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전용기 MBC 탑승불허 조치에 대한 대통령실 입장은 ‘국익을 훼손한 보도를 했기 때문에 최소한의 취재편의 제공을 거부하는 건 정당하다’는 것이다. 한 여권 인사는 국익에 앞선 언론자유는 없다라는 말까지 했다.

정치권력이 말하는 국익은 대개 정권의 이익이다. ‘국익을 위한’이라는 수사(修辭)를 늘 의심해야 하는 게 언론의 권력 감시 역할인 이유다. 이번 조치는 정치권력이 국익을 내세워 언론의 취재행위를 제한할 수 있다는 발상을 노골적으로 드러낸 것이 핵심이다.

한편으론 이번 조치로 인해 국격을 떨어뜨린 일로 기록되면서 윤석열 정부 스스로 발등을 찍는 결과가 될 것이라며 크게 경계하지 않는 여론도 있다. 하지만 한번 시행된 언론 통제 지침은 전례로 남게 되고, 정권이 쓸 수 있는 상시 카드가 된다. 언제든 ‘국익 훼손 보도’라는 칼날을 비판 언론에 들이대고 휘두를 수 있다는 인식을 주게 되면 그게 곧 언론 통제의 본격적인 시작이 될 수 있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월11일 오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11월11일 오전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 관련 정상회의 및 주요20개국(G20) 정상회의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성남 서울공항에서 공군 1호기에 탑승해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대통령실 관계자는 “가짜뉴스가 만연하면 오히려 진실을 보도하려는 언론이 공격받고 위협받는다”며 “그래서 많은 민주주의 국가가 가짜뉴스에 대해서 강력하게 대응하고 퇴출시키려고 하는 것”이라고 항변했는데 말그대로 ‘퇴출’을 염두에 둔 다른 조치도 배제할 수 없다.

이번 조치를 ‘논란’으로 부치고 일부 언론의 몸부림 정도로만 묶어두는 게 윤석열 정부의 프레임이다. 군부독재시절을 거쳐 언론자유만큼은 감히 넘볼 수 없는 한국 사회라는 자부심을 깡그리 짓밟고 민주주의 퇴행을 가져왔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사실 이번 조치는 어느정도 예견됐다. 대통령실이 바이든 대통령 욕설 발언으로 해석한 MBC에 대해 경위 설명을 요구하며 압박할 때부터다. MBC와 같은 보도를 했던 타 매체 데스크들이 나서 취재행위에 대한 ‘겁박’으로 규정하고 일제히 들고 일어났다면 대통령 전용기 탑승불허 조치 카드는 쉽사리 꺼내지 못했을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이 9월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진=MBC뉴스 영상 갈무리
▲윤석열 대통령이 9월21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열린 글로벌펀드 재정공약회의에 참석한 뒤 행사장을 나오면서 막말을 한 장면이 포착됐다. 사진=MBC뉴스 영상 갈무리

대통령실 기자단이 특별총회를 개최해 이번 조치 철회를 요구하고, 한겨레와 경향이 순방 비행기에 탑승하지 않기로 했지만 언론자유를 무시한 정치권력의 오만한 행태를 멈추기엔 부족해 보인다. 대통령실이 탑승불허 조치를 내릴 때 언론의 ‘취재 보이콧’은 어려울 것이란 예상을 했을 터인데 그 예상을 깨고 ‘공동행동’이 나왔다면 어땠을까.

지난 2018년 8월 미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지만 미국 언론의 대응 크기는 달랐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북미회담 성과를 인정치 않은 언론보도에 “역겨운 가짜뉴스”라고 비난하고 자신에 비판적인 매체를 폄훼했다. 결정적으로 언론을 ‘국민의적’이라고 표현하면서 반발을 샀다. 이에 보스턴글로브는 ‘자유 언론에 반대하는 더러운 전쟁’이라며 트럼프 대통령 반(反)언론 기조 반대 사설을 내고 타매체의 동참을 촉구했다. 그리고 300여 개가 넘는 신문이 비판 사설을 냈다. ‘사설 연대’는 정치권력에 맞서 언론자유 가치를 지키려는 강력한 저항운동으로 평가받는다.

대통령실의 ‘조용한’ 언론 통제 관리도 최근 회자된다. 한 기자는 “소위 진보좌파 언론은 처음부터 빼고, 중도성향으로 분류된 언론에서 비판 보도가 나왔을 때 톤다운을 시키기 위해 대통령실이 여러 경로를 통해 작업을 한다”고 털어놨다. 이미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사이에서 비판 언론을 적으로 세워 배제하는 분위기가 퍼져있고, 대통령 심기를 건드린 중도 성향의 언론 보도에 집중해 대통령실 관리 통제가 심해지고 있다는 얘기가 파다하다.

▲ 11월10일 서울 용산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 질문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제공
▲ 11월10일 서울 용산대통령실 청사에서 기자들 질문을 받는 윤석열 대통령. 사진=대통령실 제공

윤석열 대통령 집무실 리모델링 업체 의혹을 파헤친 보도 언론사가 소위 찍히면서 이후 자기 검열식 보도를 내놓고 있다는 소문도 있다. 언론사 경영진이 정권 눈치를 보고 편집국의 비판 보도에 개입한 정황도 여럿이다. 크게 보면 정권의 언론 통제 결과물이다.

매년 국경없는기자회가 180개국을 대상으로 측정하는 언론자유지수 하락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괜한 게 아니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부터 5년 연속 40위권을 유지하고 있지만 이렇게 가다간 ‘끝없는 추락’을 볼지 모를 일이다. 2016년 박근혜 정부 시절 우리 언론자유지수는 70위였다. 대통령 전용기 탑승불허 조치가 제발 끝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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