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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해외순방길에 오른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 ⓒ연합뉴스

대통령실이 윤석열 대통령 동남아 순방 직전이던 지난 9일 ‘편파방송’을 이유로 MBC 기자의 ‘전용기 탑승 불허’를 통보했다. 외신기자까지 포함한 전 언론계가 언론 자유를 침해하는 ‘취재제한 조치’로 이번 사건을 단일하게 규정하고 일제히 윤 대통령을 비판했다. 한겨레와 경향신문은 항의 차원에서 전용기에 탑승하지 않았다. 그간 보수신문 입장을 주로 대변해온 한국신문협회마저 “대통령실이 자의적으로 탑승 여부를 결정해선 안 된다”며 입장 철회를 요구했다. 하지만 대통령은 끝내 MBC를 전용기에 태우지 않았다.

이번 대통령 순방은 국민의 알 권리를 노골적으로 무시한 ‘보복성 취재제한’만 남겼다. 그 결과 MBC를 향한 시청자 응원은 늘어났다. 지난 11일 MBC뉴스 유튜브채널에 올라온 “민항기 타고 현지 도착했습니다. 흔들림 없이 취재하겠습니다”라는 제목의 1분21초짜리 영상은 15일 현재 84만 회 조회 수와 함께 2만3000여개의 댓글이 달렸다. 대부분 응원의 메시지다. 조선일보는 같은 날 사설에서 “전용기 탑승 불허 같은 단세포적이고 감정적인 대응은 여론의 비판을 불러 MBC의 문제를 가릴 수 있다”며 대통령을 비판했다.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이번 순방의 최대 수혜자는 MBC”라고 촌평하기도 했다. 

“국회에서 이XX들이 승인 안 해주면 바이든은 쪽팔려서 어떡하나.” 이번 취재제한은 MBC의 9월22일자 뉴스 자막에서 출발했다. 윤 대통령은 MBC를 겨냥해 9월26일 “사실과 다른 보도로써 동맹을 훼손한다는 것은 국민을 굉장히 위험에 빠뜨리는 일”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대통령의 명예훼손을 주장하며 MBC사장과 기자들을 검찰에 고발했고, 이윽고 대통령실은 “최근 MBC의 외교 관련 왜곡, 편파 보도가 반복되어 온 점을 고려해 취재 편의를 제공하지 않기로 했다”고 주장하기에 이르렀다. 

앞서 외교부도 MBC를 상대로 제기한 언론중재위원회 정정보도 조정신청에서 “우리나라를 70년을 함께한 동맹이자 혈맹을 조롱한 나라로 인식하게 함으로써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한 것은 바로 MBC”라고 주장했다. MBC는 9월26일 자사 보도를 향한 정부 여당의 전방위적 대응에 대해 “이른바 ‘비속어 발언’으로 인한 비판을 빠져나가기 위해 한 언론사를 희생양으로 삼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언론 통제이자 언론 탄압”이라고 밝혔는데, 대통령실의 이번 탑승 불허는 MBC의 주장을 증명해준 꼴이다. 

MBC기자회는 “같은 내용을 보도한 다른 언론사들에겐 아무 말도 하지 못하면서 거듭해서 MBC만 문제삼는 것은 공정하지도 않고 상식적이지도 않다”고 비판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MBC본부는 “MBC는 지난 6월 윤석열 대통령 부부가 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스페인을 방문할 당시 민간인이 대통령 전용기에 탑승했던 것을 보도한 바 있다”며 “이번 전용기 탑승 불허 조치가 당시 보도에 대한 앙갚음인지 우려된다”고 했다. MBC는 “국가 원수의 외교 활동에 대한 접근권을 부분적으로 봉쇄당했다. 특정 언론사만 대통령 전용기 탑승을 거부한 조치는 언론의 자유라는 헌법적 권리를 침해한 것”이라며 헌법소원을 예고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대통령의 업무를 취재하는 기자단의 전용기 탑승은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 대통령이 보장해야 할 책무에 해당하는데도, 마치 대통령의 권한으로 기자단에게 시혜를 베푸는 듯한 대통령의 인식은 충격적”이라며 “(윤 대통령은) 제멋대로 국익의 기준을 정하고, ‘언론은 국익을 위해 봉사해야 한다’는 그릇된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문제들을 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동아투위 등 원로언론인단체는 “이런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이 벌어지는데 막는 참모가 한 사람도 없단 말인가”라며 개탄했다. 

▲11월14일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왼쪽)과 김동훈 기자협회장이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하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11월14일 윤창현 언론노조위원장(왼쪽)과 김동훈 기자협회장이 서울지방경찰청에 고발장을 제출하는 모습. 사진=언론노조

전국언론노동조합과 한국기자협회는 14일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과 김은혜 홍보수석을 형법상 직권남용죄로 고발했다. 공무원의 직권을 남용해 언론인 직무수행을 부당하게 제한했다고 봤다. 윤창현 언론노조 위원장은 “불리한 보도를 가짜뉴스라고 명명하고 일방적으로 징벌하듯이 취재제한을 하는 것은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대한민국 헌법을 정면 위반한 것”이라며 법적 책임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번 사태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을 위한 지배구조 개선법안의 통과가 절실하다는 점을 보여줬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가운데 대통령실은 지난 13일 캄보디아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과 한-일 정상회담 현장을 기자들에게 공개하지 않았다. 서면 보도자료만 제공하고 질의응답은 생략했다. 전용기 내에서는 대통령이 채널A와 CBS 기자만 1시간가량 따로 만나 논란이 됐다. 이처럼 언론을 향한 ‘차별’과 ‘배제’의 양상이 반복될수록 언론계는 현 정부에서 국민의 알 권리 수호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방송기자연합회 등 언론현업 8단체는 “오늘 MBC를 겨눈 윤석열 정부의 폭력을 용인한다면 내일 그 칼끝은 언론계 전체를 겨눌 것”이라며 지속적인 연대를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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