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그래도 팍팍한 일상에 뜨거운 전염병 메르스까지 덮쳐 사람들의 뼛속까지 공포와 무기력이 녹아내린다. 누구랄 것 없이 고단한 시절이지만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한 3포세대, 대인관계·내집마련까지 포기한 5포세대, 급기야 ‘꿈과 희망’ 자체를 포기해야 한다는 7포세대 청년들은 누구보다 새로운 사회가 간절할 수밖에 없다.
정부나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일자리나 주거에 관한 청년정책들을 내놓고 있고, 정치권에서도 ‘청년정치’ ‘청년정치인’이 화두가 된 지 오래이다. 2012년 총선 당시에는 각 정당이 청년비례대표를 선출했고, 지난 3월에는 원혜영의원 대표발의로 지방선거 지역구 청년의무공천제를 내용으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정안이 제출되었다. 여성의무공천제와 같이 지방선거에서 국회의원 선거구별로 최소한 청년 1인 이상을 지역구에 공천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청년이 누구인지에 관해서는 구체적 언급이 없다. 여전히 주체라기보다는 초대된 대상이자 '잇아이템'이다. 새누리당의 경우 ‘청년위원회’로 부족해서 ‘미래세대위원회’와 ‘대학생위원회’까지 따로 두고 있는데, 청년의 연령기준은 만 45세 이하다. 다른 정당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청년녹색당을 두고 있는 녹색당의 연령기준 35세 이하가 그나마 젊다고 할까.
45세 청년. 불혹의 나이를 넘겨 중장년층인 나이대의 사람들을 정치권 정당에서는 청년이라는 것이다. 인생 100세 시대를 대비한 장기적 전망이라고 칭찬이라도 해야 하는 건가. 한국의 경우 초선 국회의원 비율이 54.3%로 절반이 넘지만, 초선의원 평균연령은 56.4세이다. 최연장 현역의원인 새정연 박지원 의원과 새누리당 강길부 의원은 73세 동갑이다. 7선의원도 있으니 국회의원은 정년도 없고 영원한 현역이다.
고개를 조금만 돌려 다른 나라들을 돌아보면 40대 정치리더들은 흔하다. 새롭다기보다 이제 당연하다. ‘청년정치인’이 아니라 정치적 리더십을 행사하는 자리를 단단히 굳히고 있다. 2014년 유럽 내 역대 최연소 총리가 된 이탈리아 총리 마테오 렌치는 1975년생으로 취임 이후 내각 절반을 여성으로 구성했다. 최근 새로운 좌파정치로 떠오르고 있는 그리스 총리 알렉시스 치프라스는 1974년생으로 이미 2009년에 시리자 대표가 되었고, 지방선거에서 약진한 스페인 포데모스의 대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는 1978년생이니 지금 37세다. 나이든 나라 영국도 다르지 않다. 지난 5월 총선을 치른 영국의 경우 주요정당의 대표들이 대부분 40대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1966년생)는 38에 보수당 대표, 43세에 총리에 취임했다. 에드 밀리밴드(1969년생) 역시 2007년 내각부장관 2010년 노동당 대표가 되었다. 닉 클레그(1967년생)도 2004년에 자민당 대표 2010년에 부총리가 되었다. 이번 영국총선에서 파란을 일으킨 스코틀랜드독립당(SNP) 니콜라 스터전 대표는 1970년생 여성이다. 이들을 선택한 시민들, 당원들의 요구는 바로 새로운 변화에 대한 기대였다.
![]() |
||
| ▲ 김은희 녹색당 공동정책위원장 | ||
지지부진한 진보정치의 변화를 위한 진보재편논의가 한창이지만 그다지 새롭지 못하다. 유일한 원내 진보정당인 정의당 당직선거도 시작되어 이번주가 후보등록기간이다. 심상정 의원, 노회찬 전 의원 등도 이번 당대표 선거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하는데, 오히려 내 눈에 들어오는 당대표 후보는 진보정치 2세대를 내세운 젊은 후보다. 어쩌면 과거 분당과정에서 마음의 상처를 입었던 이들을 위로하고 설득하기에도 더 매력적인 후보일 수 있지 않겠나.
기득권 세대가 된 선배정치인들은 ‘아직은 나 아니면 안된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좋겠다. ‘어리다’는 말은 여전히 ‘생각이 모자라거나 경험이 적거나 수준이 낮다’는 사전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386/486/586세대의 후배가 될 이들은 이제 어리지 않다. 젊다.
옛말에도 ‘청출어람 청어람(靑出於藍靑於藍)’이라 하지 않던가.
후원은 더 좋은 기사에 도움이 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