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가기간뉴스통신사 연합뉴스가 과거 문재인 정부 관련 보도를 두고 기자와 데스크에 경위서 제출을 요구하는 감사 작업을 벌였던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연합뉴스는 이 과정에서 ‘업무 공정성’도 감사 대상으로 삼도록 사규를 개정했는데, 이를 노동조합에 즉각 통지하거나 협의하지 않았다. 편집권 침해이자 단체협약 위반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복수 연합뉴스 구성원에 따르면, 연합뉴스 감사실은 황대일 사장이 취임한 직후인 지난해 10~11월 자사 기자와 데스크를 상대로 보도 경위를 해명하는 경위서 제출을 요구했다. 현재는 감사 작업을 중단한 상태다. 연합뉴스 감사실은 황대일 사장 직속 기구다.
감사실은 황 사장 취임 이전 나온 정치·사회 기사를 문제 삼았다. 연합뉴스 기자들에 따르면 감사 대상에는 문재인 정부 시기 보도부터 윤석열 정부 이후 서해공무원 피살사건, 문 전 대통령의 양산 평산책방 최저임금 관련 기사 등이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한 연합뉴스 기자는 감사실이 기사의 특정 표현에 해명을 요구했다고 했고, 다른 기자는 보도 건수를 문제 삼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연합뉴스 내부에선 언론사 감사실이 일방적으로 과거 보도에 대한 감사를 벌인 것은 편집권을 정면으로 침해하는 행위라는 비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연합뉴스의 A기자는 “세계 어느 언론사에도 내부 감사실을 통해 보도 내용의 공정성을 문제삼아 감사하는 경우는 없을 것”이라며 “경영진이 공식적으로 편집권에 관여하겠다는 것으로 정말 심각한 문제”라고 했다.
이와 같은 감사 작업이 황 사장이 취임하며 예고한 ‘징비록 작업’의 일환 아니냐는 우려도 내부에서 나오고 있다. 윤석열 정부에서 임명된 첫 연합뉴스 사장인 황 사장은 지난해 10월 취임하며 “정치권 뒷배 등에 힘입어 인사 특혜를 누리는 부조리 관행을 혁파하고 감사 인력을 늘려 또 다른 참사를 예방하기 위한 연합뉴스판 징비록을 작성하겠다”며 “날조·왜곡·편파 기사가 폭주하고 근무 기강이 무너진 원인 등을 세밀하게 점검”하겠다고 했다. 감사 대상에 오른 보도엔 황 사장이 취임 전 활동했던 연합뉴스 공정보도노동조합이 성명으로 비판한 기사도 포함됐다.
연합뉴스는 또한 지난해 10월 감사 범위를 ‘업무’의 ‘공정성’으로 넓히도록 사규를 개정해놓고, 한 달여 뒤에야 이를 공지해 단체협약을 위반했다는 지적도 불렀다.
연합뉴스는 지난해 10월29일 시행 일자로, 기존 “회사 운영의 적정성과 개선점을 도출하여 경영합리화에 기여”라는 감사 목적을 “회사 업무의 적정성과 개선점을 도출하여 경영합리화 및 공정성에 기여”로 개정했다. 감사실 인원도 기준 ‘3~5인’에서 ‘4~7인’으로 확대했다. 연합뉴스는 이를 지난해 11월26일에 사내 게시판을 통해 통지했다. 연합뉴스 단체협약의 ‘통지의무’ 조항은 회사가 사규의 변경을 결정할 “즉시 노동조합에 통보”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전국언론노동조합 연합뉴스지부는 게시판 공지를 통해 사규 개정 사실을 처음 인지하고, 이에 대해 문제 제기했다고 전했다.
개정된 사규는 그 자체로 단협에 위배된다고 볼 수 있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근로기준법은 회사가 근로자에 불이익하게 사규를 변경할 경우 노동조합 또는 근로자 과반의 동의를 얻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공정방송도 근로조건에 해당한다’는 판례를 적용하면, 회사가 ‘보도 공정성’을 감사하도록 사규를 변경한 것이 근로조건의 불이익 변경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합뉴스 노사는 이미 단체협약에 ‘공정보도와 근로조건의 밀접한 관련성’을 명시하고 있다. 단협 2장 ‘편집권 독립과 공정보도’의 의의 관련 조항은 “회사는 공정보도의 실현이 조합원의 근로조건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보도와 관련한 부당한 압력을 단호히 배격해야 한다”고 밝힌다.
연합뉴스 경영감독기구인 뉴스통신진흥회에서도 사규 개정과 경위서 제출 요구의 적절성에 대한 문제 제기가 나왔다. 지난달 진흥회 회의에서 야당 측 위원이 연합뉴스 경영진에 감사실이 문제 삼은 기사들의 목록을 제출하도록 요구했다. 그러나 14일 정기회의에서 연합뉴스 측은 관련 업무 보고를 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유경 노무법인 돌꽃 대표노무사는 “법률적으로는 조항 자체가 편집권 침해이자 언론 탄압의 목적으로 만들어졌다고 보인다”며 “‘업무의 공정성’이라는 말 자체가 해석의 기준이 모호해, 정권을 비판하는 기사를 썼을 때 외부의 말 한마디에 근거해 이 규정을 근거로 감사를 벌이고 언론을 말살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말했다.
김 노무사는 “공정 보도는 언론노동자의 노동조건에 해당한다는 판례가 존재한다. 공정방송을 요구로 걸고 쟁의행위로 나가간 것이 불법파업이 아니라는 판단”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적극 해석한다면 회사의 신설 규정은 노동조건을 침해하는 불이익한 변경이라 볼 수 있다. 과반 노조에 불이익하게 규정을 변경하면서 합의가 없었다면 해당 사규 개정은 무효”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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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 관계자는 편집권 침해 문제에 문제를 제기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공문을 회사에 보낸 상태라고 전했다.
연합뉴스 홍보 담당자는 미디어오늘에 해당 감사가 현재 진행 중이지 않은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사규를 개정하며 언론노조 연합뉴스지부에 통지하거나 협의한 시점에 대해서는 밝히지 않았다. 연합뉴스 감사실장은 지난 10~14일 미디어오늘 전화와 메시지 취재에 응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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