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언론개혁 특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4일 언론개혁 특별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하는 모습. ⓒ연합뉴스

“가짜뉴스를 뿌리는 유튜버들을 어떻게 할지 법무부에서 검토해달라.” 지난 3일 행정안전부가 공개한 지난 6월19일 국무회의 회의록에 담긴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이다. 지난 4일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3대 개혁’ 대상 중 하나로 언론을 꼽으며 “폭풍처럼 몰아쳐서 전광석화처럼 끝내겠다”고 했다. 민주당은 언론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과 유튜브 등 온라인 공간의 허위정보 규제 등을 논의할 전망이다.

“가짜뉴스에 대한 선제적이고 강력한 대응이 필요하다.” 2017년 2월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의 말이다. 정부 차원에서 ‘가짜뉴스’(허위정보)를 지칭하며 대응 방안을 지시한 첫 사례였다. 이후 정부가 바뀔 때마다 공수교대를 하며 공방이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해외의 규제는 아전인수격으로 해석됐고, 표현의 자유 침해 소지가 큰 제도는 명맥을 이어오고 있다.

美 페이크 뉴스 논란, 한국은 朴 탄핵 국면 때 주목

‘가짜뉴스’는 2016 미국 대선 기간 때부터 주목받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를 지지한다> 등 언론사가 아닌 곳에서 언론사처럼 웹사이트를 꾸며놓고 허위정보를 유포하는 ‘페이크뉴스’(FAKE NEWS)였다. 미국 매체 버즈피드의 분석에 따르면 2016년 대선 전 3개월 간 인기 ‘페이크뉴스’ 20건의 페이스북 내 공유·반응·댓글이 871만1000건에 달했다. CNN, 뉴욕타임스 등 유력 언론의 상위 기사 20건(736만건)의 반응을 넘어섰다. 

한국에선 주로 ‘페이크뉴스’를 ‘가짜뉴스’로 번역해 해당 개념을 언론의 오보를 비롯해 의도를 갖고 조작한 허위정보 등에도 적용했다. 2017년 2월 황교안 권한대행은 신속한 차단과 제도개선을 주문했고 야당은 반발했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인용되면서 후속 조치가 이뤄지진 못했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내용의 페이크뉴스.
▲ 프란치스코 교황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했다는 내용의 페이크뉴스.

20대 국회 가짜뉴스 규제 법안 쏟아져

2018년 10월 이낙연 국무총리는 “표현의 자유 뒤에 숨은 사회의 공적이며 개인의 인격을 침해하고 사회의 불신과 혼란을 야기하는 공동체 파괴범”들의 심각성을 언급하며 ‘허위조작정보’ 규제를 주문했다. 문재인 정부는 ‘가짜뉴스’ 표현이 모호하다며 ‘허위조작정보’를 공식 용어로 썼다.

2018년 10월11일 국정감사 당시 박대출 자유한국당 의원은 “가짜뉴스를 때려잡자고 국가기관을 총동원하고 총리가 지시를 한 사례를 지구상에서 본 적이 있느냐”고 반발했다. 그러자 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야당에서 먼저 적극적으로 만들었다”며 “심지어 징역형을 벌칙에 넣은 의원도 있다”고 맞받았다.

박근혜 정부와 문재인 정부 시기를 거친 20대 국회는 여야 불문하고 관련 규제 법안을 경쟁적으로 발의했다. 2019년 12월 한국언론학회 등이 개최한 <인터넷 표현에 대한 제20대 국회의원 입법평가 세미나> 자료에 따르면 20대 국회의 인터넷 표현 규제 법안은 139건에 달했다. 플랫폼에 허위 게시물 삭제를 요구하는 정보통신망법 개정안이 59건으로 가장 많았고, 공직선거법과 신문법도 각각 15건씩으로 나타났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 등 110명이 공동 발의한 법안은 포털 등 사업자에 ‘가짜뉴스’ 상시 모니터링 업무를 부과하며 이를 위반하면 7년 이하의 징역에 처하게 했다. 민주당은 박광온 허위조작정보대책특위 위원장이 플랫폼에 허위조작정보를 삭제하도록 하는 법안을 여러 차례 보완을 거쳐 발의했으나 처리되지 못했다. 이후 민주당에선 언론중재법 개정(징벌적 손해배상제)으로 논의를 선회했으나 이 역시 언론계 반발에 막혀 폐기됐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규제 공방이 이어지면서 동일 인물이 정반대의 입장을 내는 일도 발생했다. 2018년 박성중 의원은 야당 시절 “가짜뉴스 문제는 현행법으로 처리 가능하다.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도 국가가 나서서 가짜뉴스 근절을 추진하는 경우가 없다. 자율로 해야 한다”고 했다. 그랬던 그는 2023년 여당 의원이 되자 “가짜뉴스는 개인의 피해를 넘어서 언론의 미래, 대한민국의 건전한 발전에도 큰 악영향을 미친다”, “세계 어느 나라도 가짜뉴스에 대한 (규제) 부분은 있어야 한다”며 법 개정이 안 되면 시행령을 바꿔 규제에 나설 수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文정부 방통위의 ‘소신’

2018년 10월3일 정부는 범정부 차원의 허위조작정보 대책을 발표한다고 했으나 무산됐다. 당시 이효성 방통위원장이 마련한 자율규제·통신심의·미디어 리터러시 강화 등을 담은 대책이 이낙연 국무총리에게 퇴짜를 맞았기 때문이다.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언론학자 출신으로 관련 규제에 부정적 입장을 보여왔다. 2019년 7월 이효성 방통위원장은 중도 사퇴했다. 

이후 보궐로 임명된 한상혁 방통위원장 체제의 방통위는 2020년 3월11일 전문가회의 논의 결과인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을 보고 받아 채택했다. ‘허위조작정보’에 대해선 “언론사의 기사, 패러디, 풍자, 정치적 견해 등은 제외”한다고 명시했다. 기본원칙으로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려는 노력 필요 △정보·절차의 투명성 확보 노력 필요 △단순한 해결책 지양 △공개적인 의견수렴 절차 필요 등을 담았다. 방통위는 팩트체크넷을 출범시켜 팩트체크를 강화하는 정책을 폈다.

▲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문가협의 등 논의를 거쳐 낸 결론인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
▲ 2020년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문가협의 등 논의를 거쳐 낸 결론인 '허위조작정보 문제해결을 위한 제안'

미디어기구가 무리수 주도한 尹정부

윤석열 정부는 달랐다. 2023년 4월 박보균 장관 체제의 문화체육관광부는 가짜뉴스 퇴치 전면강화 정책을 발표해 한국언론진흥재단에 ‘가짜뉴스 피해 신고·상담센터’를 설치하게 했다. 같은 해 9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설치했다.

이어 2023년 8월 임명된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언론이 오보를 내면 퇴출하고 해당 기자의 이직도 막는 위헌적인 ‘원스트라이크 아웃제’를 추진한다. ‘가짜뉴스’의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그는 “순 진짜 가짜뉴스만 규제하겠다”며 굽히지 않았다. 이어 ‘심의 중’인 사안을 포털에 공표하게 하거나 우선 삭제하도록 하는 ‘가짜뉴스’ 대응 패스트트랙을 도입했다. 방심위 차원에선 인터넷 언론 심의를 강행한 데 이어 전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정부 비판 보도 무더기 중징계가 잇따랐다.

▲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개소식 모습. 류희림 방통심의위원장을 포함한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
▲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개소식 모습. 류희림 방통심의위원장을 포함한 정부여당 추천 위원들.

선진국도 규제? 입맛에 맞게 곡해

논의 과정에서 해외 사례를 곡해하는 경향은 반복된다. 문재인 정부 당시 민주당은 ‘독일 네트워크집행법’을 언급하며 규제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독일 법은 사업자에 ‘불법 콘텐츠’ 삭제 권한을 주고 결과를 공표하게 한 것으로 도입 당시 표현의 자유 침해 논란을 불렀을뿐더러 ‘가짜뉴스’ 규제와는 차이가 있고, 여러 차례 법이 보완됐다는 사실은 주목받지 않았다.

이후엔 프랑스의 ‘정보조작대처법’이 거론됐다. 윤석열 정부 때인 2023년 9월 윤재옥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프랑스조차 ‘정보조작대처법’을 만들었다”며 규제 필요성을 언급했다. 해당 법은 선거 전 3개월간 허위 의심 정보 삭제 요청에 판사가 48시간 이내에 판단, 유포 중지를 명령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 미디어정책 리포트에 따르면 2019년 유럽 선거 당시 프랑스 정보조작처벌법 제재 사례는 1건에 불과할 정도로 실효성이 떨어졌다. 한국은 공직선거법상 후보자를 향한 허위사실 유포뿐 아니라 비방까지도 처벌하고 있는 등 오히려 더 강한 규제가 있다는 사실도 간과됐다.

이동관 방통위원장은 2023년 11월20일 조선일보 인터뷰에서 EU에선 관련 규제가 도입됐다고 주장하며 “민주주의 근간을 위협하는 가짜뉴스를 단속하지 않는 것이 탄핵 사유가 돼야 한다”고 했다. EU의 디지털서비스법은 플랫폼 사업자의 책무와 투명성을 강화하는 규제로 정부가 나서서 가짜뉴스를 심의하거나 규제하는 내용이 아니라 사업자에 관리 책무를 포괄적으로 부과하는 방식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직원들이 2023년 유럽 규제 현황을 조사하고 작성한 출장 보고서는 “특정 정보를 삭제하는 결과적 접근이 아닌 온라인 사업자의 책임성을 제고하는 과정적 접근”이라고 판단했다.

선진국의 허위정보 규제 사례는 찾기 힘들다. 대신 권위주의 국가에서 규제가 도입돼 논란이 불거진 사례는 많다. 싱가포르는 2019년 10월 허위조작법을 도입해 정부 비판 목소리를 억제하는 데 썼다. 2021년 2월 이코노미스트가 국제언론인협회 자료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2020년 3월부터 10월까지 17개국에서 허위정보를 처벌하는 법안이 통과됐는데 러시아, 헝가리, 볼리비아, 루마니아, 요르단, 아랍에미리트(UAE), 베트남, 필리핀, 태국, 캄보디아 등으로 선진국을 찾기 어려웠다. 

개선해야 할 악법은 외면

강한 규제 논의가 이뤄지면서 한국의 과도한 표현물 규제 개선 논의에 속도를 내지 못하는 점도 문제다. 권리침해 신고자의 요청만 있으면 사실 여부를 파악하지 않고 무조건 게시물을 차단하고 보는 임시조치 제도는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무런 변화도 없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공정성’ 심의도 정치 심의라는 지적이 반복되고 있다. 공직선거법이 후보자에 대한 허위사실유포뿐 아니라 비방까지 처벌하는 것이 과도하다며 이를 개선하는 법안들이 발의됐으나 폐기되는 일이 반복됐다.

특히 한국은 형법상 명예훼손죄를 두고 있어 정부·기업 비판 보도를 위축시키는 문제가 크다. 윤석열 정부 시절 현직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언론인들이 압수수색을 당하고 검찰 수사를 받았다. 지난해 12월 미디어오늘 조사 결과 경향신문, 뉴스타파, MBC 등 언론사 10곳이 윤석열 대통령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고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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