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히 소리 내어 민주주의를 외치기도 어렵던 때가 있었습니다. 서슬 퍼렇던 독재정권 시절 ‘말 많으면 빨갱이’라는 농담 같은 진담이 있었고, ‘보도지침’이라는 언론통제는 말 할 것도 없었지요. 모든 정치적 의사표현의 수단을 박탈당한 시민들이 ‘거리의 정치’에 나선 때 가장 처음 마주한 것이 바로 전투경찰과 최루탄이었습니다. 최루탄은 단순한 시위해산용이 아니라 사람들을 숨 막히게 했고, 목숨을 앗아가는 살상탄이었습니다.

민주주의 고비마다 우리는 최루탄으로 인한 아픔을 마주해야 했습니다. 얼굴에 최루탄이 박힌 채 바다에 수장되었던 고등학생 김주열의 시신은 4·19 혁명의 도화선이 되었고, 1987년 거리에는 최루탄에 맞아 쓰러진 청년 이한열이 있었습니다. “최루탄 얼룩진 저 하늘 위로 날아오르고 싶다”고 적었던 이한열의 낙서는 아마도 온 국민의 마음이었을 겁니다.

그 시절 민주주의 정치를 실천하는 여성들은 1987년 6월 18일을 ‘최루탄 추방의 날’로 정해 온 몸으로 평화적 저항을 실천했습니다. ‘쏘지마, 최루탄!’

   
 
 

30여년이 지난 2015년 9월 14일 우리는 이웃나라 터키의 이웃들로부터 한 통의 부끄러운 공개편지를 받았습니다. 화학무기이자 고문 도구인 최루탄을 터키에 수출하지 말아달아는 내용입니다. 이제 매캐하고 자욱한 최루탄 연기는 우리들의 거리에서는 사라졌지만, 최루탄은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 땅에서 저항하는 민주주의를 눈물 흘리게 했던 최루탄이 다시 ‘창조경제’의 수출품목이 되어 우리 이웃을 눈물 흘리게 하고 있다고 합니다. 부끄럽게도 이명박 정부는 2010년 ‘국방 선진화를 위한 산업발전전략과 일자리 창출’ 방안을 발표하면서 최루탄을 포함한 무기를 다른나라에 수출하겠다고 나선 겁니다.

터키는 악명 높은 최루탄 오남용 국가입니다. 2015년 8월까지 한국에서 해외로 수출된 최루탄의 양은 약 500만 발에 달하며, 이중 3/4 가량인 380만 발이 터키로 수출됐다고 합니다. 올 한 해 한국이 수출한 최루탄이 196만발로, 이 중 88%인 173만발이 터키로 갔습니다. 2013년 터키 반정부 시위 때 15살 소년이 최루탄에 맞아 숨지면서 국제적 반대여론에 밀려 최루탄 수출을 유예했었지만, '탄피에 한국산 표기 금지'를 조건으로 다시 수출을 재개한 것입니다. 터키 내 50여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최루탄 금지운동(Ban Tear Gas Initiative)’은 한국 방위사업청장에게 공개서한을 보내 한국이 "매 순간마다 터키 시민이 죽거나 다치는 일을 돕고 있다"고 말합니다. 터키 뿐만이 아닙니다. 지난 2011년 아랍의 봄 당시에도 바레인 보안군이 반정부 시위대를 폭력 진압하면서 최루탄을 사용해 수십 명의 사망자가 발생했습니다. 바레인 인권단체 ‘바레인 워치(Bahrain Watch)’에 따르면, 2011년부터 2013년까지 바레인에 가장 많이 최루탄을 공급한 것이 바로 한국 기업들이었다고 합니다.

9월15일은 ‘세계 민주주의의 날(International Day of Democracy)’입니다. 한국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제정한 날이라 더 의미 있다고도 하고, 국회에서도 대규모 행사를 개최했습니다. 한국이 세계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일은, 아니 최소한 민주주의를 훼손하는데 일조하지 않는 길은 과연 무엇인가요? 국내 시민단체들도 최루탄 수출 허가 취소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지구촌 이웃 터키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은 편지를 받았으니, 우리도 진심을 다해 답신을 해야 합니다. 

민주주의를 억압하는 최루탄 수출을 금지하라. ‘팔지마, 최루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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