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되는 첫 여권 공영방송 이사로 서울대 법대 출신의 법조인들이 내려왔다. 여권 방송통신위원들이 공모도 거치지 않고 방송문화진흥회(MBC대주주) 이사로 임명한 차기환 변호사, KBS 이사 후보로 추천한 서기석 변호사 모두 판사 출신 변호사로서 과거 보수정권과 연이 깊은 인물들이다.

▲왼쪽부터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 차기환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왼쪽부터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 차기환 변호사. 사진=ⓒ연합뉴스, 미디어오늘 자료사진

공영방송 이사, 세월호 특조위, 5·18 진상조사위 지내며 막말·음모론 논란

정치권 활동이 활발한 뉴라이트 변호사로 꼽히는 차기환 신임 방문진 이사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의 추천으로 이미 세 차례 공영방송 이사를 지냈다. 2006년 한나라당 참정치운동본부 클린정치위원회 부위원장을 맡았던 그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뒤 2009년 한나라당 추천으로 6년간 8·9기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직을 역임했다. 박근혜 정부에선 새누리당 몫으로 2015년 KBS 이사에 임명됐다.

차 변호사는 이명박 정부의 여권 방문진 이사로 활동할 당시 노사가 단체협약으로 만든 정책발표회, 정책 간담회, 중간 신임 평가제 등 조항을 손봐야 한다고 주장해 ‘공정방송 조항을 없애려 한다’는 언론계의 비판을 받았다. 2014년엔 서울시장 선거에 나선 박원순 후보와 배우자를 비방하는 ‘일간베스트’(일베) 등 출처의 글을 SNS에 공유해 공영방송 이사로서 부적격하다는 지적을 불렀다.

이후 KBS 이사로 재직하던 2017년 10월엔 2015년 집회에서 경찰의 물대포 직사살수를 맞은 뒤 사망한 농민 고 백남기씨에 대해 ‘빨간 우의를 입은 인물이 고인을 타격했다’는 음모론을 SNS에 게시했다. 비슷한 시기 법인카드 사적유용 문제도 불거졌다. 2017년 11월 KBS 이사 업무추진비를 감사한 감사원이 차 이사가 448만7730원의 업무추진비를 사적으로 썼다고 발표했다. 현재 방통위가 남영진 KBS 이사장 해임을 추진하는 주된 사유로 ‘법인카드 사용 내역에 대한 국민권익위 조사를 받고 있다’고 밝힌 점에 비춰, 실제 사적 유용이 드러났던 차 변호사 임명이 부적절하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차기환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트위터 갈무리
▲차기환 당시 방송문화진흥회 이사 트위터 갈무리

공영방송 이사 외에 두드러지는 차 변호사의 이력은 각종 진상규명 조사위원 활동이다. 차 이사는 2014년 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위원, 2019년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조사위원을 맡았다. 세월호 특조위원일 당시 차 변호사는 ‘유족들이 희생자 형제자매 특례 입학을 요구한다’고 왜곡하거나, 유가족 단식투쟁을 비하하는 등 물의를 빚었다. 5·18 관련해선 과거 차 변호사가 ‘북한군 광주 5·18 남파’ 주장, ‘법원의 5·18 폄하 일베 회원 기소 비판’ 등을 유포했던 전력이 비판 받았다. 

나아가 차 변호사는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전국민적인 대통령 퇴진 집회가 이어지던 2016년 11월, 집회에 참석한 청소년들을 “사리 판단력과 경험이 부족한 중고생”이라 표현했다. 이후 국정농단 사태 피의자인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비서관의 법률대리인을 맡으며 주요 증거인 ‘태블릿PC’의 증거능력을 부정했다.

헌법재판관 출신 변호사…김기춘, 조선일보, 삼성 등 인맥 네트워크 의혹

KBS 이사 후보인 판사 출신 서기석 변호사는  박근혜 대통령의 추천으로 2013년 4월부터 6년간 헌법재판관을 지냈다. 박근혜 정부 시절 ‘왕 실장’으로 불리던 김기춘 당시 청와대 비서실장, 양승태 대법원장 등과 함께 ‘경남고 동문’ 인맥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그간 서기석 변호사를 수식하는 주요 키워드로는 ‘삼성’ ‘조선일보’ 등 인맥 네트워크가 따라붙었다. 삼성 관련해선 서 변호사가 2008년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 시절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배임 혐의 항소심을 맡았던 사례가 꼽힌다. 당시 재판부는 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증여 및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BW) 저가발행 혐의에 무죄 판결을 했다. 이와 관련해 삼성그룹 비리를 폭로한 김용철 변호사가 본인 저서(삼성을 생각한다)에서 서 변호사를 ‘삼성이 관리하는 판사’로 언급한 것이다.

▲2020년 1월15일 진행된 서중회 신년회 및 정기총회 참석자들. 사진 왼쪽부터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 여상규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조연흥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사진=방일영문화재단 뉴스레터 제45호
▲2020년 1월15일 진행된 서중회 신년회 및 정기총회 참석자들. 사진 왼쪽부터 서기석 전 헌법재판관, 여상규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방상훈 조선일보 사장, 조연흥 방일영문화재단 이사장. 사진=방일영문화재단 뉴스레터 제45호

김 변호사는 그의 책에서 “함께 골프를 친 판사 중에 서기석이 기억에 남는다. 2002년께 몇몇 검사들과 서기석 판사가 나와 함께 골프를 쳤다. 훗날 서기석은 내 양심고백을 계기로 열린 삼성 비리 사건 2심 재판을 맡아서 삼성에 면죄부를 줬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삼성 관리 판사’ 의혹에 서 변호사는 2013년 헌법재판관 후보자로서 출석한 국회 인사청문회를 통해 “삼성으로부터 특혜를 받은 적이 한 번도 없다”며 “황백 전 제일모직 부사장 등 친구들도 고등학교 동기동창으로 만난 것이지 삼성 임원으로 만난 것이 아니다”라고 부인한 바 있다.

‘조선일보’ 관련해선 서 변호사가 조선일보 방일영 장학회 장학생 출신으로, 해당 장학회 졸업생 모임인 ‘서중회’(序中會) 일원이라는 점이 거론된다. 방일영 장학회는 현 조선일보 사장 부친인 고 방일영 전 조선일보 회장이 설립한 방일영 문화재단의 사업이다. 서 변호사는 경찰청이 조선일보와 공동 주최하는 청룡봉사상 심사위원을 맡고 있다. 지난 8일엔 경기도 의정부시에서 진행된 고 방일영 회장 20주기 추모식에 참석했다. 뉴스타파에 따르면 방상훈 사장은 2020년 서중회 신년회에서 “조선일보가 100년을 이어오며 1등 언론의 위치를 굳건히 지킬 수 있었던 데에는 사회 곳곳에서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계신 서중회원 여러분의 진심어린 성원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관으로서 서 변호사는 보수 진영 몫이지만 ‘캐스팅 보트’로 역할한 이력이 주목 받았다. 2018년 ‘양심적 병역거부자’를 위한 대체복무제가 도입되지 않은 것은 위헌이라는 판결이 대표적이다. 서 변호사는 지난 2019년 4월 법률신문 인터뷰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 중 하나로 이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을 꼽았다. 2019년 ‘낙태죄’ 위헌 결정 당시엔 유남석, 이선애, 이영진 재판관과 더불어 헌법불합치 의견을 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심판에선 기각 의견을 낼 거란 전망과 달리 탄핵에 동의했다.

다수 언론은 판사 시절의 그를 ‘법원 내 대표적인 일본법 전문가’로 설명해왔다. 일본 게이오대학 장기해외연수 경험이 있고 일어실력이 뛰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주석 민법’ ‘주석 민사집행법’ 집필에 참여하는 등 사법(私法) 분야에 해박하다는 평가다. 반면 언론, 방송 분야 이력이나 경력은 찾아볼 수 없다.

▲2014년 1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및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사건에 대한 2차 준비절차기일에 김창종 재판관(왼쪽부터),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 서기석 재판관이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2014년 1월15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통합진보당 해산심판 및 정당활동정지 가처분 사건에 대한 2차 준비절차기일에 김창종 재판관(왼쪽부터), 주심인 이정미 재판관, 서기석 재판관이 자리에 앉아있다. ⓒ연합뉴스
▲통진당해산 국민운동본부 출범 준비위원회 보도자료 이미지
▲통진당해산 국민운동본부 출범 준비위원회 보도자료 이미지

차 변호사와 서 변호사 공통의 키워드로는 ‘통합진보당’ ‘국가보안법’을 꼽을 수 있다. 각종 보수단체 활동을 통해 통합진보당 해산을 주장하던 차 변호사는 2014년 정당해산심판 결정을 앞두고 출범한 ‘통진당해산 국민운동본부’의 상임위원장을 맡았다. 그해 서기석 헌법재판관 등 8인의 찬성으로 통합진보당 해산이 결정됐다. 이후 차 변호사가 속한 단체가 통합진보당 이정희 전 대표와 김재연 전 의원 및 당원 전체를 “반국가단체 구성원”으로 칭하며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서울중앙지검에 고발했다. 서 변호사는 헌법재판관 후보자 인사청문회 당시 ‘국가보안법은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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