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저녁 초대’ 만찬 행사에서 계란말이를 만드는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24일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열린 ‘대통령의 저녁 초대’ 만찬 행사에서 계란말이를 만드는 모습. ⓒ대통령실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 약속을 지킨 ‘김치찌개 만찬’이 또다시 “쇼통”이라는 비판을 불렀다. 대통령실과 여권이 연관된 정치·사회적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필요한 질의응답을 미룬 채 보여주기식 행사를 치렀다는 지적이다. 언론인들의 해외 연수 기회를 늘리겠다는 윤 대통령 발언은 본인뿐 아니라 만찬에 참석한 기자들을 향한 비판에도 불을 질렀다.

만찬은 지난 24일 오후 6시부터 서울 용산 대통령실 잔디마당에서 ‘대통령의 저녁 초대’라는 제목으로 진행됐다. 김치찌개, 계란말이에 더해 안동 한우, 완도 전복, 장흥 버섯, 무안 양파, 강원도 감자, 제주 오겹살, 이천·당진 쌀밥, 남도 배추김치, 여수 돌산 갓김치, 문경 오미자화채, 경남 망개떡, 성주 참외, 고창 수박, 양구 멜론 등 전국 각지를 대표하는 먹거리가 저녁 식사로 제공됐다. 술은 없었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 참모진은 흰 앞치마와 장갑을 착용하고 고기를 구워 기자들에게 나눠줬고 이 모습이 대통령실 홈페이지 사진 등으로도 공개됐다.

윤 대통령은 이날 국제관계·외교정책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기자들의 해외 연수 기회를 대폭 늘리겠다고 말했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이 문재인 정부에서 줄었던 장기 연수를 지속적으로 늘려 내년에는 80명 정도로 늘려 볼까 생각 중이라고 말하자, 윤 대통령이 한발 더 나아가 “내년부터는 세 자리로 만들어보자”고 말했다는 대목이다.

언론이 주로 보도한 현장 기자 발언은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임신 중인 기자가 “셋째까지 낳는 게 꿈이다. 저출생대응기획부·저출생수석 신설이 기쁘고 실효성 있는 대책으로 이어져 뱃속 아이에게 동생을 만들어 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말하자 윤 대통령이 “정신이 번쩍 나네”라고 답했다는 대목이 주로 인용됐다. 또 다른 기자가 국내 정치뿐 아니라 외교 관련 내용이 비중 있게 다뤄져야 하는데 국내 언론 상황이 그렇지 못한 것 같다고 말하자 윤 대통령이 “기자님들 관심이 국내 정치 현안에만 쏠린 것 같아 아쉬울 때가 있다”고 호응한 내용도 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출입기자들이 착석한 약 20개 테이블을 모두 돌며 기자들과 인사를 나눴다고 한다. 약 2시간가량 만찬이 이뤄졌고 윤 대통령이 테이블을 돌아다닌 시간은 20분 정도로 전해졌다. 대통령실이 개별 촬영과 녹취를 금지하고 행사 중 노트북 반입 등을 금지했지만 각 테이블에도 현장을 기록한 기자들이 배정된 것으로 파악됐다. 현안 관련 날카로운 질의응답이 오갈 수 없는 자리였다지만, 200여명의 기자가 참석한 자리에서 극히 일부 발언만이 전해진 것이다. 현장 발언 중에서 대표 취재단이 취재해 공유한 풀(POOL) 자료를 기반으로 기사화가 이뤄진 탓이다.

만찬에 참석한 일부 기자들은 특별히 민감할 것 없는 발언들도 지워졌다고 했다. 한 기자가 윤 대통령이 김치찌개 만찬 약속을 지켰다면서도 이런 약속 만큼이나 참모 뒤에 숨지 않고 언론의 질문을 직접 받겠다는 약속이 중요하다고 뼈 있는 발언을 건넸는데 인용 가능한 자료에 빠졌다고 전해진다. 또 다른 기자가 대통령, 국회의원, 부인의 공통점이 스스로 뽑아놓고 마음에 안 들어한다는 점이라며 농담을 던진 일도 있었다고 현장 참석자들을 통해 전해졌으나 역시 기사화된 곳을 찾긴 어려웠다.

윤석열 대통령과 이도운 홍보수석이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해외 연수 대상자를 늘리겠다고 말할 때 현 정부에서 언론 관련 예산이 대폭 삭감되지 않았냐는 반응도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관련 발언을 전한 기사들은 연수 확대 발언 이후 현장에서 ‘박수’가 나왔다고만 설명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대통령실 출입기자는 “지난번 (취임 2주년) 기자회견도, 이번 저녁 만찬도 왜 대통령과 만날 수 있는 자리에서 출입기자들이 국정 현안이나, 언론탄압, 언론 독립성 자유 침해 부분에 대한 민심의 여론과 그에 관한 질문을 말 못하냐”라며 “마이크를 줬다면 그 얘기를 했을 것”이라고 아쉬움을 전했다.

일부 지역 기반 언론의 경우 대통령실 지역기자단이 윤 대통령에게 “대통령실에 17개 시·도 40개 언론사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대통령께서는 지역에 40개 소통 창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말고 잘 활용해달라”는 당부를 했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유튜브 '윤석열' 채널 영상 갈무리
▲유튜브 '윤석열' 채널 영상 갈무리

대통령실은 ‘윤석열 대통령의 김치찌개 레시피’를 카드뉴스처럼 만들어 공개하고, 유튜브 채널에서 윤 대통령이 요리하는 모습을 숏폼 영상으로 만들어 공개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에 나섰다.

윤 대통령 만찬 이후 야권에선 김치찌개 만찬 자리를 ‘쇼통’으로 규정하는 비판이 이어졌다. 조국 조국혁신당 대표는 27일 페이스북을 통해 “김치찌개와 계란말이 만드는 것 외 국정운영 능력은 없는 대통령과 그 요리 능력을 찬양하며 대통령 앞에 공손히 접시를 내미는 기자들이 합작하여 보여준 희극적 비극”이라고 이번 만찬을 규정했다.

한민수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25일 “해병대원 특검법 거부에 대한 국민 분노가 하늘을 찌르고 서민들은 하루하루 살기가 힘들다 민생고를 호소하는데 한가하게 김치찌개를 배식하는 대통령을 보며 한탄만 나온다. 더 큰 문제는, 어제 만찬 행사가 기자들과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연출된 쇼통이라는 것”이라며 “기자들은 대통령과 얼굴을 익히는 것보다 국민의 물음에 대한 답을 듣길 바랐을 것”이라고 논평했다.

한국일보는 27일 사설에서 “현안에 대한 문답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민심의 전달 통로 중 하나인 기자단과의 소통 기회를 만들려는 노력 자체는 바람직하다”면서도 “김치찌개 만찬이 야당의 비판처럼 ‘쇼통’에 그치지 않으려면 기자단과의 만남을 정례화하면서 쓴소리에 보다 귀를 기울일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영희 한겨레 편집인은 28일 칼럼에서 “며칠 앞으로 다가온 ‘채 상병 특검법’ 거부권에 대한 국회 재의결, 그리고 바로 다음 날 시민 사회와 야당들이 총집결하는 대규모 집회가 예고된 터에 현안 질문 하나 못 하는 김치찌개 만찬이라니. 갑자기 기자 연수 확대를 언급한 것도 황당했다”며 “한국의 언론자유지수가 추락했다는 최근 잇단 발표는 대통령에게만 딴 나라 이야기인 듯하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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