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사옥에서 만난 원종현 위원장. 사진=박재령 기자
▲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사옥에서 만난 원종현 위원장. 사진=박재령 기자

‘멀고도 가까운’ 국민연금. 국민 대다수가 영향받지만 논의 과정에서 가입자들이 낄 자리는 없다. 이따금씩 터져 나오는 ‘수익률 최저’, ‘2055년 연금고갈’, ‘90년대생 못 받는다’ 식의 헤드라인에 불안감만 높아질 뿐이다. 국민연금을 다루는 언론 보도엔 ‘이럴 거면 차라리 탈퇴하고 싶다’는 댓글이 무수히 달린다.

원종현 국민연금 기금운용전문위원회 투자정책전문위원장은 국민연금 최대의 적이 ‘불신’이라고 말했다. 기금 고갈보다 각자도생하려는 마음이 제도에 더 치명적이라는 얘기다. ‘저출생 고령화’ 흐름으로 세대 간 타협이 필수적인 상황이지만 연금개혁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국민의 노후가 흔들리는 가운데 정부와 언론의 역할은 무엇일까. 원종현 위원장을 지난 14일 서울 서대문구 국민연금공단 충정로 사옥에서 만났다.

국민연금 불신 가득한 상황인데… 뒷짐 지고 있는 정부

- 유원중 KBS 기자, 김우창 카이스트 교수와 함께 썼다. 책을 쓰게 된 이유가 무엇인가.

“국민연금이 ‘제도’라는 걸 알리고 싶었다. 1000조 원 기금은 제도의 ‘수단’일 뿐인데 기금이 소진되면 연금을 못 받을 것처럼 ‘공포마케팅’이 만연하다. 모아놓은 저축을 다 썼다고 한 가정이 바로 붕괴하는 건 아니지 않나. 지금 상황이 제도의 몰락을 부추기는 것 같아 위기감에 책을 쓰게 됐다.”

▲ 책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 표지.
▲ 책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 표지.

- 책에서 국민연금의 최대 적은 ‘불신’이라고 했다.

“특히 젊은 친구들이 많이 말한다. 기금 없어지면 내 돈 못 받을 텐데 내가 지금 뭐하러 내냐고. 거꾸로 생각하면 기금이 없어져도 연금을 받을 수 있다고 인식하면 돈을 낼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기금 고갈로 국민연금이 망한다고 해버리니까 사회적 갈등의 불씨가 된다. 사실 지금 기금이 이렇게 많이 쌓인 건 ‘노인빈곤’과 맞닿아 있다. 노인 빈곤층이 40%가 넘고 이들이 연금을 안 받으니 기금이 쌓인 것인데 그런 부분들에 대한 존중이 사라졌다.”

- 국민연금 불신이 더 만연해지면 제도 자체의 존립이 위험해지는 것 아닌가.

“붕괴할 수 있다. 기금이 소진돼서 국민연금 제도가 붕괴하는 게 아니라 불신 때문에 붕괴하는 거다. 사실 정부의 책임이 크다. 저 하늘 위에서 ‘너희들끼리 잘해봐’하는 입장 같다. 국민연금의 본질은 ‘사회보장제도’이다. 정부도 어떻게든 기여해야 한고, 그 기여를 가입자들이 끌어내야 한다.”

- 인구구조 상 지금의 젊은 세대가 손해를 보는 건 사실이지 않나. 기금이 고갈되면 젊은 세대의 부담이 늘어나는 것 아닌가.

“지금 상태면 기금 고갈 후 30%에 가까운 보험료를 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당연히 국민연금이 존속 불가능한 제도가 될 것이다. 누가 월급의 30%를 내겠나. 그래서 중요한 것이 정부다. 정부가 국민연금에 책임을 지고 극단적인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인식을 국민들에 줘야 한다. 미래에 내가 30%를 안 내도 정부가 국민연금 유지를 위해 기여를 하겠구나, 그 신뢰가 있어야 한다.”

▲국민연금 종로중구지사 모습. ⓒ연합뉴스
▲국민연금 종로중구지사 모습. ⓒ연합뉴스

- 지금은 정부가 불신 해소에 대한 노력을 별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남일 보듯 하지 않나(웃음). 우선, 정부 재정으로 기여할 생각이 없다. 국민연금은 강제다. 강제화시킨 책임성을 정부가 가져야 한다. 또 가입자들끼리 나누는 ‘수익자 부담’의 사적보험처럼 (국민연금을) 다루면 안 된다. 국민연금은 연대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보험’이다. 그런데도 정부가 ‘나 몰라라’ 한다.”

- 정부가 역할을 하면 세대 간 갈등도 줄어들 수 있을까.

“젊은 세대의 화살은 기성세대를 향한 것일 수도 있다. 지금 기성세대에도 ‘낀 세대’라는 등 말이 많지만 어쨌든 그들의 기여도 필요하다. 정부나 기성세대의 기여를 끌어내기 위해선 젊은 친구들이 목소리를 강하게 내야 한다. ‘기금 소진되면 국민연금 못 받나요’하고 질문하지 말고, 소진돼도 국민연금 제대로 받아낼 수 있도록 지금부터 졸라야 한다. 그게 더 나은 전략이다.”

- 책에서 국민연금 관리 주체가 다 공무원연금, 사학연금 등 국민연금과 무관한 사람들이라는 지적도 인상 깊었다. 국민들이 국민연금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공론화위원회가 그런 필요성이 반영돼서 나왔을 것이다. 국민연금에 대해 가입자 의견이 확실하게 전달될 수 있는 경로가 마련됐으면 좋겠다는 항상 들었다. 책 제목이 ‘국민을 위한 국민연금은 없다’인 것도 같은 맥락이다. 가입자들이 조르고 더 능동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나중에 못 받고 손해볼 거라고 체념하지 말고 제대로 받아낼 수 있도록 국민연금을 관리하고, 정부에게 요구하자는 의미다.

출입처 분리된 기자들… 국민연금을 종합적으로 다루지 못하는 이유

- 언론은 국민연금을 주로 ‘수익률’ 관점에서 다룬다. 수익률이 좋았을 땐 기사가 나오지 않고 안 좋았을 때만 기사가 나간다는 지적도 있다.

[관련 기사 : [이상민의 경제기사비평] 잘한 일은 뉴스가 안 되는 세상]

“사실 가입자 입장에서 수익률은 ‘그래서 어쩌라고?’이다. 국민연금 수익률이 좋다고 해서 돈을 더 받는 게 아니다. 국민연금은 ‘확정급여방식’이다. 이미 가입하는 순간 보험료 얼마씩 납부하면 얼마씩 받는다고 정해져 있다. 중간에 법이 개정돼도 이전에 냈던 건 이전 제도를 따라간다. 언론은 자극적으로 다룰 수 있는데 그저 심리적인 영향뿐이다.”

- ‘수익자 부담 원칙’을 강조한 정부처럼 언론도 국민연금을 사적보험으로 생각하는 것 같다.

“내 돈 내서 내 돈 받아가는 하나의 금융상품처럼 다루니 수익률이 강조되는 것이다. 물론 기금 고갈을 늦출 수 있으니 수익률이 중요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수익률에 일희일비하는 건 마치 주식 수익률처럼 ‘게임’의 느낌이 있다. 연금에 대한 본질적 이해를 흐린다.”

▲ 지난해 2월3일 나온 한국경제 기사.
▲ 지난해 2월3일 나온 한국경제 기사.

- 국민연금 수익률이 ‘최악’이라는 언론의 대대적 보도가 나오면 사적보험 가입률이 올라가는 데이터가 나온다. 언론이 사적보험 홍보를 위해 악의적 기사를 쓰는 것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그런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다. 국민연금 믿을 게 못 되니 사적연금 쪽으로 오라고 유도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 오죽하면 국민연금 기금 전부를 일반 증권사나 자산운용사한테 맡기라는 반응까지 나온다. 일부 언론이 그런 분위기를 바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모두 국민연금을 제도로 보지 않아서 생기는 문제다.”

[관련 기사 : ‘국민연금 10년 수익률 꼴찌’ 한국경제 보도 “나쁜 통계 억지로 만들어”]

[관련 기사 : 쏟아지는 ‘연금 공포 마케팅’ 보도에 “재벌보험사 관계 의심”]

▲ 지난해 1월28일 나온 한국경제 기사.
▲ 지난해 1월28일 나온 한국경제 기사.

- 지난해 1월 국민연금 5차 재정추계 결과가 나올 때 ‘2055년 기금고갈’이 대대적으로 보도됐다. 가장 자극적이었던 건 ‘90년대생 연금 못 받는다’는 헤드라인의 기사들이었는데, 출처를 보니 전국경제인연합회 산하 연구원이었다.

“국민연금과 다른 금융상품하고 경쟁 구도를 만들고 싶은 것 같다. 소진 얼마 안 남았으니까 빨리 도망가라. 도망가려면 증권, 주식, 퇴직연금, 개인연금 뭐든지 빨리 사적 시장으로 오라는 의미가 아닐까. 그런데 국민연금과 사적보험은 경쟁이 아닌 보완관계라고 생각한다. 사적보험은 국민연금을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관련 기사 : ‘2055년 연금고갈’ ‘월급 35% 날라간다’ 연금 불신 조장 보도의 이면]

- 여러 이해관계가 얽힌 국민연금인데 언론은 너무 단편적으로 다루는 것 아닐까.

“보건복지부, 정치부 등 출입처가 분리돼 있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금융회사 입장에선 기금 수익률 얘기가 중요할 수도 있다. 보건복지부도 그들 나름의 논리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국민연금 문제가 정치적으로, 법리적으로 왜 해결이 안 되는 것인지 종합적으로 볼 필요가 있다. 그런 부분이 좀 부족하지 않을까.”

- 언론이 국민연금에 대해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뤘으면 좋겠나.

“국민연금은 노후 안정성을 위한 핵심 제도다. 사회복지 관점을 강조하는 것이 첫 번째고 그것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정부 역할을 촉구하는 것이 두 번째다. 유럽의 노인빈곤율이 20% 이하라고 하는데 연금 수급을 빼면 70% 정도로 올라간다. 한국의 노인빈곤율보다 높은 것이다. 그만큼 연금이 노인 빈곤 해소 역할이 크다.”

“국민연금? 여름내 놀던 베짱이 아닌 열심히 일한 개미 위한 일”

- 연금개혁 얘기를 해보자. 문재인 정부 때 연금개혁 논의가 불붙었지만 이뤄지지 않았다.

“할 수 있었는데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 당시엔 (개혁이) 늦지가 않았다. 조금 바꿔도 효과를 볼 수 있을 정도의 기금과 가입자가 있었다. 정말 아쉬운 게 그땐 할 수 있었고 해야만 했는데 하지 않았다.”

- 그 결과 개혁하지 않으면 정말 큰일 나는 상황이 왔다.

“공상과학(SF)에 ‘로슈한계’라는 개념이 자주 등장한다. 지구에 혜성이 떨어지거나 달과 충돌한다 해도 어느 한계 밖에서 물질을 파괴하면 지구에 별 영향이 없다. 그런데 그 한계점을 넘는 순간 물질을 파괴해도 충격이 지구로 전달된다. 이렇게 그나마 그나마 쓸 수 있는 지점을 ‘로슈한계’라고 하는데 지금 국민연금이 굉장히 근접해 있다고 본다.”

▲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원종현 위원장. 사진=박재령 기자
▲ 지난 14일 미디어오늘과 인터뷰하고 있는 원종현 위원장. 사진=박재령 기자

- 책에서 ‘연금개혁 3115’를 주장했다. 보험료 3%p 인상, 기금운용수익률 1.5%p 인상 등인데 특이하게 정부재정을 연간 GDP 1% 투입하는 내용이 들어있다. 정부재정 투입 가능성은 연금개혁 과정에서 거론되지 않았다.

“국민연금을 둘러싼 세 이해관계자가 있다. 가입자, 연금공단, 정부. 지금까지는 국민연금의 책임을 가입자들에만 전가시켰다. ‘연금개혁 3115’의 근본 취지는 이 세 축 모두 노력하자는 것이다. 공단은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정부도 재정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을 하자는 것이다.”

- 정부재정 투입 방안이 그동안 언급조차 되지 않았던 이유는 뭔가.

“일단 기금이 많이 쌓여 있는데 왜 정부가 또 돈을 내냐는 인식이 있다. 지금도 국민연금이 금융시장의 ‘연못 속 고래’로 불리는데 왜 더 키우냐는 걱정이다. 그 걱정은 저도 이해한다. 하지만 현재 국민연금의 운용 스타일이 해외·대체투자 쪽으로 집중된 상황이라 국내 자산시장 영향력이 지금보다 커지지 않을 것이라는 게 개인적 생각이다. 학계에서도 조세를 통한 재정 투입이나 보험료율을 높이나 똑같은 것 아니냐는 반론이 있는데 현행 보험료율 9%가 매겨지는 기준은 근로소득세다. 전체 재정에서 근로소득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15% 내외니 나머지 85%의 재정에 대해선 아무 기여가 없는 것이다. 재정이라는 전체 틀에서 보면 개인이 느낄 부담은 보험료율 인상에서 더 커진다.”

- 재정 투입을 하게 되면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

“‘크레딧’(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국민연금 가입기간을 추가 인정해주는 제도)이다. 지금의 크레딧은 생색만 내고 부담은 미래로 넘기는 식이다. 그렇게 하지 말고 지금 혜택을, 가령 6개월치를 주겠다고 하면 그만큼 바로 정부가 기금에 기여하자는 거다. 이외에도 연금 사각지대에 있는 노동자들도 지원할 수 있고 저소득층 수급액을 올릴 수도 있다. 안정적인 노후를 위한 정부의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 국민연금 기사엔 항상 국민연금을 탈퇴하고 싶다는 댓글이 많이 달린다. 그분들에게 한마디 전한다면.

“국민연금은 노후생활을 위한 최소한의 ‘안전판’이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기금이 소진된다 해도 연금을 못 받을 만큼 한국의 국민연금 제도가 허약하지 않다는 말씀도 전한다. 불신이 가장 큰 젊은 세대에겐 ‘개미와 베짱이’를 예로 들고 싶다. 연금을 강제로 가입시키는 건 여름내 놀던 베짱이가 아닌 열심히 일한 개미를 위한 일이다. 옆에 있는 베짱이들에게도 연금을 내도록 해서 겨울이 왔을 때 식량을 개미에게서 안 뺏어가도록 하는 노력이다. 자꾸 연금을 안 내려는 사람이 있어도 탈퇴를 말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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