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소환 연합통신 사장이 간부들과의 고별 인사차 가진 오찬 자리에서 김현철씨의 YTN 사장 선임 개입과 관련, 외압이 있었다고 밝힌 것은 김씨의 개입이 단지 개입 차원이 아니라 ‘실행’에 옮겨졌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언론계 안팎에 큰 파문이 예상된다.

현사장은 언제, 누가 외압을 행사했는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연합통신 관계자들의 분석처럼 외압은 김씨가 YTN 사장에 김우석 전 건설부장관을 앉히려 했던 95년 2월경에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이 거의 확실하다. 왜냐하면 YTN 사장 선임과 관련, 외압이 행사될 수 있는 시기는 상식적으로 이 때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권력의 뜻에 따라 언제든지 압력이야 행사할 수 있지만 아무런 계기없이 연합통신이나 YTN 사장을 갈아치우기란 ‘무소불위’의 권력이라도 생각처럼 쉽지만은 않은 일이다. 사장 선임에 개입할 수 있는 계기는 사장 선임이 자연스럽게 거론될 수 있는 YTN 개국 때나 정기 주총 등으로 극히 제한될 수밖에 없다.

김씨가 YTN 사장 선임에 개입하려 했던 것으로 드러난 95년 2월 이후 YTN 사장 선임이 논의될 수 있었던 계기는 3월 개국시점까지 포함해 모두 3차례였다. 그해 3월 개국 시점에 초대 사장을 선임할 때와 그해 9월의 정기주총, 그리고 다음해인 지난해 9월의 정기주총 때라고 볼 수 있다.

문제는 3월 개국 시점의 사장을 그해 9월 정기주총 때 도중하차시키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점이다. 실제 업무추진 측면에서도 그렇지만 개국 6개월 만에 사장을 중도하차시킨다면 상당한 파문과 논란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김씨가 YTN사장에 김우석씨를 앉히려 했던 호기로 95년 개국 시점을 잡았던 것도 바로 이런 사정 때문이다.

96년 9월 정기주총에서 현사장이 YTN 사장 자리를 내놓은 점을 고려할 때 현사장이 말한 ‘외압’은 바로 개국을 앞두고 김씨가 김우석씨를 YTN 사장으로 임명하려 했을 때 밖에 없다.
현사장이 “여러차례 외압이 있었지만 여기에 항의도 하고 잘 견뎌냈다”고 말한 것 또한 외압시점이 바로 이 때임을 말해주는 것으로 해석된다. 96년 9월 주총에서 YTN 사장 자리를 내준 마당에 “외압을 잘 견뎌냈다”고 말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정황을 고려해 볼 때 현사장이 말한 퇴진 압력은 바로 95년 3월 YTN 사장 취임을 앞두고 집중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파악된다. 현사장이 김씨의 YTN 사장 선임 개입과 관련, 외압 이야기를 꺼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결과적으로 현사장의 ‘외압발언’은 YTN 사장 선임과정에 김씨를 앉히고자 한 것은 G크리닉 박경식원장이 공개한 비디오테입 내용에서 처럼 단지 이야기를 꺼내 본 정도가 아니라 상당히 구체적으로 실행에 옮겨졌음을 의미한다.

그 실행 창구는 박씨가 공개한 비디오테이프 내용에서도 드러나듯이 김씨가 김우석 전 장관의 YTN 사장선임을 협의한 청와대 정무수석실을 주요 통로로 공보처 고위관계자들까지 동원했을 개연성이 크다.

현사장의 이같은 외압 발언은 “YTN 사장 선임 문제를 거론하기는 했지만 실제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아니다”는 김씨 주변 관계자들의 해명을 뒤집는 것이어서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된다. 이에 대해 연합통신 정일용 노조위원장은 “현사장이 누구로부터, 언제 퇴진 압력을 받았는지 정확히 밝혀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현사장은 이같은 외압을 계기로 현정권 관계자들과는 거의 갈라선 것으로 보인다. 지난 14일 노조 창립 기념식 자리에서 사외 인사 사장선임 저지를 공개적으로 밝히고 나설 수 있었던 것은 이 정권과의 ‘결별’을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가능하지 않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오는 19일 주총에서 임기가 끝나는 현사장이 “신임 사장에 외부인사가 임명돼서는 안된다는 얘기가 (정부쪽에) 정보 보고될지 모르겠다”며 “당할만큼 당했지만 그런 것에 꿇릴 사람이 아니다”라고 선언한 것은 자신에게 퇴진압력을 가했던 세력에 대한 선전포고나 다름없다.

“의사봉을 들고 나가더라도 사외인사의 사장 선임은 저지할 것”이라는 현사장의 메시지에 연합통신의 사장 선임권을 사실상 행사해온 청와대가 어떻게 반응할지 주목된다. 사외 인사를 연합통신 사장으로 임명하려 할 경우 주총에서의 ‘이변’도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김현철씨의 빗나간 개입은 바로 자신들이 신임했던 한 언론사 사장의 전면적 반란을 불러일으킬 정도로 ‘오만’했다는 점에서도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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