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일 19시 50분 당시 부안 수협 광장 앞 농성 천막에는 '핵폐기장 백지화를 위한 문규현 신부 9일째 단식'이라는 현수막이 세찬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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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핵폐기장 건설 백지화를 촉구하며 21일 부안군 수협 앞 광장에서 9일째 단식농성을 하고 있는 문규현 신부가 경찰에 둘러싸인 채 연좌 촛불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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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창길기자 | ||
이후 20시 10분 한 경찰 관계자는 "여러분의 마음은 잘 알겠지만 이러시면 안됩니다. 여러분이 해산하지 않으시면 들어낼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얘기하자 전경들은 농성장 주위에 모여 움직이지 않는 스무 명 정도의 주민을 한 명씩 끌어냈다.
이후 5분 정도가 흘러도 주민들이 계속 남아있자 경찰 관계자는 "법과 질서가 있습니다. 여기서 하는 촛불시위는 금지됐습니다"라며 남은 주민들을 농성장 밖 도로로 끌어냈다. 이 와중에 한 경찰이 "오늘 여기 눈온답니다"라며 귀가를 종용하자 연좌농성중인 한 할머니는 "너희들이 우리 죽는 것을 생각 하냐? 얼어죽는 것 걱정하지 말고 차라리 여기서 죽여라"라고 항의했으나 이윽고 끌려나가고 말았다.
수협광장 주변에는 경찰의 원천봉쇄에도 불구하고 곳곳에 흩어져 구호를 외치는 주민들이 200여명 가량 됐으며 경찰은 집회 해산을 종용하는 방송을 계속했다. 이 날 전경들은 취재 중에 있는 참소리 사진기자를 바닥으로 밀치기도 했으며 본지 기자도 손으로 밀치는 등 흥분된 모습을 보였다.
20시 20분 당시 농성장에서 30m정도 떨어진 홈마트 앞에서도 스무 명 남짓의 주민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었으며, 우측에서도 서른 명 남짓의 주민들이 핵폐기장 반대와 폭력경찰을 성토하는 구호를 계속 외쳤다.
집회 참가자들이 "핵폐기장 결사반대", "김종규를 때려잡자", "노무현도 때려잡자"는 구호를 외치자 경찰병력은 대오를 짜고 광장 외곽으로 이들을 몰아 붙였다. 이후 몸싸움이 벌어지자 주민들은 "서러워서 못살겠다", "계속 밀어라. 고속도로까지 나가보자"며 항의했으나 수협광장에서 100m정도 떨어진 진성APT 사거리까지 밀려났다.
진성APT 사거리에서 만난 한 주민은 취재중인 본지 기자에게 "기자 사칭하는 사람들에게 사진 채증을 많이 당했다. 미안하지만 신분조회 좀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기자 신분이 확인된 이후에도 여러 주민들은 "찍어만 가면 뭐해. 제대로 보도되지도 않는데"라며 언론에 대한 강한 불신감을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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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찰의 촛불시위 원천봉쇄로 부안 수협 앞 사거리에서 통행이 막힌 한 부안군민이 길을 막아 선 전경에게 강하게 항의하고 있다.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 ||
20시 40분경 수협을 중앙으로 진성APT 반대쪽인 터미널사거리에서는 전경들의 원천봉쇄로 귀가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발만 동동 구르고 있었다.
음식점을 운영하는 한 30대 여성은 "며칠째 장사도 못하고 있다"며 "내 가게 내 마음대로 가지도 못하는 지금이 계엄이 아니고 뭐란 말이냐"라고 울분을 토했다. 전경 대오 바로 뒤 건물 커피숍에서 급한 약속이 있다는 유 모씨도 "신분증을 보여주고 들어갔다 오겠다는데도 집시법 위반이라며 거부당하고 있다"며 "잘못한 것이 있으면 연행해 갈 것이지 그것도 아니고 도대체 이 무슨 경우인가"라고 전경과 본지 기자에게 항의했다. 유 모씨는 또한 "지금이 군사정권보다 못할 게 뭐냐"며 "내가 내 동네 다닌다는데 누구한테 허락 받고 다니란 말인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경찰병력이 원천봉쇄하고 있는 방향인 진성APT에 산다는 한 30대 주부도 "퇴근 후 집에도 빨리 못 가고 며칠째 늦게까지 이런 일이 반복된다"며 "집회장에 사람들이 모여있지 않는데도 이러는 것은 이해가 안 간다"고 지적했다.
곁에 서있던 다른 주민도 "말로만 주민보호라고 떠들지 주민이 원하지 않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 아닌가"라며 "정부는 밤늦은 시간까지 길가에서 벌벌 떨고 있는 부안군민들 치료비를 내놓아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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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1일 저녁 수협 앞 광장으로 통하는 길목을 원천봉쇄한 경찰이 핵폐기장 건설 반대를 외치는 부안주민을 해산시키고 있다. 이창길기자 photoeye@mediatoday.co.kr | ||
21시 30분경 학원 수업을 마치고 수협앞을 지나던 부안여중 3학년 박 모양은 "학교에서도 매일 핵 폐기장 이야기뿐이고 학원에서도 시끄러워 공부가 안 된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김 모양도 "고입 연합고사가 다음달 12일로 다가왔는데 공부가 모자라 걱정된다"며 "부모님들께서도 밤길 걱정을 많이 하신다"고 말한 뒤 귀갓길을 서둘렀다.
21시 40분에는 고창군 김주성 농민회장 외 2명이 농성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병력에게 제지당했다. 김 회장은 "신부님 힘내십시오. 그동안 함께 하지 못한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라며 문 신부와 경찰병력 너머 대화를 나눴다. 이에 문 신부가 "핵폐기장"이라는 구호를 외치자 김 회장 등은 "결사반대"라는 구호로 화답하며 "앞으로 고창군이 부안군과 함께 싸워나가겠다"는 말을 남기고 돌아섰다.
21시 50분경 진성APT 베란다에서는 주민들이 창밖으로 몸을 내밀고 "핵폐기장 결사반대", "노무현을 때려잡자" 등의 구호를 아래 서있던 주민들과 함께 외치는 풍경이 연출되기도 했다.
22시경 경찰병력의 원천봉쇄와 해산작전으로 많은 주민들은 집을 향해 발걸음을 돌렸고 남은 몇몇의 주민들은 수협광장 근처 곳곳에서 산발적으로 구호를 외쳤다. 잠시 뒤 문 신부 등 세 명의 연좌농성단에게는 한 주민이 보낸 장미꽃이 전경에 의해 전달됐고 이후 상황은 소강상태로 접어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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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시 20분경 성모병원 로비에는 십 수명의 주민들이 둘러서 오늘 상황에 대해 논의를 하고 있었으나 수협 현장에서 별다른 충돌이 없어 응급실과 병원 전체는 조용했다. 이 곳에서 만난 주민들은 20일자 언론 보도에 대한 강한 반발감과 함께 기자에 대한 경계심을 보였다.
자정이 넘어 주민들과 이야기를 마치고 돌아가던 중 들린 수협광장에는 농성천막만이 불을 밝히고 있었으며 사방을 봉쇄하던 전경병력도, 구호를
외치던 주민들도 돌아간 채 눈발만 내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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