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8일 임명된 박노황 TBS 신임 이사장은 연합뉴스 사장을 역임할 당시 정권 편향적인 불공정 보도 지시와 편집총국장제 폐지, 징계성 인사 등으로 ‘언론사를 황폐화했다’는 지적의 주인공이다. 특히 삼성 오너 일가 보도에 직접 개입했고, 재임 시절 수 차례 구성원들의 기수 비판 성명을 불러왔다.

박노황 이사장은 박근혜 정부 당시인 2015년부터 2018년까지 연합뉴스 대표이사(연합뉴스TV 대표이사 겸임)를 지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5월부터 2011년 초까지 편집국장을 지냈다. 서울시는 지난 18일 박 신임 이사장 임명을 알리는 보도자료에서 그가 “(연합뉴스의) 공적기능을 강화하고 경영효율화를 통해 매체 영향력과 재정건전성을 향상시켰다”고 했다.

▲박노황 신임 TBS 이사장은 2015~2018년 연합뉴스·연합뉴스TV 사장을 역임했다. ⓒ연합뉴스
▲박노황 신임 TBS 이사장은 2015~2018년 연합뉴스·연합뉴스TV 사장을 역임했다. ⓒ연합뉴스

취임 직후 편집총국장 폐지, 임기 내내 ‘직무대행’ 체제

박노황 전 연합뉴스 사장이 2015년 3월25일 취임 이틀 뒤 처음 단행한 개편은 편집총국장 직제 폐지다. 박 전 사장은 편집국을 콘텐츠융합담당 상무이사 산하로 이관했고, 이에 연합뉴스는 박 전 사장 임기 내내 편집국장(제작국장) 찬반투표를 실시하지 않은 채 편집국장 직무대행 체제를 유지했다. 임기 중 인사평가에서 상향평가를 없애고 하향평가만 실시하는 조치를 하기도 했다.

임기 초반 경영진을 비판하거나 노조 간부, 노조 활동을 했던 인사들에 사전 통보 없는 지방 발령을 내리며 부당인사 논란이 일었다. 발령 대상엔 2012년 ‘공정보도 쟁취 파업’을 주도한 공병설 당시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과 이주영 전 지부장이 포함됐다. 이는 연합뉴스 신입 입사자부터 1997년 입사자까지 14개 기수 기자들의 비판 기수 성명을 불러왔다. 연합뉴스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시국선언에 참여한 언론노조 연합뉴스 지부장을 징계했다.

박노황 전 사장 재임 당시 연합뉴스에선 박근혜 정부 정책과 삼성 오너 일가 리스크를 둘러싸고 불공정 보도가 불거졌다. 특히 박 전 사장은 삼성 관련 보도에서 담당 중간데스크에 직접 전화를 걸어 기사 관련 지시를 하는 등 편집권 독립 무력화 논란을 불러왔다.

이는 연합뉴스가 2018년 구성원 추천으로 위원장을 임명한 연합뉴스 혁신위원회의 ‘과거사 백서’에 나타나 있다. 특히 혁신위는 박노황 전 사장 재임 시절 노사 편집위원회에서 제기된 불공정 보도 논란 사례 모두에 대해 취재기자와 에디터, 편집국장 직무대행 등을 상대로 질문과 답변을 진행한 결과를 담았다.

▲연합뉴스 혁신위원회 과거사 백서 사진
▲연합뉴스 혁신위원회 과거사 백서 사진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땐 사회부장에 수차례 전화
삼성 오너 일가 리스크 때마다 ‘장충기 문자’

박노황 전 사장의 직접개입 논란이 불거진 사건은 ‘이건희 성매매 동영상 수사결과’ 보도다. 2017년 4월 검찰은 이건희 당시 삼성그룹 회장의 이른바 ‘별장 성매매 동영상’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혁신위 백서에 따르면 박 전 사장은 당시 사회부장에게 3~4차례 직접 전화해 “삼성과 관계 등을 거론하며 내용을 바꿔 보도할 것을 주문”해 “송고가 지연되고 내용이 축소됐다.” <검 “동영상 속 행위 성매매 맞다” 결론…이건희 기소중지> 기사가 킬(보도하지 않음)됐고, 이튿날 기사 제목과 부제에서 ‘성매매’가 빠지고 본문이 축소됐다.

이 때 연합뉴스 임원의 이른바 삼성 ‘장충기 문자’도 있었다. 조복래 콘텐츠담당 상무는 2016년 7월 고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의 성매매 보도가 나오자 장충기 당시 삼성 미래전략실 차장에게 문자를 보내 “천박한 기사는 다루지 않는 게 맞다”고 했다.

▲2017년 9월26일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노보
▲2017년 9월26일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노보

혁신위는 그 외 삼성과 관련한 불공정 보도 사례로 △삼성물산 제일모직 합병 △갤럭시노트7 리콜 사태를 꼽았다. 관련해 ‘장충기 문자’ 사태도 일었다.

2016년 9월 삼성전자 갤럭시노트7 출시 당시 배터리 폭발 사건이 잇따르며 리콜 사태가 났다. 혁신위에 따르면 당시 이창섭 편집국장 직무대행은 단독보도를 포함해 여러 건의 기사를 킬하거나 보류했다. 이 과정에서 이 직무대행이 평기자를 편집국장실에 불러 한 시간 가까이 삼성에 불리한 기사를 쓰지 말도록 종용하고 작성된 기사를 송고하지 않기도 했다.

2015년 6~7월 이재용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그룹 경영권 승계를 위한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이 진행됐다. 당시 미국 헤지펀드인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합병에 반대하며 삼성과 분쟁이 벌어졌다. 이창섭 편집국장 직무대행은 합병이 결정된 다음날 장충기 차장에게 “제가 어떤 분을 돕고 있나 알고 싶다”고 문자를 보낸 사실이 밝혀지기도 했다. 당시 담당 기자와 부장, 에디터 등을 혁신위에 이창섭 편집국장 직무대행이 엘리엇을 비판 보도를 수차례 지시해 기사화됐다고 혁신위는 밝혔다.

“연합뉴스에 정부 고위관료 들락거려”

박노황 전 사장 시절 대표 정부 편향 보도 사례로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리즈가 꼽힌다. 혁신위는 “편집국장 직무대행 주재 아래 모든 에디터가 참여한 회의에서 ‘역사교과서 제언’과 ‘바른역사교육’ 기획 아이템을 결정했다”며 “A 에디터는 정부의 국정화 방안을 지지하는 쪽으로 하자는 게 윗선의 방침이었다고 진술했다”고 했다. 연합뉴스는 이에 따라 주제별로 각각 9건과 15건의 기획연재를 보도했다.

혁신위는 당시 “국정화를 향한 정부의 강력한 의지는 고위관료가 연합뉴스 편집국장 직무대행 사무실을 들락거리는 상황을 연출했다”며 “(고위관료가)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도움될 총보자료 등을 전달하면서 보도를 요청했다”고 했다. 국정화 비판이 거센 가운데 연합뉴스는 편집국장 직무대행 지시로 국정 교과서를 ‘단일 교과서’라고 칭하고 제목에 이를 ‘명품교과서’로 규정하는 보도로 비판을 샀다. 일부 지시를 이행하지 않은 사회부 교육팀장을 예고없이 전보발령하기도 했다.

▲2015년 11월11일 당시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공정보도위원회 보고서
▲2015년 11월11일 당시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공정보도위원회 보고서

혁신위는 박노황 체제에서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의혹 보도와 관련해 총괄 지시가 없어 취재와 보도가 소극적이었다고도 지적했다. 주요 언론이 2016년 8월 미르재단에 대한 보도를 쏟아냈지만 연합뉴스는 그해 9월20일 관련 보도를 한 뒤 10월 말에야 취재 태스크포스를 꾸렸다는 것이다.

박노황 체제서 늘어난 보수단체 성명·주장

혁신위는 박노황 전 사장 때 보수단체 성명과 주장을 담은 기사가 대폭 늘어났다고도 지적했다. 혁신위는 “특정 보수단체들을 챙기라는 지시가 종전보다 많아졌고 조복래 전 상무와 편집국장 직무대행이 보수단체가 발표한 성명이나 동정 등 메일을 담당 부장과 기자들에게 전달하는 사례도 잦아졌다”며 “진보단체에 대해서는 부정적 기사들이 송고돼 공정성이 훼손됐다는 논란이 일었다”고 밝혔다.

대표적으로 연합뉴스는 2016년 3월 박근혜 정권의 위안부 합의에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에 대한 부정적 기사를 썼다. 현장 기자는 위안부 관련 집회를 취재해 기사를 썼는데, 데스킹 과정에서 보수단체 성명이 추가됐다는 것. 혁신위는 “보수단체들의 성명은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지지하는 내용보다는 진보단체들을 폄훼하는 내용으로 양적 균형을 맞춘다는 취지에 어긋난다는 지적을 받았다”며 “또한 실체가 모호한 단체들의 성명을 여과 없이 직접 인용했다는 반발을 샀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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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박노황 신임 TBS 이사장(오른쪽)에게 임명장 수여 후 기념촬영 하는 오세훈 시장(왼쪽).

노조탄압 기소… 법원서 무죄
일간지 사설 부른 국기게양식…421명 “퇴진”

박노황 전 사장은 재직 시절 노조탄압 등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 검찰에 따르면 박 전 사장은 취임 2개월 뒤인 2015년 5월 임원 워크숍에서 ‘전국언론노조와 연결된 노조는 회사에 암적 요소다. 암적 요소는 반드시 제거한다’고 말했다. 또 박 전 사장은 2012년 ‘공정보도 쟁취 파업’을 주도한 공병설 당시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장과 이주영 전 지부장을 취임 직후 지방 발령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법은 2021년 9월 박 전 사장 발언이 간부 워크숍에서 나와 노조 활동에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적고, 비조합원 지방발령자도 다수 있다는 이유 등으로 무죄를 선고했다.

박노황 전 사장은 취임 뒤 국기게양식을 개최하고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참배를 해 언론계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의 행보는 당시 일간지에도 기사화됐다. 한겨레는 사설에서 “모든 권위를 비판하고 의심함으로써 자유로운 정신을 높여야 하는 언론기관으로서는 (국기게양식이) 어색한 게 사실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자주 입에 올리는 ‘나라사랑론’에 코드를 맞추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마저 든다”고 했다.

미디어오늘은 혁신위 백서 등에 대한 입장을 묻기 위해 박노황 이사장에게 수차례 연락을 시도했으나 연결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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