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수신료 분리징수’ 시행령 공포 이후 처음 열린 KBS 이사회에서 여권 이사들이 줄곧 경영진과 이사진 사퇴를 주장했다. 공영방송 제도 공론조사를 논의 하던 중엔 한 이사가 책상을 밟고 올라서서 고성을 지르기도 했다.

KBS 이사회는 12일 임시이사회에서 수신료 분리징수에 대한 경영진의 대응방안을 보고 받고 ‘2023 KBS 공론조사 실시안’ 의결 여부를 논했다. 이날 KBS 경영진은 방송법 시행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 청구, 한국전력과의 수신료 고지·징수 관련 협의 상황 등을 보고했다.

이 자리에서 검사 출신 변호사인 김종민 이사는 방송법 시행령은 헌법소원 대상이 될 수 없다며 “나무위키를 찾아봤다. 헌법소원이라는 건 공권력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해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가 요건”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장께서 KBS 명운을 걸고 헌법소원 믿고 헌법재판소를 쳐다보겠다는 건데, 나무위키 상식으로만 봐도 방송법 시행령은 공권력 행사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후 김 이사는 과거 헌재가 대통령령인 시행령에 대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사례가 있는지 물으며 “1990년 이후 헌재 결정례가 있는지 판례 번호를 알려 달라. 판례 번호 없으면 전부 개소리”라고 언성을 높였다.

▲KBS 이사회 진행 모습. 사진=KBS
▲KBS 이사회 진행 모습. 사진=KBS

김의철 KBS 사장이 10일 선포한 비상경영의 구체적 안을 묻는 과정에서는 경영진 사퇴 요구가 잇따랐다. 여권 이은수 이사(전 KBS 협력제작국 PD)는 “재정적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시나리오, 플랜을 빨리 마련해야 한다. 구체적으로 사내 직원들에게 설명하고, 이사회에 설명하고, 국민에게도 설명해야 한다”고 지적하다가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사장과 경영진이 그만두는 게 좋다. 늦었을 때 제일 빠르다. 경영진이 책임지고 이사들도 책임져야 한다”고 요구했다.

역시 여권이자 KBS 출신 이석래 이사(전 KBS미디어텍 대표이사)는 “집행부(경영진) 질타할 게 아니고, 이 시간 이후 이사회 해체하고, 이게 안 된다면 저 나름대로 제2의 행동을 보이겠다”고 말했다.

이어진 KBS 공론조사 안건 논의 시간엔 아수라장에 가까운 난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언론학 3대 학회(한국언론학회·한국방송학회·한국언론정보학회)에서 각 2명씩 6명으로 공론조사위원회를 구성해 공영방송에 대한 필요성, 공적 책무 우선 순위, 재원 조달 방안 등을 숙의한다는 내용이다. 소요 예산으로는 공론화위 운영, 토론회, 조사 용역, 생방송 중계 등에 총 11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다.

안건을 올린 남영진 이사장(야권, 전 지역신문발전위 부위원장)은 “대통령실은 국민제안 참여자 96%가 (분리징수) 찬성이라고 했고, 방통위의 10일간 입법예고 공개토론에선 90%가 반대했다”며 “중립적이고 신뢰할 만한 기관이 직접 공론화해서 기초자료라도 확보하고 시청자에게 알려줄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에 이사들 사이에선 공론조사 시행에 대한 적절성, 이를 주최·주관하는 주체 등에 대해 여러 의견이 나왔다. 권순범 이사(여권, 전 KBS 시사제작국장)의 경우 안건 발의를 이사장이 했는데 그 내용은 KBS 경영진이 작성했다면서 “차명 발의”라고 문제 삼았다.3대 학회로 꼽힌 곳 모두 수신료 분리징수에 부정적이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서울 영등포구 KBS 사옥. 사진=KBS
▲서울 영등포구 KBS 사옥. 사진=KBS

반면 야권 정재권 이사(전 한겨레21 편집장)는 “10억 원이 넘는 공론조사 가치와 비용 문제는 엄격하게 따져볼 필요가 있다”며 “이사들이 직접 참여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견제하고 좀 더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공론조사 길이 열릴 수 있다”고 말했다. 윤석년 이사(야권, 광주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학회는 순수한 학술모임이지 이념적, 정당적 편견을 갖지 않는다”며 “학회에서 많은 분들이 공론위원회를 구성하면 중립적이고 공정한 사람을 인선할 거라 생각”한다고 했다.

김종민 이사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시민·노동자·학계·공영방송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해 수신료 문제를 논의하자고 주장한 것을 언급하다 “민주당 비례대표인 정필모 전 KBS 부사장을 보면서 KBS와 민주당의 강력한 정언유착 의심을 떨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이어 “오해의 소지가 있는 것을 굳이 이사장께서 총대를 매겠다면 매시라”면서 “이사장께선 더 이상 이사장의 자격이 없다. 당장 사퇴하시는 게 맞다”고 했다.

난동은 공론조사안 논의가 1시간20분가량 이어질 무렵, 남 이사장이 “충분히 이야기를 했는데 안 되면 표결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 뒤에 벌어졌다. 김종민 이사가 책상 위로 올라가 발을 구르며 “지금부터 남영진 이사장은 이사장 자격이 없다”고 소리친 것이다.

김 이사는 한동안 책상 위에 올라 언성을 높이며 남 이사장 사퇴를 주장했고, 이후 김 이사를 비롯한 여권 이사들 모두 회의장을 떠나면서 회의가 잠시 중단됐다. 공론조사안은 다음 주 임시이사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했다.

한편 이날 방송통신위원회는 2020년 TV조선 재승인 고의감점 의혹으로 재판 중인 윤석년 이사 해임제청안을 의결했다. 윤 이사는 “이사회가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겠다”며 “어려운 시기 떠나게 되면서 산적한 과제를 떠안을 이사, 집행부 분들께 죄송한 말씀을 드린다”고 인사했다.

KBS 이사회는 정치권 관행에 따라 여야 7대4 비중으로 구성돼왔고, 지금은 문재인 정부 당시 임명된 이사들이 내년 8월까지 남은 임기를 수행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이사진이 총사퇴하면 여권 우위로 이사회가 재편될 수 있다. 과반 이사들은 KBS 사장에 대한 해임제청도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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