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생사보다 궁금한 건 ‘이건희 이후의 삼성’이다. ‘한겨레 이코노미21’, ‘말’, ‘미디어오늘’을 거치며 오랜 기간 삼성을 추적해온 이정환 기자가 이재용 후계 구도 시나리오의 8가지 변수와 우리 앞에 놓여있는 ‘삼성 사용설명서’를 경제학자들의 이론으로 정리해 한 권에 담았다. 이건희 이후 삼성의 미래를 머릿속에 그려보기에 유용하다.
한국의 진보·보수 경제학자들은 모두 사회에 보탬이 되게끔 삼성을 이용하려 한다. 저자는 장하준·장하성·김상조·김성구 등 삼성에 대한 진단과 해법이 다른 경제학자들의 주장을 ‘삼성 사용설명서’란 주제어로 묶어낸다. “삼성이 노동자를 탄압하고 중소기업을 착취하는 건 주주자본주의의 단기 실적주의 때문”이라는 장하준의 주장, “장하준의 대안은 국가사회주의로 귀결될 수 있다”는 김상조의 반박, “국가독점자본주의의 민주적 통제만이 유일한 해법”이라는 김성구의 비판 등을 입체적으로 소개하며 삼성을 이용하는 방법론을 익히는데 재미를 준다. 금융산업분리나 순환출자 등 논쟁적 사안에 대해서는 ‘선악’으로 풀어내는 대신 다양한 관점을 비평하는 식으로 정리해 독자에게 판단할 기회를 제공한다.
오늘날 삼성 비판의 양 축이라 할 수 있는 장하준 교수나 김상조 교수를 향한 저자의 비평은 다소 냉정하다. 저자는 “완벽하게 작동하는 효율적 시장이 김상조 교수의 환상인 것처럼 신자유주의에 맞서 싸우는 국가를 기대하는 장하준 교수의 이론도 현실적이지 않다”고 말한다. 또 “재벌을 건드려서 고용 없는 성장과 양극화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건, 재벌이 하는 대로 내버려두면 저절로 경제가 살아날 거라고 믿는 것만큼이나 허망한 일”이라 지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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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국의 경제학자들-이건희 이후 삼성에 관한 7가지 시선들 / 이정환 저 / 생각정원 | ||
저자는 특히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삼성경제연구소에 대한 언론의 맹신은 놀라울 정도”라며 비판의지를 잃어버린 기자들의 무능력을 비판했다. “학자들의 갑론을박과 정치인들의 요란한 구호, 언론의 호들갑보다 더 무섭고 끔찍한 것은 진보진영의 무기력과 방관”이라며 정치경제학적 상상력을 주문하는 대목에서는 기자의 절박함마저 느껴진다.
이 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 중 하나는 주류언론에서 쉽게 접할 수 없는 이재용 후계구도에 대한 구체적 분석이다. 이재용은 이미 2000년대 초 삼성엔지니어링, 제일기획 등 비상장 기업의 주식을 헐값에 넘겨받아 비싸게 되파는 수법으로 경영승계 작업을 진행했다. 저자는 “경영권 승계의 관건은 이건희가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8%와 삼성전자 지분 3.4%를 물려받는 것”이라고 지적하며 “이재용은 제일모직을 지배구조의 중심축으로 가져가되 삼성SDS 등 지분을 상속세 납부에 필요한 실탄으로 쓸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저자는 이 과정에서 “정치권에서 금산분리 완화는 기본이고 순환출자를 예외적으로 추가 허용하거나 상속세를 파격적으로 완화하는 특혜를 쏟아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어떤 식으로든 삼성 특별법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것”이라고 예고했다. 결국 ‘이건희 이후의 삼성’은 삼성을 위한 또 하나의 특혜를 바라보는 우리가 만들어낼 미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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