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주들이 피해를 봤다. 피해를 본 삼성물산 주주였던 엘리엇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1400억 원의 배상 결과가 나왔다.

송평인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엘리엇에 1400억 원 배상, 누굴 탓해야 하나>라는 횡설수설 칼럼을 썼다. 이 글은 “우릴 자책할 수밖에 없긴 한데 정확히 누굴 탓해야 하나?”라고 ‘열린 결말’로 맺는다. 이 글에 따르면 ‘우리’를 자책해야 한단다. 그러나 합병에 관여하지 않았던 많은 국민들은 아무런 죄가 없다. 자책할 필요가 없다. 그래서 나는 누굴 탓해야 하는지 묻는 저 칼럼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 엘리엇 배상 판결에서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묻는 6월22일 동아일보 칼럼 갈무리
▲ 엘리엇 배상 판결에서 누구를 탓해야 하는지 묻는 6월22일 동아일보 칼럼 갈무리

그런데 친절하게도 송평인 논설위원은 7월12일자 칼럼에 스스로 답을 내놓았다. “삼성이 준 뇌물 16억을 처벌”한 사람을 탓해야 한다고 본인이 물은 질문에 스스로 답을 달았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답이다.

▲ 7월12일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삼성 16억 처벌 대가로 엘리엇에 물어주는 1400억' 칼럼 갈무리
▲ 7월12일 동아일보 '송평인 칼럼-삼성 16억 처벌 대가로 엘리엇에 물어주는 1400억' 칼럼 갈무리

국민의 세금 1400억 원을 엘리엇에 물어주게 된 책임은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을 추진했던 사람이 져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박근혜 전 대통령-안종범 청와대 당시 경제수석-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홍완선 당시 국민연금 기금 운용본부장으로 연결되는 5인방 탓이 가장 크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였다. 국민연금공단이 합병 찬반의 키를 쥐고 있었다. 박근혜 당시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안종범, 문형표, 홍완선 등은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의 합병에 찬성하게끔 했다.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이재용을 여덟 번이나 만나고 투자위원회 위원을 찬성파로 교체했다. 이를 통해 국민연금은 5000억 원 이상 손실을 보고, 엘리엇에 1400억 원의 배상금을 국민의 세금으로 메우게 되었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과 이를 위한 회계 부정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4월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부당 합병과 이를 위한 회계 부정을 지시한 혐의를 받는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4월7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차에서 내리고 있다. ⓒ 연합뉴스

그럼 송평인 위원의 주장대로 1400억 원을 물어주게 된 책임은 삼성이 준 뇌물 16억 원을 기소한 윤석열, 한동훈 등 당시 특검팀이나 유죄판결을 내린 재판부일까? 그러나 최소한 국민의 노후 자금인 국민연금의 5000억 원의 피해에 대한 책임은 5인방이라는 것은 명확하다. 그러나 국민연금과 삼성물산 투자자가 아무리 피해를 보더라도 삼성이 준 뇌물을 단죄하지 않고 눈감아 주었다면, 최소한 엘리엇에 가는 1400억 원을 아낄 수 있었을까?

‘삼성물산 합병 5인방’의 잘못과는 별개로 외국계 헤지펀드 엘리엇에 대한민국 정부가 배상을 해야 한다는 사실은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다. 다시 말해 단죄는 찬성해도 엘리엇에 1400억 원을 주고 싶지는 않다. 모순된 감정이 든다.

사태가 복잡할수록 근본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범죄 가해자가 있고, 범죄에 따라 피해자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그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배상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정부의 잘못으로 삼성물산 주주가 피해를 봤다. 그런데 삼성물산 주주 중에서 엘리엇과 같은 외국인 주주는 손해배상을 받는다. 그러나 국내 주주는 손해배상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그렇다면 외국인 주주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준 ISDS(국제투자 분쟁) 잘못일까 아니면 피해자인 국내 주주 피해자에게 손해배상을 해주지 못하는 국내 상법 등이 문제일까? 물론 선의의 투자자를 보호하지 못하는 국내 상법이 문제다.

그렇다면 언론의 바른 질문은 ‘왜 엘리엇이 1400억 원을 배상받는지’가 아니라 ‘왜 국내 피해자는 배상을 받지 못하는가?’로 돼야 한다. 국내 상법 및 집단소송제도 등의 미비로 국가의 명백한 불법행위에 따라 발생한 피해자에게도 배상을 해주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해야 한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물산 사옥. ⓒ 연합뉴스
▲ 서울 서초구에 위치한 삼성물산 사옥. ⓒ 연합뉴스

그리고 “삼성 16억 처벌 대가”라는 송평인 칼럼의 제목도 잘못된 표현이다. 일단 범죄를 저지른 자는 이재용이라는 자연인이지 삼성이라는 법인은 아니다. 그래서 처벌의 대상도 이재용을 처벌했지(비록 가석방 이후 사면 복권 되었지만) 삼성이라는 법인을 처벌하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집회에서 일부 시위자는 ‘기업도 공범이다’라는 피켓을 들었다. 그러나 기업은 공범이 아니라 피해자가 맞다. 이재용의 이익을 위해 삼성이라는 기업도 피해를 봤다. 이재용은 삼성물산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는 이익을 얻었지만 삼성이라는 기업의 이익은 전혀 없다. 기업가치만 낮아지고 이미지만 훼손되었다. 즉, 삼성이라는 기업을 위해 이재용을 처벌했다고 표현해야 한다.

또한 이재용의 뇌물 액수는 고작(?) 16억 원이 아니다. 미르재단 등을 통해 최순실에게 준 비용까지 합치면 433억 원이다. 그리고 뇌물액수보다 더 중요한 것은 피해액이다. 국민연금의 피해액만 5000억 원이 넘는다. 삼성물산 다른 소액주주의 피해액까지 합치면 그 피해액은 수 조원에 이른다. 즉, “삼성 16억 원 처벌 대가로 엘리엇에 몰아주는 1400억 원”이라는 제목은 정말 처음부터 끝까지 틀린, 한글자도 안맞는 제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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