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3일, 새정치민주연합 민병두 의원실과 대한노인회 서울시연합회 등은 이른바 ‘불효자식 방지법’을 발의하겠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기자회견의 제목은 “세대 간 연대를 위한, ‘불효자식방지법’ 발의 기자회견 : 더 많이 ‘효도’ 하면, ‘노인 빈곤’이 줄어듭니다.” 였다.

불효자식 방지법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다. 첫 번째로 민법을 고쳐 부양의무를 다 하지 않은 자녀에게 재산 증여를 취소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고, 두 번째로는 형법을 고쳐 부모에 대한 폭행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다. 친족 간의 살인, 폭행, 사기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한 우리나라의 법률이 많은 피해자를 낳아온 것도 현실이기 때문에 필요한 개정일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런 개정이 노인빈곤문제 해결, 나아가 세대 간 연대를 일구는 것과 대체 무슨 관계가 있냐는 것이다.

불효자식 방지법이 선언하는 바는 간명하다. 모든 것을 다 주고도 부양받지 못하는 노인들에게 더 강력한 법의 보호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노인빈곤의 실체는 ‘재산을 증여하고도 대접받지 못하는’ 노인의 모습에 있는 것이 아니다. 줄 것도, 받을 것도 없는 부모와 자식이 서로의 속사정을 가까스로 외면하며 사는 모습에 가깝다.

   
▲ 사진=빈곤사회연대 제공
 

민법이 규정하는 부양의무보다 훨씬 더 강력한 부양의무를 적용하는 제도가 이미 있다. 바로 최후의 사회안전망, 기초생활보장제도다. 부양의무자기준에 따라 부양의무자에게 소득이나 재산이 발견되는 것만으로도 수급자는 수급비를 삭감당하거나 박탈당할 수 있다.

부양받지 못하는 노인과 불효자식들의 실제 풍경은 이렇다.

서울의 A할아버지는 자녀들이 소득이 많아 기초생활수급자에서 탈락했다. 그러나 할아버지의 자녀들은 모두 부채가 많아 빚을 갚느라 할아버지를 도울 여력이 없다. 장애가 있는 자녀를 키우고, 사업에 실패해 빚에 쫓기는 자식들에게 자신을 부양해달라고 할 수 없다는 할아버지는 ‘없이 키운 것만으로도 미안하다’는 말 뿐이었다.

B할아버지는 만 65세가 되었지만 ‘차상위 계층’으로 자활사업에 참여 중이다. 부인은 61세로 활동보조인 일을 하고 있다. 이들에게는 아직 공무원시험을 준비 중인 31세 딸이 있다. 세 가족의 소득을 합쳐도 150만원 남짓. 40만원의 월세를 내고 나면 생활이 빠듯하다. 불효자식 방지법은 이들의 삶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

불효자식 방지법은 이 시대의 불효자들이 어떻게 부모의 삶을 외면하게 되는가에 대해 관심이 없다. ‘불효’를 개인의 이기적 동기에 의한 ‘선택’이라고 단정하고 이들을 비난한다. 이들이 효도한다면 노인 빈곤이 해결될 것이라고 선전하며 도리어 세대 간 갈등을 조장하고 있다.

2012년 거제에서 이씨할머니가 사위에게 부양받을 수 없다며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같은 해 청주의 요양병원에서 부양의무자기준으로 인한 수급 탈락 후 두 명의 노인이 투신했다. 자식에게 연락이 가는 것조차 부담스러워 수급신청을 포기하는 노인이 있는 세상, 자신의 소득이 높아지면 치매 어머니가 병원에서 쫓겨날까 전전긍긍하며 직장을 찾는 딸이 있는 세상, 자녀의 소득 때문에 수급권을 빼앗기자 스스로 목숨을 끊는 아버지가 있는 세상에서 불효자식 방지법은 대체 어떤 빈곤노인을 향한 것인가?

‘불효자식 방지법’이 가난한 노인들의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것이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염려되는 것은 ‘불효자식 방지법’ 이라는 이름의 법안이 빈곤문제와 노후문제를 개인과 가족의 책임으로 돌린다는 점이다. 기초연금 두배 지급과 부양의무자기준 완화로 노인빈곤문제 해결이 필요하다고 했던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에 조차 미달하는 야당식 노인빈곤 해법이 놀라울 따름이다.

100억 이상의 주식을 소유한 ‘어린이 주식부자’가 우리나라에 8명이 있다고 한다. ‘억대’ 주식을 소유한 어린이도 121명이다. 부자 가족들이 서로를 돕기란 그리 어렵지 않은 듯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과 제도는 가장 가난한 이들에게만 가장 가혹한 부양의무를 지우고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 부양의무자기준 폐지는 가난한 가족들이 ‘부양의무’ 라는 족쇄에서 벗어나 서로의 발전과 더 나은 삶을 위한 진짜 효도를 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조치다. 생존은 사람이 사람일 수 있는 첫 번째 조건이기 때문이다.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의 기사 잘 읽으셨나요?
후원은 더 좋은 기사에 도움이 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