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6월의 한 따뜻한 날 오후 애리조나 리퍼블릭(Arizona Republic)의 지칠 줄 모르는 사건폭로기자 돈 볼즈(Don Bolles)는 피닉스 클라렌던 호텔 주차장에 세워놓았던 자신의 승용차를 출발시키는 순간 폭탄이 폭발해 숨을 거뒀다. 애리조나에서 횡행하던 마피아 갱단의 불법거래를 파헤치고 있던 볼즈 기자의 열정적인 취재활동에 관해 폭력단들은 침묵을 지켰다. 하지만 승용차 시트 밑에서 폭발한 다이너마이트는 폭력배들이 의도했던 것 이상의 결과를 야기했다.

볼즈 기자의 살해사건 30주년을 넘기면서 미국 언론은 탐사보도의 현황을 재점검하고 있다. 미국 언론전문 월간지 퀼(Quill) 2007년 5월호에 실린 카누프리야 배시슈트(Kanupriya Vashisht)의 “파수견들은 아직도 건재한가?(Are the Watchdogs Still Watching?)”를 통해 오늘날 미국 언론의 탐사보도 실태를 살펴보자.

가장 빛났던 ‘애리조나 프로젝트’

돈 볼즈의 사망 이후 당시 뉴스데이(Newsday) 편집국 간부였던 밥 그린(Bob Greene)의 주도하에 탐사보도 언론인협회(IRE)가 새롭게 결성됐고 언론인들은 유례없는 연대를 과시하며 피닉스 폭파사건에 대한 집중적인 취재활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애리조나 주 전역에서 자행되던 부패행위들을 폭로하는 한편 한 탐사기자의 살해가 결코 언론의 탐사보도를 위축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전 세계에 보여줬다.

   
  ▲ 마약밀매업자에 관한 탐사기사를 쓰다 암살당한 아일랜드 언론인 베로니카 귀린의 삶을 다룬 케이트 블란쳇 주연의‘베로니카 귀린(Veronica Guerin)’의 한 장면. 아래 작은 사진은 귀린의 실제 모습.  
 
IRE에 의해 ‘애리조나 프로젝트’로 이름 붙여진 일련의 탐사보도는 애리조나 주에서 만연하고 있던 범죄와 부패에 관한 연재기사들을 23회에 걸쳐 쏟아냈다. 피닉스에 있는 WKOY 방송은 매일 오후 3시 시리즈로 탐사보도를 방송했고 운전자들은 이 방송을 경청하기 위해 승용차를 길가에 세우기도 했다. 그린은 회고했다.

“우리 언론인들은 줄곧 열의에 휩싸여 있었고 올바른 일을 수행하고 있다는 커다란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다. 우리들은 대의명분을 위해 자신들의 개인적 일들은 접어두고 있었다. 당시 내가 한 역할은 이제까지 겪어온 일들 가운데 가장 자랑스러운 것이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1996년 더블린의 가장 강력한 마약밀매업자들을 폭로하던 아일랜드 언론인 베로니카 귀린(Veronica Guerin)이 총격을 받고 사망하자 아일랜드의 한 TV방송은 1970년대의 언론인 연대의식을 재구성하고 마약업자들을 퇴치하기 위해 그린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그러나 시대는 변했으며, 방송은 당시와 같은 추진력을 재가동할 수 없었다. 오늘날 그녀에게 남아있는 것은 냉철하고 솔직하지 않으며 나쁜 엄마였다고 주장하는 내용이 담긴 ‘베로니카 귀린: 한 범죄 폭로기자의 인생(Veronica Guerin: The Life and Death of a Crime Reporter)’이라는 저서와 그녀를 순교자로 그린 캐이트 블란쳇(Cate Blanchett) 주연의 ‘베로니카 귀린(Veronica Guerin)’이라는 한 편의 영화가 있을 따름이다.

‘황금기’에서 ‘의기소침’까지

1970년대는 젊은 사건 폭로 기자들에게 황금기였다. 편집국은 이상주의(idealism)와 타이핑 소리로 가득했다. 모든 편집국들은 탐사보도 기자들에 관해 자랑했다. 할리우드조차 1976년 제작된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이라는 영화를 통해 탐사보도를 미화했다.

   
  ▲ 워터게이트 사건을 다룬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  
 
퓰리처상을 수상했고 탐사보도 언론인들의 국제협회를 이끌고 있는 웬델 롤스(Wendell Rawls)는 말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탐사보도가 워터게이트 사건을 폭로한 밥 우드워드(Bob Woodward)와 칼 번스타인(Karl Bernstein)에 의해 태어났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하지만 탐사보도가 이들 두 언론인에 의해 높은 분수령에 도달했다가 이후 내리막길을 걸어오고 있는 것은 사실일지도 모른다.”

타이프라이터의 요란한 소리가 점차로 조용히 컴퓨터의 키보드를 두드리는 소리로 바뀌면서 경쟁이 더욱 치열해진 오늘날의 언론인들은 신속한 정보와 심층보도 사이의 미세한 경계선을 넘나들고 있다. 대부분의 편집국들은 수개월은 물론 수주에 걸쳐 이뤄지는 탐사보도 프로젝트에 할당할 시간이나 재원을 갖고 있지 않은 실정이다.

1992년 뉴스데이 편집부국장에서 퇴직한 그린은 지적했다. “오늘날 편집국에 가해지는 압력은 탐사보도를 저해하는 첫 번째 요인이다. 대규모 탐사보도는 세심한 취재는 물론 부단하게 체크해야 하고 익명의 소식통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 이 모든 것들에는 상당한 시간이 소요되기 마련이다.”

IRE의 총괄이사를 역임했으며 사라예보에 있는 탐사보도 센터의 편집간부로 활약하고 있는 로즈메리 아르마오(Rosemary Armao)는 미국 신문들의 탐사보도 실태를 둘러보고 ‘의기소침’했다고 밝힌다. 그녀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나는 미국의 한 신문을 떠나 아프리카로 갔다가 현재 보스니아에 있다. 이 같은 나의 행적은 탐사보도에 관한 미국 언론의 상황을 경험한 나의 생각을 잘 말해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애리조나대의 월터 크롱카이트 언론대학원 학생들은 최근 미국 신문 편집국들의 탐사보도 현황에 관한 전자조사를 실시했다. 미국 전역의 100대 신문들을 대상으로 한 조사결과가 IRE 회원들에게 전달됐다.

설문조사에 응한 86명의 탐사보도 기자들과 에디터들 가운데 42%는 10년 전에 비해 오늘날 편집국에서 탐사보도가 더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편집국에 4명 이상의 탐사보도 기자들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12%에 지나지 않았으며 16%는 편집국에 탐사보도팀이 없다고 밝혔다. 응답자들의 41%는 탐사보도가 편집국 간부들에 의해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탐사보도팀에 간부 기자들이 거의 배치되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비교적 소규모 신문편집국들을 대상으로 한 추가조사에 응한 30명의 언론인들은 편집국의 인원부족과 상대적으로 열악한 재원 때문에 탐사보도에 대한 지지를 거의 나타내지 않았다.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에서 발행되는 포스트 앤드 쿠리어(Post and Courier)의 특집부장 더그 파듀(Doug Pardue)는 밝혔다. “우리는 위기에 처한 종족들이다. 편집국내 사고방식은 모든 구성원들이 탐사보도 기자들이라는 것이다. 비록 탐사보도팀이 없다고 하더라도 기자들은 탐사보도 기사를 쓸 수 있다는 분위기가 편집국을 지배하고 있다.” 파듀는 편집국에 탐사보도팀 구성을 꺼리는 첫 번째 이유가 비용 때문이라고 했다. 탐사보도가 많은 재원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악조건에서 더 필요한 탐사보도

1970년대에 기자들은 탐사보도를 위한 주제들을 찾아댔다. 워터게이트 사건에 이어 환경결정론(environmentalism)이 대두하자 언론인들은 사건폭로 분야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시카고 트리뷴(Chicago Tribune)과 필라델피아 인콰이어러(Philadelphia Inquirer) 같은 대도시에서 발행되는 신문들은 1980년대에 정부와 대기업들에 관한 탐사보도를 선호했다. 1995년에 이르러 탐사보도 기자들이 고갈되면서 신문들은 저항 받지 않는 기사들, 소송 받지 않는 기사들, 가시적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사들을 점차 추구했다.

   
  ▲ 시카고트리뷴(왼쪽) 필라델피아 이그재미너지  
 
1980년 30건 이상의 탐사보도 기사를 실었던 시카고 트리뷴은 1995년 이 같은 기사를 거의 게재하지 않았다. 트리뷴은 탐사보도 기사 대신 기업들에 관한 기사와 재테크에 관한 기사들을 경쟁적으로 보도했다. 밥 그린은 언론인들과 독자들이 오늘날 탐사보도가 충분하지 않다고 공통적으로 불평하고 있다는 주장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그는 “모든 사람들이 오늘날 상황이 좋지 않다고 말하고 있지만 과거에도 언제나 상황은 똑같았다”라고 비판했다.

IRE의 총괄이사 브랜트 휴스턴(Brant Houston)은 매 10년마다 나름대로의 장점들이 있었다고 주장했다. 즉 1970년대에는 방법론이 개발됐고 1980년대에는 장기적 프로젝트들이 도입됐으며, 1990년대에는 기술과 정교한 사회적 연구 방법들이 소개됐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는 이들 이외에도 글로벌 네트워크와 국제적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휴스턴은 탐사 저널리즘이 탐사보도 기사의 중요성을 확신하는 언론인들에 의해 실제로 수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들은 상당액의 보수를 받는 것에 관계없이 탐사보도 기사들을 위해 취재활동을 한다. 그들의 보상은 기사 그 자체이다.”

다른 탐사보도 기자들은 탐사 저널리즘의 여건이 과거에도 오늘날보다 결코 좋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미국의 가장 저명한 탐사보도 기자인 시모어 허시(Seymour Hersh)는 “탐사보도는 오히려 여건이 나쁠 때 가장 크게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면서 닉슨 대통령의 몰락시기에 신문이 독자들에게 중요한 역할을 했던 상황을 환기시켰다. 그는 덧붙였다. “오늘날 부시 대통령의 인기가 급락하면서 신문들은 다시 한 번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미국 언론은 100년 이상의 사건 폭로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오늘날이라고 해서 이 같은 전통이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타임(TIME)의 탐사보도 팀장 돈 발레트(Don Barlett)는 폐쇄된 정치적 분위기가 탐사 저널리즘을 저해하지 않는다는 허시의 믿음에 동조했다. “어떤 상황에서건 기자는 장애물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하기 마련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발레트가 언론 활동을 시작했을 1950년대에는 탐사보도가 부패한 정치인들과 부도덕한 노조들을 추적 취재하는 대규모 신문들에 한정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탐사 저널리즘이 보다 광범위하게 확대되었다고 그는 지적했다. 그의 동료이며 타임의 특집부장 제임스 스틸(James Steele)은 지난 30년간 있어온 언론의 변화는 긍정적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익명의 소식통’들은 탐사보도의 작은 부분에 불과하게 되었다고 지적하면서도 그는 편집국의 인원감축이 이뤄질 경우 때때로 탐사보도 기자들이 꼭 필요한 인력이 아니라는 견해 때문에 감원대상이 되는 현실에 우려를 나타냈다.

어려운 신문 업계, 줄어드는 탐사보도

탐사보도는 오늘날 기술의 발달로 인해 더욱 신속해지고 있다. 그린은 15년 전 뉴스데이에 재직하고 있을 때만 해도 금융회사나 증권거래위원회에 관한 보도가 필요할 경우 워싱턴까지 가야했다. 세인트루이스에 있는 국가인력기록보관소에 제출되는 군사정보를 취득하려면 수개월이 소요되기도 했다. 따라서 그는 정보를 얻기 위해 세인트루이스까지 비행기를 타고 가서 기록을 직접 입수해야 했다.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 모든 업무가 컴퓨터에 의해 거의 즉각적으로 처리되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인터넷은 또한 군소신문들에게도 뉴욕 타임스와 똑같이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취재의 벽을 허물었다고 발레트는 덧붙였다.

뉴욕 타임스의 CAR(Computer-Assisted Reporting) 전문가인 조 크레이븐 맥긴티(Jo Craven McGintey)는 “기자들이 기술을 회피하는 것은 날이 갈수록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했다. 반면 그는 인터넷이 일부 언론인들에게만 주요한 정보소스로 이용되고 있는 현실도 지적했다. 이와는 반대로 인터넷에 나오지 않으면 마치 정보가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기자들이 양산되고 있는 현상도 꼬집었다.

대다수의 신문사, TV방송국, 잡지사, 라디오 방송국 등은 오늘날 그들이 이바지 하는 지역사회들로부터 멀리 떨어진 거대하고도 잘 알려진 기업들에 소속되어 있다. 신문사들은 월스트리트로부터 분기별 수익을 올리라는 가차 없는 압력을 받는다. 정부를 위기로 몰아갈 수 있는 비밀회의는 오늘날 에디터와 기자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열리지 않지만 발행인과 변호사들은 광고주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는 탐사보도의 운명을 결정하는 비밀회의를 빈번하게 열기도 한다.

공익보도센터(CPI)의 기획부장 존 던버(John Dunbar)는 비판했다. “대규모 신문사들은 지극히 비공익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탐사보도에 재원을 쏟아 붓는 몇 안 되는 전국지들은 보상을 원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한다. 그들 신문은 탐사보도에 따르는 경제적 이득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던버는 덧붙였다. “탐사보도 기자들의 최대 관심사는 현재 진행 중인 취재보도를 계속하는 것이다. 내가 면담한 다수의 탐사보도 기자들은 공통적으로 탐사보도 예산이 삭감되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탐사보도 기사들이 계속 줄어들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소유주들과 발행인들은 에디터들에게 충실한 저널리즘보다도 손익계산을 염두에 두라고 압력을 가하고 있다. 던버는 훌륭한 기자들이 ‘경영자를 초조하게 만드는 존재’라고 지적하면서 발행인들은 비록 그들의 존재를 중요하게 생각하면서도 그들이 많은 경비를 쓰기 때문에 경영이 어려워진다며 그들에게 짜증을 낸다고 전했다.

시애틀 타임스(Seattle Times) 편집국장이며 IRE 회장인 데이비드 보드먼(David Boardman)은 탐사보도 예산의 삭감이 탐사보도 프로젝트의 숫자를 줄이고 나아가 기사의 질까지 저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비록 신문사들이 탐사보도 기자들을 해고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탐사보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훈련비를 우선적으로 삭감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파듀는 탐사보도 기자를 미식축구의 와이드 리시버에 비유했다. 그들은 한 게임에 기껏해야 3~4차례 볼을 처리하지만 그들의 활약이 게임을 좌우한다는 것이다.

연성뉴스에 밀리는 탐사보도

미국 신문들은 현재 어려운 시기에 처해있다. 최근 발행부수 공시기구(ABC)는 전체 신문발행부수가 2005년 9월로 끝나는 6개월 동안 2.6% 감소했다고 발표했다. 이 같은 추세가 만약 지속된다면 2007년 말까지 약 250만 부에 달하는 신문부수가 감소될 것이다. 더구나 일부 신문구독자들이 온라인으로 옮겨가면서 광고를 빼앗기게 되자 신문사들의 주가는 약 20%나 하락했다. 군소 신문들과 중간 규모 신문들의 주요한 수입원인 안내광고 역시 크레이그스리스트와 구글 같은 무료 웹사이트로 이동하고 있다.

워싱턴 포스트의 탐사보도 전문기자 댄 키팅(Dan Keating)은 이렇게 회고했다. “내가 처음 신문사에 입사했을 때 사람들은 신문사들이 변화하지 않고 영원히 존재할 공공기구라고 생각하곤 했다. 오늘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다. 나는 광고수입 때문에 신문사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생각하기 싫지만 이것은 오늘날 반문해야 할 문제인 것임은 확실하다.

신문사들은 아직도 탐사보도를 지원하기 위해 광고수입을 확보해야 하는가?” 주류언론이 수익 위주로 방침을 정함에 따라서 기업들에 대한 배려와 저널리즘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고 있다. 언론사들은 너무도 빈번하게 광고주들을 소외시키거나 비용이 많이 드는 탐사보도를 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1998년 플로리다 타임스 유니온(Florida Times Union)의 선임 탐사보도 기자였던 던버는 1년에 걸쳐 마이애미시의 부패한 건축 및 도시구획 문제를 집중적으로 취재했던 일을 회상했다. 그의 심층취재가 신문의 일부 광고주들을 당황하게 하자 그는 시청 출입기자로 재배치되었다는 것이다.

신문의 논조가 보다 연성뉴스를 선호하는 경향을 보이자 뉴스데이에 근무했던 그린은 이렇게 예측한 바 있다. “연성뉴스가 보다 많은 지면을 차지하고 있으며 이 같은 경향은 탐사보도 기사들이 꿇고 들어갈 수 있는 지면을 더욱 좁히고 있다. 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위한 뉴스가 소화되기를 원하는 것도 탐사보도를 저해하는 원인이 될 것이다.”

퓨 리서치 센터(Pew Research Center)는 2005년 1월 조사 보고서를 통해 미국인들 5명 가운데 1명이 대통령 선거뉴스를 코미디 프로그램을 통해 접한다는 사실을 밝히기도 했다. 과거 미국에서 가장 신뢰받는 TV앵커였던 월터 크롱카이트(Walter Cronkite)는 전통적 TV의 광고주들이 뉴스를 보다 흥미 있게 제작하도록 부단하게 PD들에게 권유한다고 전했다.

그는 ‘흥미 있게’라는 단어는 연예 프로그램의 ‘공통적 용어(code word)’라고 설명했다. 그 밖에도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언론인들이 더 이상 파수견(watchdog)의 역할을 수행한다고 믿지 않는다. 그린은 주장한다. “사람들은 언론인들이 나름대로의 의제들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과거 그들은 언론인들이 수행하는 일을 믿었기 때문에 언론은 대중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법정(court)’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언론인들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태도는 커다란 변화를 보인다.”

신문 밖으로 뛰어나간 탐사 저널리즘

탐사 저널리즘은 앞으로 신문보다는 다른 매체들에서 번성할 것으로 보인다. 뉴요커(New Yoker)와 마더 존스(Mother Jones) 같은 잡지들은 이미 IRE, CPI와 같은 탐사보도 조직들과 공동으로 심층보도를 개척하고 있다. 책들도 마찬가지이다. 아르마오는 전망했다. “책들이 대도시의 거대 신문들을 이어받아 탐사보도의 새로운 출구 역할을 하고 있다. 보스니아에서 언론인들에게 탐사보도를 교육하고 있는 내 경험에 의하면 학교와 교육의 가장 좋은 탐사보도 훈련이 책자형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IRE의 휴스턴은 언론이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우리는 위험을 두려워하지 말고 받아들여야 한다. 이제까지의 역사는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한다고 해서 주요한 미디어가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인터넷 포털인 야후는 최근 TV특파원 케빈 사이츠(Kevin Sites)를 고용해 1년간 세계의 전쟁지역들을 취재하도록 함으로써 온라인 저널리즘의 경계를 확대했다.

CNN, NBC에서 오랫동안 활약했던 사이츠는 이미 아프가니스탄, 코소보, 콜롬비아, 이라크 등을 순회취재하면서 그 지역들의 전황을 보도했다. 만약 이러한 새로운 모형이 성공한다면 적은 예산으로 탐사보도를 하고 있는 언론인들을 자극하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그들은 다른 매체를 이용해서라도 전 세계의 시청자와 독자들에게 심층보도를 하기를 원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음 세대의 탐사보도 기자들은 부패, 사기, 스캔들과 같은 좁은 통로를 ‘실제로’ 통과해서 그들의 기사가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에 실리는 것을 보고 기뻐할지 모른다. 월드 와이드 웹에서는 다이너마이트가 폭파되는 비극도 없을 것이다.

편역 : 이경일(전 한국언론재단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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