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목 모임에서 하지 말아야 할 얘기가 두 개 있다고 한다. 정치 얘기와 종교 얘기다. 나는 여기에 하나를 더 추가하고 싶다. 바로 국민연금 얘기다.

국민연금은 다른 복지정책보다 더 민감하다는 뜻 정도가 아니다. 아예 방향이 정반대다. 기초연금이나 건강보험에 대해서는 방향은 비슷하다. 정도 차이만 있다. 어르신에게 기초연금을 지급하는 것은 다들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현재 월 32만 원보다 더 올려야 된다는 의견과, 재정 여력 등을 고려한 현실론 정도가 차이다.

건강보험도 마찬가지다. 건강보험 재정에 국가가 세금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정하는 사람은 없다. 그 규모에 대한 정도 차이만 존재할 뿐이다. 그러나 국민연금은 다르다. 국민연금에는 국가가 재정을 단 한 푼도 지원하면 안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많다. 아예 국민연금 제도 자체를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까지 있을 지경이다. 기초연금이나 건강보험에 세금을 지원하지 말아야 하는 사람이나 폐지를 주장하는 사람은 사실상 거의 없는 것과는 매우 다른 담론 지형이다. 그래서 국민연금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람과 국민연금을 폐지해야 한다는 사람이 만나면 싸울 수밖에 없다.

싸울 땐 싸우더라도 정확한 사실에 근거해서 논쟁해야 한다. 논쟁에서 가장 안 좋은 것은 상대방 논리를 반박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 의도를 공격하는 것이다. 의도 공격은 대부분 ‘관심법’의 영역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함부로 의도를 공격하는 것은 건전한 토론을 막는 ‘음모론’에 불과할 때가 대부분이다.

▲ 사진은 1월30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 ⓒ 연합뉴스
▲ 사진은 1월30일 서울 중구 국민연금공단 종로중구지사의 모습. ⓒ 연합뉴스

그런 의미에서 국민연금 강화론자의 상대방 의도를 공격하는 가장 대표적인 ‘음모론’이 바로 사적연금 확대에 따른 이익을 위해 국민연금 강화를 반대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 강화론이나 그 반대 논리 모두 부분적으로는 합리적인 이유가 존재한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 강화론 반대 이유가 연금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선한 의도도 존재한다.

반면, 만일 사적연금 시장 확대 따른 개인적 이익을 위해 국가의 공적연금 시스템을 반대한다면 이는 선의가 아니다. 이렇게 상대방 의도 자체를 악의적으로 해석하면, 상대방은 논쟁의 대상이 아니라 개혁의 대상이 된다. 그래서 최대한 상대방 의도를 공격하는 일은 자제해야 한다.

그러나 지난 2일<매일경제>의 ‘MZ 10명 중 9명 국민연금 못 믿겠다”라는 기사는 사적연금 시장 확대를 위한 기사라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기사다. <매일경제>는 <키움투자자산운용> 등과 함께 국민연금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했다고 한다. 자세한 설문지는 공개하지 않았지만, MZ세대 90%가 국민연금을 믿지 못한다는 것이 결론이다. 그런데 국민연금 보험료율 인상에 찬성하는 20대와 30대 비율도 21%, 27%라고 한다. 90%가 믿지 못한다는 제목과는 달리 더 많은 돈을 국민연금에 납입하겠다는 비율도 20대는 ⅕ 이상, 30대는 ¼ 이상이 넘는다.

특히, 1면에 이어진 3면 기사 제목은 “은퇴후 월 300만 원 따박따박 2030 개인연금 ETF로 투자”다. 즉, 국민연금은 믿을 것이 못되지만, 개인 ETF에 투자하면 월 300만 원을 따박따박 받을 수 있다는 기사를 <키움투자자산운용>과 함께 작성했다. 음모론이 현실로 밝혀진 순간이 아닐까 한다.

▲ 6월2일 매일경제 1면 'MZ 10명중 9명 "국민연금 못믿겠다"' 기사 갈무리.
▲ 6월2일 매일경제 1면 'MZ 10명중 9명 "국민연금 못믿겠다"' 기사 갈무리.
▲ 6월2일 매일경제 3면 '"은퇴후 월 300만원 따박따박" 2030 개인연금 ETF로 투자' 기사 갈무리.
▲ 6월2일 매일경제 3면 '"은퇴후 월 300만원 따박따박" 2030 개인연금 ETF로 투자' 기사 갈무리.

이런 기사가 사적연금 시장 확대를 위해 공적연금 시스템을 부정하는 기사로 해석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국민연금 납입 수익률이 사적연금 수익률보다 높다는 사실을 가리고 있기 때문이다. 가장 대표적 ETF 상품인 코스피지수 연동 수익률을 살펴보자. 2020년 말 기준 코스피지수는 2873이다. 2023년 3월 현재(2477)까지 손실(-13.8%) 구간이다. 2019년 말 기준 코스피지수(2198)보다는  12.7% 상승했다.

그러나 그동안 물가상승률(8.5%)을 고려하면 상승 폭은 대단히 줄어든다. 국민연금은 물가상승률을 고려해서 연금을 주는 상품이란 점이 사적 연금과 다르다. 물가가 오르면 연금 급여도 자동으로 상승하는 상품이란 점에서 어떠한 사적 연금 상품보다 투자수익률이 좋다. 연금저축과 비교하면 그 차이는 더욱 명확하다. 삼성화재, 현대해상, KB손보, DB손보 이상 4대 연금저축 10년 수익률은 연평균 1.5%를 넘지 못한다.

반면 국민연금은 투자수익률과 상관 없이 물가상승을 고려하여 정해진 금액을 지급하기에 사적연금보다 가입자 혜택이 더 클 수밖에 없다. 다만, 국민연금 소진론이 불안감을 조성할 수는 있다. 특히, 언론에서는 항상 국민연금 투자실패를 거론한다.

그러나 생각보다 국민연금 투자수익률은 그리 나쁘지 않다. 2020년, 2021년 국민연금 기금 운용 수익금은 무려 72.1조 원(9.7%), 91.2조 원(10.8%)에 달한다. 다만, 2022년에는 -79.6조 원(-8.2%)손실을 봤지만, 이미 올해 3월말기준 58.4조 원(6.4%) 상당부분 회복했다. 손실을 전하는 기사보다 손실 회복을 전하는 기사가 적어서 우리 이미지만 손실에 머물러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캐나다 연금 등 다른 국부펀드보다 다소 수익률이 낮은 것도 사실이다. 그러면 다른 국부펀드 이상의 수익률을 올리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나는 국민연금 수익률을 지나치게 걱정하는 언론이 오히려 국민연금 투자 수익률 악화를 불러온다고 생각한다. 투자의 원칙은 ‘하이리스크 하이리턴’이다. 단기간의 손실을 어느정도 감내해야 중장기적인 투자 수익률이 좋아진다는 의미다. 그러나 우리나라 국민연금은 상당히 보수적 투자방식을 고수한다. 이는 단기간 투자수익률이 좋지 않으면 지나치게 많은 비난을 받기 때문이다. 반면, 높은 투자수익률을 기록할 때는 그리 큰 칭찬을 받지는 않는다. 이런 담론환경에서는 가능하면 보수적인 투자를 통해 로우리스크 로우인컴 전략을 취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로 보인다. 그런데 기초연금과 국민건강보험에는 각각 연 20조원, 10조원씩 국민의 세금을 통해 재정지원을 하는 것은 당연하게 보면서도 국민연금에는 단 한푼의 재정지원도 하면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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