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오석 경제부총리는 지난 28일 경기도 시화공단을 방문해 기업 대표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기업 투자 활성화를 위해 수도권 및 환경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시사했다. 그는 “기업 투자 부진의 원인이 경기적·구조적 요인뿐 아니라 불합리한 규제에도 있다”면서 “이번 기회에 털고 갈 것은 다 털고 가자는 취지로 규제를 대폭 풀어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 또한 지난 22일 청와대 수석비서관 회의에서 “규제완화는 돈을 들이지 않고 기업 투자를 촉진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라며 경기활성화를 위해 불필요한 규제는 차질 없이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현오석 부총리의 바람대로 규제를 풀면 기업들이 곳간을 열까. 경험적으로 볼 때 그렇지 않다는 시각이 많다. 10대 그룹 소속 69개사의 12월 결산내역에 따르면, 2012년 10대 그룹의 '유보율'은 1441.7%로 나타났다. 경기가 위축된 지난 2008년 금융위기 당시 923.9%보다 517.8%P 증가했다. 사상 최고 수준이다. 유보율이란 잉여금을 자본금으로 나눈 비율을 일컫는다.
유보율 1442%는 자본금의 14배 이상의 돈을 내부 곳간에 쌓아뒀다는 뜻이다. 2008년 대비 10대 그룹 상장계열사의 자본금은 25조4960억 원에서 28조1100억 원으로 10.3% 늘었다. 같은 기간 잉여금은 235조5589억 원에서 405조 2484억원으로 72.0%나 급증했다. 롯데그룹의 유보율이 1만 4208%로 가장 높았다. SK그룹은 5925%이고, 포스코그룹은 2410%이다. 삼성그룹(2276%), 현대중공업그룹(2178%), 현대자동차그룹(2084%)이 뒤를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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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향신문 4월 29일자 15면. | ||
서강대학교 조윤제 교수(경제학과)는 지난 27일자 중앙일보 <중앙시평: 어떤 규제완화 말인가?> 제하 제목 칼럼에서 “과거 경제가 어려울 때마다 나왔던 것이 투자촉진이며 규제완화”라면서 “그렇다고 이로 인해 기업투자 크게 늘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김영삼 정부에서부터 우리 경제 여건에서 풀 수 있는 규제는 거의 안 건드려 본 것이 없다. 그동안 재계에서 줄기차게 요구해 왔던 규제완화의 핵심은 주로 기업소유지배구조 및 경영권승계, 공정거래, 금산분리 등과 관련한 규제들이었다. 이명박 정부 들어 경제를 살리겠다며 이들 규제도 철폐하거나 많이 무력화시켰다. 그렇다고 이로 인해 기업투자가 크게 늘었다는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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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앙일보 4월 27일자 오피니언면. | ||
그는 “최근 논의를 보면 경제민주화 입법이 흐지부지되고, 재계의 논리를 정부가 받아들이는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입법은 기업의 건전한 투자 활동을 위해 재벌의 불공정한 관행과 불법행위를 개선하자는 취지인데 재계가 본질을 호도했다. 극단적으로 얘기하면 정부는 재계 논리에 포획됐다”고 덧붙였다.
전성인 홍익대학교 교수(경제학과)는 통화에서 “최근 진행되고 있는 일은 지난 정부에서 목격했던 모습(재벌 개혁 움직임→ 재계 반대→ 개혁 후퇴)의 연속이 될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업은 투자 활성화라는 명분을 지렛대 삼아 교섭력을 높이고, 다급한 정부가 결국 기업에게 무릎을 꿇을 가능성의 전초전이 아니냐는 의심을 살 정도까지 진행됐다”고 말했다.
전 교수는 “아직 경제민주화 법안들이 폐기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포기했다, 후퇴했다고 말할 정도는 아니다”라면서 “공정거래법 개정안이 통과된다면 경제민주화는 진전된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주목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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