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세상에는 500원짜리 과외수업도 있습니다."
신문의 날인 어제 4월7일, 집에서 보는 H신문
한 쪽에 이런 광고가 실렸습니다. 돈 안 드는 획기적인 과외수업법이 새로 개발되기라도 했나 싶어 눈을 크게 뜨고 살펴 봤드랬습니다. 그랬더니
한국신문협회에서 만든 광고더군요. NIE처럼, 신문을 잘 이용하기만 하면 교육적으로 큰 효과를 거둘 수 있으니 신문을 많이 봐 달라는 그런
메시지를 담은....
"학업성취도가 10% 높아진다고
합니다.

▲ 한겨레
4월7일자
언어능력이 20% 올라간다고 합니다.
작문에 대한 흥미가 48% 증가된다고 합니다.
겨우 500원짜리 이 신문이
말입니다.
NIE(Newspaper In Education)가 이미 정착한
미국, 유렵 등지에선 살아있는 교육을 위해
가장
중요한 교육매체로 활용되고 있는 신문 -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방면의 지혜를 한꺼번에 얻을 수 있습니다.
이만한 비용으로 이만한 효과를 거두는
과외수업, 또 있을까요?
배워야 할 모든 것, 신문에
있습니다."
신문협회의 광고 아니라도 우리집에선 이미 오랜 전부터 아이들 교육용으로 신문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아마 자녀교육에 관심이 많은 다른 집에서도 대부분 그럴 것입니다. 저는 논술 대비와 시사·상식공부 용으로 아이들에게 매일
사설과 칼럼 등을 읽게 하고 있는데 효과(?)가 꽤 좋습니다. 국어공부에도 큰 도움이 되구요. 그런데....
광고문안의
맨 마지막에 붙은 "배워야 할 모든 것, 신문에 있습니다"는 문구가 자꾸만 눈에 밟힙니다.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신문들을 꾸준히 모니터링해
온 사람으로서 신문의 해악을 누구보다 잘 아는 탓입니다. 과연 신문에서 얻을 수 있는 게 앞서 말한 것처럼 긍정적인 것들만 있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예전에 지방의 한 순진한 여학생이 신문에 난 수능점수 예측보도를 보고 스스로 절망에 사로 잡혀 옥상에서 몸을
날려 자살한 사건은 떠올리고 싶지 않습니다. 한때 일제의 앞잡이로서 '귀축미영'을 부르짖던 자칭 '민족지'들이 이젠 미국의 편에 서서
'한미공조'를 노래하는 꼬라지는 더더욱 기억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무책임한 오보로 인권을 침해하고 뻔뻔한 거짓말로 민족을 속인 것이 어디 한 두
해의 일이라야지요.
한국신문협회의 광고처럼, 신문을 통해 학업성취도를 높이는 것은 중요합니다. 신문을 통해 언어능력을
끌어올리고 작문에 대한 흥미를 증진시키는 것도 중요합니다. 신문을 통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예술, 스포츠 등 다방면의 지혜를 한꺼번에
얻는 것도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들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문을 통해 세상을 보는 눈을 기르는 것입니다. 시시비비를 분별하는
나름의 가치관을 형성하는 것입니다.
흔히들 신문은 세상을 보는 창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세상을 비추는 이들 창문
자체가 왜곡되고 비뚤어져 있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필경 바라보는 이들의 눈 또한 덩달아 왜곡되고 비뚤어지지 않겠습니까? 이 땅의 신문지들마다
'정도언론'이니 '독립언론'이니 하는 미사여구로 자신을 분칠하지 않은 신문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들 가운데 과연 사전적 의미 그대로
'정도언론' '독립언론'에 합한 언론이 얼마나 될까요? 아니 그런 신문이 실제로 존재하기나 하는 걸까요?
총선을 목전에
두고 온 나라가 떠들썩합니다. 탄핵을 강행한 거야심판론이냐 탄핵 후폭풍으로 득을 본 거여견제론이냐, '탄풍'이냐 '노풍'이냐를 놓고 두 편으로
나눠 설왕설래하고 있습니다. 이 와중에 몇몇 신문들은 아예 드러내놓고 정당의 선거운동을 하고 있어 보는 이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한 입으로 방송의 편파성을 비난하면서 다른 입으로 특정정당의 당보노릇을 자처하고 있는 그런 신문들을 통해서 우리 아이들이 배울 수 있는 게
무엇일까요?
한 입으로 두 말 하기? 눈 가리고 아옹하기? '가재는 게편'이라는
속담 확인시켜 주기? 네편 내편 나눠 서로 다른 잣대 적용하기? 이 세상에 '불편부당'과 '공정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실증적으로 보여주기? 편당질은 이렇게 하는 것이라는 걸 실연해 보여주기? 신문에서 한 말을 다 믿어서는 안 된다는 것,
나아가 신문 자체도 무조건 믿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온 몸으로 웅변해 보여주기....?
신문의 날에 실린
한국신문협회의 광고를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습니다. 신문의 날은 아시다시피 신문의 사명과 책임을 각성하기 위해 <독립신문>의 창간일을 기념해
만든 날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가 보는 것처럼, 총선에 올인하여 몸을 던지는 '정당지'들은 많아도 신문의 사명과 책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는 '정론지'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것이 한국 신문의 현주소입니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한국신문협회는 이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는 냥 "배워야
할 모든 것, 신문에 있다"고 자랑스레 선전만 해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말로 그렇게
생각합니까?"
문성/언론인권센터 대외협력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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