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방심위 노조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덕원.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방심위 노조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덕원. 사진=금준경 기자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열린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노동조합 결의대회. ‘류희림은 사퇴하라’는 피켓들 사이로 익숙한 얼굴이 보인다. 방심위 직원들과 함께 퇴진 구호를 외치던 밴드 ‘브로콜리너마저’ 덕원은 무대에 올라 ‘잔인한 사월’, ‘졸업’, ‘유자차’ 등의 곡을 불렀다. ‘이 차를 다 마시고 봄 날으러 가자’ 위로하는 듯한 가사에 일부 직원들은 눈시울이 붉어졌다.

노동조합이나 시민단체의 저항은 고립되기 쉽다. 정치적 의도를 의심하는 눈초리에 목소리는 작아진다. 이름이 알려진 대중가수에게 이런 눈초리는 더 가혹하다. 총선을 2주 앞둔 예민한 상황에서 덕원이 방심위 직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지난달 28일 집회가 끝난 뒤 그를 만나 물었다. 그는 방심위 직원들처럼 ‘누구든 이런 상황에 놓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는 방송회관 18층 방심위 노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셀프민원? 정말 말이 안 되는 일… 부끄러움이 없는 것 같다”

- 어떻게 방심위 집회에 참여하게 됐는지 궁금합니다.

“아무래도 다른 뉴스보다 조금 더 관심이 가는 부분이 있어요. (스스로) 미디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이전에 KBS, MBC가 투쟁할 때도 더 응원하는 게 있었고 실제로 집회도 많이 참석했었죠.”

- 그렇다 하더라도 집회에 참여하고 목소리를 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일 텐데요.

“뉴스에서 ‘셀프민원’ 보도를 봤어요. 가족을 (민원에) 동원했다는 소식을 듣고 ‘참 한심하구나’ 생각을 했죠. 그러다가 방송국 가던 길에 방심위 노동조합 분들이 1인시위하는 걸 본 거죠. 그 현장이 바로 앞에 있었는데 내가 몰랐구나 그때 깨달았죠. 마침 또 그즈음 노동조합에서 제안(초대가수)을 주셨어요. 어떻게 보면 우연처럼, 어떻게 보면 필연으로 연결됐네요.”

▲ '류희림 퇴진' 피켓을 들고 있는 덕원. 사진=박재령 기자
▲ '류희림 퇴진' 피켓을 들고 있는 덕원. 사진=박재령 기자

- 사실 방심위가 대중에게 익숙한 기구는 아닙니다.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와 자주 혼동되기도 하고요.

“맞아요. 방통위가 대통령이 야권 위원을 임명하지 않아서 논란이 됐던 기구죠? (방심위도 마찬가지로 야권 위원이 임명되지 않았다고 하자) 아 정말 똑같은 방식이네요(웃음). 그러니까 지금 이러한 것들이 지금 정권의 특징인 거 같아요. 규칙을 이용하면서도 고약한 방식으로 이용하는.”

- 규칙상 위원 임명권이 대통령에게 있으니 임명을 대통령이 미룰 수 있는 구조죠.

“보통 여야가 위원 추천권을 나눠 갖는 게 대통령 일방적으로 하는 걸 막자는 의미잖아요. 그래서 추천 기관을 서로 다르게 한 건데 그거를 무시하는 것 아닌가요. 개인적으로는 (대통령) 거부권을 반복해서 행사하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보였어요. 거부권이라는 규칙이 있는 건 맞지만 규칙이 있다고 해서 남용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 ‘셀프민원’ 이슈가 터졌을 때 많은 사람들은 류희림 위원장이 금방 물러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근데 아직도 자리에 머무르고 있네요. 방심위 이슈가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서 그런 걸까요.

“저는 좀 다르게 생각해요. 물론 (이슈가) 더 알려지면 좋겠죠. 그런데 기본적으로 지금 정권의 사람들은 부끄러움이 없는 거 같아요. 만약 예전에 이런 이슈가 터졌다면 사퇴하고 사과하는 흉내라도 냈던 것 같거든요. 근데 이번엔 ‘나는 이런 마음이었는데 너네는 왜 그러냐. 반대 진영의 편드는 것 아니냐’, 이렇게 반문을 하잖아요. 이런 걸 보고 있기가 괴로운 거죠.”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위원장. ⓒ연합뉴스

- 여당은 방심위 운영에 저항하고 있는 내부 구성원들이 ‘정치색’을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싸우기 위해 그렇게 갖다 붙이는 것 같네요. 이건 특정 진영의 문제가 아니지 않나요. 최근 정권에 대한 비판 여론이 많이 뭉치는 느낌인데 이건 진영 논리가 아니라 지금 정권이 사회 근간을 다 부수고 있다는 것에 대체로 동의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사회 근간 부수는 윤석열 정부… 일반 시민으로 목소리 낸 것”

- 사회 근간을 부순다는 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가 지금까지 만들고 유지해온 제도가 있잖아요. 그 제도를 운영하는 데 있어서 바탕이 된 기본적 합의들이 있을텐데 그것들을 무시하는 거 같아요. 사회를 함께 꾸려나가면서 의견이 다른 부분이 있으면 이야기를 나누고 합의점을 찾는 거잖아요. 지금 그런 게 있나요.”

- 방심위 사태를 현 정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과 연결된 사례로 보는 것 같네요.

“정부가 규칙을 이용해서 폭력을 행사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규칙을 이용하더라도 정당성이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을 깊게 보면 문제가 심각한 거죠. 만약 어떤 규칙이 있다면 자연스럽게 정부는 ‘그 규칙 안에선 우리가 어디까지 할 수 있는 거지’라는 생각이 자동으로 돌아가는 것 같아요. 이런 식으로 운영하는 게 선입견에 근거한 표현이라 조심스럽지만, ‘검사 스타일’이 아닌가 싶어요.”

- 방심위는 뉴스 보도를 심의하기도 하지만 인터넷 게시물을 심의할 수도 있습니다. 대통령 풍자영상을 방심위가 접속 차단하자 ‘표현의 자유’ 위축 우려도 나왔는데, 가수로서 표현의 자유는 민감한 부분일 것 같기도 합니다.

“사실 그 부분이 제 작업하고 겹치는 건 많이 없다고 생각해요. 기본적으로 제가 집회에 참여한 건 문화예술인으로서 문제를 심각하게 느꼈다기보다는 그저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 때문이에요. 얘기하고 공감하고 같이 연대하고 싶다는 마음이 더 컸던 거 같아요.”

▲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열린 '류희림 사퇴' 결의대회. 사진=박재령 기자
▲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앞에서 열린 '류희림 사퇴' 결의대회. 사진=박재령 기자

- 가수가 아닌 일반 시민으로 참여했다, 그렇게 봐도 되는 걸까요.

“네, 그렇네요. 정당하게 투쟁하는 곳이 있으면 혼자 고립되지 않게 시민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목소리를 내는 것과 비슷하죠. 물론 저는 좀 관심이 많은 시민일 테지만(웃음).”

뿌리 깊은 언론 불신에도… ‘언론 자유 위해 싸우는 이들 있다’

- 투쟁하는 입장에선 시민 관심이 절실한 게 사실입니다. 하지만 시민들이 ‘언론자유’ 투쟁은 비교적 거리가 먼 것처럼 느끼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민들이 언론에 대한 불신이 높잖아요. 근데 사실 또 면면을 보면 책임감 있는 언론인도 많거든요. 조직 등에 의해 그런 개인이 묻힐 수 밖에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지금과 같은 상황에선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죠. ‘어딘가 종속되지 않기 위해 언론 공정성을 위해 싸우는 사람도 있다.’”

- 오늘 집회에 와서 실제 언론 자유를 위해 싸우는 사람들을 보셨겠네요.

“맞아요. 오늘 보면서 더 많이 느낀 거죠. 이게 의미가 있구나. 연대할 가치가 있구나. 이런 분들에게 응원을 전할 수 있어야지 언론에 대해 ‘이런 게 잘못됐어’라고 말할 수 있는 거거든요. 오히려 책임감을 가지고 보도하고 싶은 사람들은 탄압받고 있는데 특정 보도가 맘에 안 든다고 언론을 다 싸잡아 비난할 수 있나. 그런 의문이 드는 거죠.”

▲ 인스타그램에서 일어나고 있는 '류희림은사퇴하라' 운동.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투쟁의 방법 중 하나다.
▲ 인스타그램에서 일어나고 있는 '류희림은사퇴하라' 운동. 젊은 세대가 주축이 된 투쟁 방법 중 하나다.

- 대중가수로서 정치적으로 민감한 문제에 목소리 내는 것이 두렵진 않나요.

“사실 특정 진영에 속해서 정치 활동을 하는 것과 특정 사안에 대해 자신의 정치적 의견을 얘기하는 건 좀 다른 문제라고 생각해요. 잘못된 것들에 대해 ‘건’별로 비판하는 것과 어떤 세력의 방식으로 힘을 실어주는 것과는 다른 것처럼요. 저는 나름대로 원칙이 있긴 해요.”

- 방심위와 정권에 대한 비판 목소리를 내는 것이 특정 진영을 위한 목소리가 아니라는 거죠?

“사실 저 안전한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웃음). 사실 그게 보수적인 거잖아요. 지금처럼 아주 참신한 방법으로 사회 근간을 부수는 정부가 보수의 탈을 쓰고 있다는 게 웃긴 거죠. 사회적으로 기본적인 합의 같은 것들이 중요하다 느낄 뿐이에요. 진보 보수로 나눌 게 아니라 ‘나는 기본적인 건데’ 이런 생각을 하는 거죠. 그런 ‘정상’에 대한 얘기를 얹은 것이라 ‘내 목소리가 그렇게 정치적인가’하는 생각은 드네요.”

- 방심위 관련 논란이 워낙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라 의도치 않게 여러 공방이 생기니까요. 총선을 앞둔 문제도 있고.

“저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아요. 인디밴드라 눈치 볼 일이 많지는 않아요. 팬들 눈치는 보지만(웃음). 아까 나름 원칙이 있다고 한 것처럼 제 행동과 제가 생각하는 바에 대해 나름의 입장이 있어요. 물론 (목소리를 내는 것이) 가수에게 플러스라고 생각하진 않죠. 그래도 그 정도도 감수하지 못할 이유는 없어요.”

“억압받는 공동체 위해 우리가 ‘중간’ 정도의 에너지를 쓴다면… ”

- 마지막으로 방심위원장 퇴진 집회를 함께 한 소감을 묻고 싶습니다.

“오랜만에 바닥에 앉아서 참신한 느낌이었고(웃음). 젊은 사람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학생운동을 따로 하지 않았던 세대도 단결하고 함께할 수 있구나 느꼈던 것 같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정치적인 활동을 많은 사람들이 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디 진영에 속해야 한다는 게 아니라 ‘공동체’라는 의미에서요. 내 주변에 관심을 갖고 함께 만들어가고, 이런 것들이 나의 생산과 ‘삼위일체’가 돼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잘못된 게 있으면 같이 바꾸고 바꾸기 위해 내 에너지도 쏟고. 그런데 이렇게 모여서 뭘 하기가 사실 시간 투자가 없으면 힘든 일이잖아요.”

▲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방심위 노조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덕원. 사진=금준경 기자
▲ 지난달 28일 서울 목동 방송회관 방심위 노조사무실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덕원. 사진=금준경 기자

-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선 공동체적 삶이 필요하다는 말 같네요. 그래서 집회에 참여하는 ‘연대’를 보이신 건가요.

“‘중간’ 정도의 에너지를 쓰는 거죠. 삶과 취미의 밸런스를 많은 사람들이 얘기하잖아요. 마찬가지로 저에게 할당되는 에너지가 있다면 그중 일부는 사회에 대한 정치적 활동에 쓸 수 있다는 거죠. ‘풀뿌리 민주주의’라는 말이 그런 것 아닐까요.”

- 방심위 직원들처럼 격렬하게 투쟁하진 못하더라도, 연대의 목소리만으로도 좋은 삶을 위한 정치적 활동이 될 수 있겠네요.

“또 이런 에너지가 활성화돼야 권력자들이 ‘헛짓’을 못한다고 생각해요. 지금 방심위가 전형적인 헛짓이잖아요. 헛짓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많아야 하는 거죠. 물론 지금 하는 연대 이상으로 타인이 무언가를 하긴 쉽지 않으리라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사회에 ‘중간’ 정도 에너지를 쏟는 사람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격렬한 투쟁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어디로 훅 넘어가지 않는 ‘중간’. 그 중간이 많아져야 외롭지 않고 투쟁하는 사람들이 힘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런 마음에서 이번 집회에 참여하게 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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