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합뉴스를 비롯해 주요 언론은 2일 “이 회장이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후진적인 환경안전 사고는 근절해야 한다’고 말했다”고 삼성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보도했다. 남의 회사 말하듯 하는 이 회장의 격노는 이명박 전 대통령의 유체이탈 화법을 연상시킨다. 이 회장은 말 한 마디로 사장의 목을 칠 수 있는 최고 의사결정권자지만 정작 자신은 아무런 책임도 느끼지 않는 것처럼 말한다. 그래서 격노의 대상은 자신이 아니라 월급쟁이 사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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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3월에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삼성전자 수원 사업장에 현장조사를 나왔는데 임직원들이 조직적으로 방해한 혐의로 4억원의 과태료 처분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 때도 이 회장은 격노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 고위 관계자는 “이 회장이 관련 내용을 보고받고 크게 화를 냈다”면서 “강한 질책이 있었다”고 말했다. 한 신문은 “정도 경영 그토록 강조했는데…”라는 확인되지 않은 이 회장의 발언을 제목으로 뽑아 올리기도 했다.
격노는 몹시 분하고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오른다는 말이다. 진노는 성을 내며 노여워한다는 말이다. 모두 객관적인 표현이 아니다. 이 회장의 마음 속에 들어가 보지 않는 이상 그가 몹시 분한지 아닌지 노여운 감정이 북받쳐 올랐는지 안 올랐는지 언론은 알 수가 없고 그걸 판단해서도 안 된다. “강하게 질책했다”는 정도로 쓰면 충분할 텐데 굳이 격노나 진노라고 쓰는 건 그렇게 해야 이 회장의 의중이 제대로 전달된다고 보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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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언론의 삼성 관련 보도는 영국의 왕실 보도를 연상시킨다. 이 회장이 출국할 때나 입국할 때, 어쩌다 출근할 때마다 기자들이 따라 붙어 한 마디 한 마디를 기사로 만든다. 이 회장이 차를 바꿨다거나 누구를 만났다거나 딸들과 손을 잡고 행사장에 나타났다거나 이런 보도에는 아무런 관점도 없다. 맥락도 살피지 않는다. 일거수일투족을 중계하고 인용하고 과도하게 의미를 부여한다.
언론이 간과하고 있는 더 중요한 지점은 과연 이 회장이 삼성엔지니어링의 사장을 경질할만한 위치에 있느냐, 그럴 자격이 있느냐다. 삼성엔지니어링의 최대 주주는 제일모직이다. 13.1%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삼성SDI가 5.1%, 삼성화재해상보험이 1.1% 등 특수관계인 지분이 19.4%에 이른다. 이 회장이 직접 보유하고 있는 주식은 단 한 주도 없다. 이 회장은 회장이라고 불리지만 삼성전자는 물론이고 삼성엔지니어링 등과 아무런 법적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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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법에 따르면 이사의 해임은 주주총회에서 주주 과반수 출석에 출석 주주 3분의 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한 특별결의 사안이다. 언론에서 “삼성그룹은 박기석 사장을 경질하고 후임에 박중흠 운영총괄 부사장을 내정했다고 밝혔다”고 보도하면서 아무런 의문도 제기하지 않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주식회사의 대표이사를 경질한다는 표현을 쓰는 것도 놀랍지만 이런 사실을 언론에 당당하게 공표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들인다는 사실이 더욱 놀랍다.
삼성엔지니어링은 주주총회 등 절차가 필요해 박중흠 후임 사장 선임에 40여일 정도가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기성 사장은 해임 보다는 스스로 사직하는 형태로 물러날 가능성이 크다. 이 회장의 한 마디에 모든 게 결정된 상태에서 요식적인 절차를 밟는다는 이야기다. 삼성그룹 지분 19.4%를 뺀 나머지 80.6%의 주주들은 결론이 정해진 주주총회에 들러리를 서게 된다. 구호로만 떠돌던 경제 민주화의 참담한 현실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이 회장이 격노했다던 지난달 30일 업무 보고 자리는 이 회장의 올해 들어 일곱 번째 출근이었다. 6월4일 이후 56일 만이다. 이 회장은 지난 6월20일 출국해 일본과 유럽을 오가며 해외에 머물다 37일 만인 지난달 27일 귀국했다. 이 회장의 자산은 130억 달러로 세계 부자 순위 69위다. 삼성그룹에서 공식적인 직책은 없다. 연봉은 0원이지만 삼성전자에서 받는 배당만 지난해 375억원, 주가 상승으로 지난해에만 자산이 2조3700억원 늘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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