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KBS 본관. ⓒ KBS
▲ KBS 본관. ⓒ KBS

방송법상 내야 하는 TV수신료를 굳이 전기요금에서 분리한 정부도, 수신료 분리징수로 재원이 줄면 공적 역할이 위축된다는 KBS도 모두 ‘시민 권익’을 근거로 내세우고 있다. 자본·정치권력에 종속되지 않은 공영방송 필요성에는 언론·사회계 이견이 거의 없지만 그간 KBS가 얼마나 존재가치를 증명해왔는지에 대해선 평가가 엇갈린다. KBS가 수행해야 할 공적 과제와 밀접한 이들의 평가는 어떨까.

미디어오늘은 KBS가 공적책무를 실현하고 있다고 밝힌 사안 가운데 △공영·공익채널 운영 및 장애인·소외계층을 위한 프로그램 △장애인을 위한 방송 서비스 △재난방송 주관방송사로서의 역할 △지역성 구현 △상업방송과 차별화되는 콘텐츠 등에 대해 얼마나 체감하고 있는지 관련 분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평가를 들었다. 17~18일 분야별로 장애인 방송 3명, 한민족방송 2명, 지역·재난 2명, 비상업적 콘텐츠 2명(환경·역사 각 1명) 이야기를 들었다.

▲장애인과 사회적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KBS 제3라디오 프로그램들. 사진=KBS 홈페이지
▲장애인과 사회적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KBS 제3라디오 프로그램들. 사진=KBS 홈페이지

KBS의 대표적 공익방송으로는 장애인·소외계층 대상의 제3라디오가 꼽힌다. 화면해설, 수어방송 등 장애인 방송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KBS 역할이다. 장애당사자들은 장애인을 위한 미디어가 필요하지만 적극적인 콘텐츠 개발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수신료 분리징수를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강윤택 시각장애인권리보장연대 공동대표(시각장애)도 “제3라디오는 장애인들을 위한 중요한 매체다. 연세 많은 분들은 많이 듣는다. 그러나 주변 젊은 사람들은 요즘 누가 라디오만 듣느냐는 느낌이다. 발전과 변화, 3라디오 만의 콘텐츠가 없다”고 했다. 그는 “프로그램 개편 때마다 나오는 사람, 다루는 내용이 비슷하고 방송이란 인프라를 쓰면서 내용이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며 “변화하는 장애인 패러다임이 방송에도 반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상화 농아사회정보원장은 “KBS가 그동안 휠체어를 탄 장애인, 시각장애인 앵커를 기용했는데 단 한 번도 청각장애인 앵커는 기용한 적이 없다”며 “일본, 유럽 공영방송에선 청각장애인이 뉴스를 전달한다. 청인과 농인이 짝을 이뤄 중계도 한다. 일본 NHK는 청각장애인들이 참여하는 운영위원회도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수어통역, 자막방송은 장애인들이 앞에 나가 시위를 하며 요구해왔다. KBS도 예산이 없어서 그렇겠지만 선도적으로 해야 한다”며 “장애인 관련 방송 접근성, 정보통신기술(ICT)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요구를 하는데 매번 예산 때문에 못한다고 하더라. 이슈화가 됐을 때 재점검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3라디오 작가 경험이 있는 방귀희 사단법인 한국장애예술인협회 회장(지체장애)의 경우 “7월15일 직접 보니 3라디오가 하루 22시간 방송 66.7%를 재방송으로 채웠다. 내가 있을때만 해도 재방송은 심야 3~4시간이었다”라고 비판했다. 그는 “전성기 때에는 장애인 MC가 30%인 적도 있었다. 지금은 월~금 프로그램 중 주중 강원래, 주말 심준구 시인 딱 두 명 뿐”이라며 “장애인들에게 필요한 방송을 하려면 차라리 분리징수돼서 제3라디오 독립시키는 방법 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분리징수되면 제일 먼저 3라디오 없앤다고 하지 않겠느냐”고 그간의 불만을 전했다.

▲KBS한민족방송 특집프로그램 홈페이지
▲KBS한민족방송 특집프로그램 홈페이지

북한 주민, 북방 동포 등을 위해서는 중파(AM)·단파로 방송되는 한민족방송이 있다. ‘한민족의 민족적 자긍심 고취’를 목적으로 하는 라디오 채널이다. 김용필 동포세계신문 편집국장은 “한민족방송은 북방 고려인, 중국 동포를 주로 대상으로 하는데 저도 출연해온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목소리’라는 프로그램이 중국 현지 동포들의 사연을 소개해주곤 했다”며 “북방 동포들의 경우엔 인터넷 같은 것을 중국에서 차단을 시키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라디오를 통해 듣는 경우가 있더라. 현지 조선학교에서 한글교육도 잘 안 하고 있어서 초등학생 나이 어린이가 한글로 우리말 편지를 써서 보낸 적도 있었다. 예전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이산가족을 찾는 경우도 많았다”고 했다.

김영숙 안산시고려인문화센터장(고려인 너머 상임이사)는 “보통 언론은 한민족 교류 네트워크에 관심이 없다. KBS가 한민족방송이나 ‘글로벌 코리안’(KBS월드 프로그램) 같은 곳에서 고려인을 다룬 건 긍정적으로 본다”며 “공영방송이 아니면 어디에서 이런 걸 하겠느냐”고 말했다. 다만 “너무 관행적으로 이뤄진 부분, 변화에 맞추지 못한 점은 아쉽기는 하다. 지역의 문화와 이주민, 동포를 찾는 프로그램 등 사회적 문제를 넘어 문화적인 접근이 이뤄지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KBS의 재난주관방송사로서의 역할과 지역성 구현 책무에 대해서도 냉정한 평가가 나온다. KBS는 전국 9개 주요도시에 방송총국, 9개 지역에 방송국을 운영하고 있다. 이선경 원주시민연대 대표는 “분리징수는 옳지 않다. 하지만 이제 와서 KBS를 도와주기엔 명분이 없다”고 했다. 그는 “2004년 KBS속초방송국이 없어졌고 2019년 KBS원주방송국이 사실상 없어졌다(폐국 논의 후 기능 축소). 큰 동네에서 산불도 자주 나는데 KBS는 없어지고 있다. 특히 코로나 재난 3년간 KBS가 없었다고 볼 정도로 지역 뉴스가 없어졌다. KBS 공적기능이 사라지면서 주민들이 피해를 보고 있는 것” 이라며 “일본 NHK는 54개 지역국을 갖고 있다. 4년간 ‘지역국 살려주면 수신료를 NHK만큼 많이 낼 수 있다’고 했지만 먹히지 않았다”고 했다. 이어 “공영방송 유무에 따라 재난이 얼마나 발생하는지 데이터를 내볼 필요가 있다. 소외된 지역일수록 시청률이 낮아도 기능을 유지해야 국토 균형발전, 지역 활로를 모색할 수 있다”고 했다.

남춘미 대구여성노동자회 사무국장도 “수신료를 분리징수하는 게 맞는가 생각을 하지만 지역 공영방송으로서의 역할을 직접적으로 느낀 경험이 대구에서는 없다”고 전했다. 남 사무국장은 “코로나 시기 지역 여성 노동자들의 돌봄, 일자리를 잃고 가정으로 돌아오는 경향, 청년 여성 노동자 실태조사를 했을 때 다른 지역보다 낮았다. 토론회도 하고 설문조사도 했지만 KBS는 관심을 가지지 않았고, 몇몇 지역의 진보적인 언론사가 관심을 가질 뿐이었다”고 돌아봤다. 그는 “KBS가 공영방송으로서 지역에 기반한 프로그램을 만들면 좋겠다”며 “지역은 안 그래도 보수적인데 KBS가 나서면 여론이 형성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KBS 지역국 현황. 사진=KBS 홈페이지
▲KBS 지역국 현황. 사진=KBS 홈페이지

이 밖에 환경, 역사 분야에서 공영방송 역할이 중요하다는 당부도 나온다. 정규석 녹색연합 사무처장은 “‘환경스페셜’이 2013년 중단됐다 최근 다시 시작한 것이 상징적이다. 최근 수해, 재난 상황이 발생하면 관련 뉴스는 계속 소비되지만 왜 이런 일이 벌어졌는지 조금은 거시적인 관점에서 돌아볼 필요가 있다. 이런 방송은 타 방송사에서는 찾기 힘들다”며 의미를 짚었다. 동시에 “환경스페셜 없어진 시기 이후 하나의 주제를 꾸준히 탐구하는 다큐멘터리를 지상파 방송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워졌다”며 “KBS가 보도 측면에서 환경 관련 문제를 특별히 많이 다뤘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기후위기에 대한 논의는 KBS가 먼저 했어야 했다”는 아쉬움을 전했다. 정 사무처장은 이어 “수신료는 광고에서 조금은 자유로운 방송을 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독립적 재원이 없어지게 되면 우리는 공영방송에 기대할 수 있는 어떤 가치들이 사실은 훼손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역사학자인 심용환 성공회대 외래교수의 경우 “KBS는 ‘역사스페셜’, ‘역사저널그날’ 같은 장기적 프로젝트로 방송을 진행해왔다. 최근엔 ‘예썰의 전당’ 같은 문화예술 플랫폼이 있다. 시청률에 영향을 받는 다른 방송사들이 하기 힘들다”며 “KBS가 시청률을 전혀 신경 안 쓰는 건 아니다보니 (소재가) 반복되는 게 있다. 그렇지 않던 시절엔 굉장히 선구적이었다. KBS가 잘 다뤄지지 않는 걸 다루거나, 사회적 화두를 제시하는 기능이 쇠퇴된 건 사실”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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