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S와 방송문화진흥회(MBC대주주) 이사들이 윤석열 정부를 향해 두 방송사 이사진 해임 추진을 중단하고,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후보자 지명을 즉각 철회하라고 요구했다.

두 공영방송사의 야권 이사들은 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KBS·MBC 방문진 이사 긴급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날 기자회견에선 방송통신위원회가 해임을 추진하고 있는 남영진 KBS 이사장과 권태선 방문진 이사장을 비롯해 12명이 공동 입장을 발표했다. 기자회견 현장엔 KBS 남 이사장과 류일형, 이상요, 김찬태, 정재권 KBS 이사, 방문진 권 이사장과 강중묵, 윤능호, 김석환, 박선아 이사 등이 참석했다.

이사들은 “방송통신위원회(김효재 위원장 직무대행)는 5인 합의제 기구의 틀조차 무시한 채 두 방송사의 이사장과 이사 등 3명의 동시 해임을 강행하고 있다. KBS, MBC 이사장의 동시 해임은 한국 언론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라며 “특히 방통위는 감사원, 국민권익위원회 등이 동원된 해임 사유 조사 등 최소한의 법적 절차나 근거도 없이 해임 밀어붙이기에 혈안이 돼 있다”고 했다. 일련의 과정이 “이동관 새 방통위원장 체제가 들어서기 전에 어떻게든 공영방송 이사진 교체를 마무리하려는 의도라고 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다.

▲2023년 8월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KBS·MBC 방문진 이사 긴급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3년 8월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KBS·MBC 방문진 이사 긴급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이어 “이사들을 해임한 뒤 자신들의 뜻에 맞는 이사들로 빈자리를 채우고 나면, 이 정부는 여러 구실을 만들어 KBS·MBC 사장 교체에 나설 게 분명하다. 공영방송 안팎에 불안과 공포를 조성하고, 갈등도 키울 것”이라며 “국회 청문회를 앞둔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의 ‘공산당 신문·방송, 기관지’ 발언은 이 정부가 어떤 길을 밟을 것인지 보여주는 예고편이다. 이 정부의 입맛에 맞지 않는 언론의 존재를 용납하지 않는 그 순간, 이 땅의 민주주의는 질식하게 될 것이다. 폭주하는 ‘해임 열차’를 최우선으로 멈춰 세워야 한다”고 했다.

이사들은 최근 방송법 시행령 개정으로 추진된 TV수신료(KBS·EBS) 분리징수, 여권의 YTN·MBC 민영화 주장 등을 “노골적인 공영방송 형해화 기도”로 규정했다. 이들은 “수신료를 납부하는 국민의 토론이나 국회의 방송법 심의·개정 절차도 없이 대통령실의 지시와 방통위의 시행령 개정을 통해 위법적으로 밀어붙인 일”이라고 지적하는 한편 “MBC의 소유구조 변경은 국회와 국민의 동의 없이 정부가 일방적으로 밀어붙여서는 절대 안 되는 일이다. 정부가 추진 중인 YTN 지분 매각 역시 공공적 성격의 방송을 영리 기업에 넘겨 방송 생태계에서 공공성을 약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고 판단한다”고 주장했다.

이사들은 윤석열 정부에 △최소한의 법적 절차도 무시한 KBS, MBC 이사 해임 추진을 즉각 중단하고 국가기관이 총동원된 공영방송 장악 음모 포기 △KBS 수신료 분리징수 등 공영방송 토대를 뒤흔드는 조처 즉각 철회 △’언론 장악 기술자’로 비판받는 이동관 방통위원장 후보자 지명 철회와 김효재 방통위원장 직무대행 사퇴 등을 촉구했다. 아울러 국회를 향해 “달라진 미디어 환경에 걸맞은 공영방송의 위상 재정립을 위해 공영방송 지배·재원구조 개선 등 논의를 신속하게 시작해야 한다”며 “논의에 국민적·사회적 참여를 보장하는 것은 필수”라고 당부했다.

▲2023년 8월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KBS·MBC 방문진 이사 긴급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2023년 8월9일 서울 중구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KBS·MBC 방문진 이사 긴급 기자회견’이 진행되고 있다. 사진=노지민 기자

두 이사장은 본인들에 대한 해임이 강행되면 법적 대응에 나서겠다고 예고했다. 방통위는 오는 16일 남 이사장 해임제청안, 권 이사장 해임안을 의결할 전망이다. 이를 위해 방통위는 이날 남 이사장, 14일 권 이사장 소명을 듣는 청문을 계획했지만 당사자들은 해당 절차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방통위는 정미정 EBS 이사, 김기중 방문진 이사 해임도 추진하고 있다.

남 이사장은 이날 방통위 청문에 불출석한 이유를 묻는 질문에 “지난번 월말 정기이사회 이후 휴가기간이었기 때문에 휴가를 다녀왔더니 집에 반송 통지가 붙어 있었다. 중간에 KBS 이사회 사무실로 (통지서가) 왔는데 제가 비상임이라 사무실에서도 전해주지 못하고 반송한 것으로 알고 있다”며 “공식 문서를 받은 적이 없다. 메일은 왔는데 전언으로만 들었기 때문에 나갈 이유가 없다”고 주장했다.

권 이사장은 “8월3일 감사원에 출석해 조사를 받는 도중에 사무실로 청문절차 개시 통보가 왔다고 한다. 몸이 아파서 4일, 7일 사무실을 나가지 못해 청문 통보서를 본 것은 어제(8일)였다”며 “제게 통지된 청문기일은 14일인데, 자료를 보고 대응할 수 있는 시간을 달라고 요청해뒀다. 그 요청이 받아들여지기를 바라고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말했다.

권 이사장은 또한 “KBS 고대영 전 사장이나 방문진 고영주 전 이사장의 경우 상당한 해임 사유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해임할 정도가 아니라는 것이 우리 법원의 판단이었다”며 “해임에 대해 집행정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우리 사법부 판단에 대해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사법부가 현명하게 판단해줄 거라 믿는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선 남 이사장도 “(공영방송 이사들은) 중립성과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이 가장 중요하다. 이사 임기가 보장되어 있고 해임에 관해 규정이 없을 정도로 단단한 보장을 받고 있다”며 “그래서 지금까지 이사장이 해임되면 그 뒤에 본안 소송에서 해임이 무효화됐기 때문에 (법적 대응을 하면) 결국은 이길 것이라고 판단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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