노동이사는 다른 언론기관에서 찾기 힘든 제도였다. TBS는 서울시 출연기관의 성격이 있지만, 언론기관으로의 자율성을 갖춰야 한다. 노동이사도 그 조치 중 하나였다. 원래 계획은 이사진을 25인까지 증원해 평의회 모델을 만드는 것이었다. 이사 수를 늘려 서울시에서 보내는 이사의 영향력을 낮추겠다는 뜻이었다. 근데 다 물거품이 됐다. 전향적 시도를 다 퇴색시키니 퇴행이 아니면 뭐겠는가.”

- 최근 TBS 지원폐지 조례를 취소해달라는 행정소송이 진행됐다. 서울시 측은 TBS지부와 직능단체가 원고적격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당초 TBS 이사회에서 소송 논의를 했으나 끝내 무산됐다.

“이사회에서 소송을 제기하지 않으리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어떤 사정이 있건 납득하기 어렵다. TBS 구성원, 그리고 서울시민들을 위해 최소한 법리적 판단이라도 받아봐야 했다. 법은 마지막 호소 수단이다. TBS 이사회는 최상위 거버넌스 조직이다. 당연히 소송을 제기했어야 했다.”

▲Gettyimages.
▲Gettyimages.

‘TBS 문제 해결책’ 질문을 들은 이 전 대표이사는 오랜 시간 언론운동의 한계에 대해 말했다. 서울시의회는 국민의힘이 과반 의석을 차지한 상황이다. 시민사회의 연대가 유일한 희망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현재 언론운동 방법으로는 답을 찾기 힘들 것이라고 단언했다.

- 국민의힘이 서울시의회 다수당을 차지하고 있다. 민주당도 특별한 힘을 갖고 있지 않다. 결국 시민사회 연대가 가장 중요해 보이지만, 쉽사리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현재 언론운동은 마비 상태라고 본다. 예컨대 KBS 이사회에서 사장 해임이 의결됐을 때 이를 막아내려는 움직임이 강하게 있었는가. 2008년 정연주 사장 해임 때와 비교할 수밖에 없다. 당시에는 이사회를 개최 못 할 정도였다. 이 원인을 언론운동에서 찾고 싶다. 언론운동의 위기는 오래전부터 있었고, 한계까지 갔다. 기존의 언론운동이 유효하지 않다는 걸 보여줬다고 본다. 이를 회복하기 위해선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 언론운동이 효과적이지 않게 된 시작점은 무엇인가.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인 것 같다. 당시는 변화의 시작이었다. 하지만 우린 뭘 할 것인지, 어떤 청사진을 만들어가야 하는지, 뭘 준비해야 하는지 전략적으로 고민하지 못했다. 그냥 흐름대로 흘러갔다. 미디어 구도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는데, 언론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준비가 부족했던 것 아닐까. 치열한 고민을 해 누가 개혁을 이끌어갈지 정했어야 했다.”

- 구체적으로 이야기해달라.

“시민들을 개혁의 중심으로 이끌기 위해선 참여를 독려했어야 했다. 하지만 해오던 대로 했다. 언론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시민을 대의하고 있다고 여겼다. 무능했고, 폐쇄적이었다. 시민입장에선 ‘너희도 크게 다르지 않다’고 여길 수밖에 없었다. 주제 선택도 그렇다. 방송사 내부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할 생각은 없었다. 많은 것을 지배구조의 문제로 환원했다. 당시 정부여당은 이런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그 과정에서 시민과 언론의 거리는 멀어졌고, 정당성도 약해졌다. 문제 해결에 대한 시도도 보이지 않았고.

이후 OTT나 유튜브가 등장하면서 새로운 판도가 깔렸지만 준비가 안 됐다. 세대교체를 하거나, 실력을 갖춘 사람이 전면에 섰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그러니 언론사 내부에선 각자도생의 분위기만 퍼져갔다. 내부 구성원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5년간 언론을 운영했던 사람들, 집단적인 자기성찰과 비판이 필요하다.”

- 그럼 언론운동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나.

“새로운 언론운동 지형을 모색해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건 우리가 지나온 과거에 대한 궤적을 살펴보고 자기비판을 하는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운동 지형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전에 하던 방식대로, 이전에 하던 사람들끼리 언론운동을 하면 유의미한 변화를 끌어내긴 어렵다. 과거 언론운동을 이끌었던 이들은 물러나고 새로운 인물이 전면에 나서도록 지원해줘야 한다. 또 현 정권의 언론정책을 비판하는 것은 쉽다. 다만 비판만으론 언론운동을 회복시키기 어렵다. 그 이상을 말해야 한다.”

- TBS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TBS는 구조적으로 취약하다. 구성원들이 지금과 같은 힘든 상황에 적응할 수 있는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다. 위기를 돌파해본 경험이 축적되지 않았다. 물론, 이건 TBS 구성원들의 잘못이 아니다. TBS가 재단법인화되면서 인큐베이팅을 거치는 시기였는데 서울시장이 바뀌고 외부 기류가 급격하게 변했다.

이런 상황에서 ‘위기를 겪으면 힘이 길러질 것’이라는 틀에 박힌 이야기를 하기 민망하지만, 그것 말곤 답이 없다. 우선 스스로를 탓할 이유도 없다. 지금의 상황은 구성원들의 잘못 때문에 벌어진 일이 아니다. 그리고 회복탄력성을 믿어야 한다. 이를 위해선 다치면 안 된다. 그 안에서 시민참여형 프로그램, 로컬리즘 등 어젠더를 개발해야 한다. 언젠가는 다시 혁신을 시도해볼 수 있다. 그때를 기다려야 한다. 지금은 그 수밖에 없다. 힘든 시기다. 구성원들이 하나로 뭉치길 바란다.”

-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과거에 있었던 일을 돌이켜보고 있다. 지난 과정을 진솔하게 살펴보는 중이다. 정리가 되면 책이든 연재든 공개적으로 밝힐 계획이다. 거창한 건 아니지만,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뭔지 찾고 있다. 기후 위기나 노동 문제와 관련해 미디어를 통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있다. 콘텐츠를 만들거나 기사 등을 통해 사회적으로 경각심을 유지시키고 싶다. 이를 위해 내가 뭘 할 수 있을지 고민을 이어 나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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