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세금을 내려면 3월27일까지 일을 해야 한다.”

자유기업원이 21일 발표한 올해 세금해방일(Tax Freedom Day)이 85일이라는 자료를 상당수 언론이 인용보도했다. 연간 소득 가운데 23.52%를 세금으로 내야 한다는 의미다. 더 정확히 설명하자면 조세총액을 국민순소득(NNI)으로 나눈 조세부담률을 연간 일수로 분할해 산출한 날을 말한다. 올해 조세총액은 278조5693억원, 국민순소득은 1184조3441억원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는 “따라서 우리 국민들은 85일이 지난 3월27일부터 자신의 소득을 위해 일을 시작한다는 계산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제는 자유기업원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복지공약을 수정하지 않을 경우 결국 세수 증대를 위한 폭 넓은 세금 증대 방안 마련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며 그 결과로 세금해방일 또한 늦춰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유기업원은 국내 대표적인 보수 씽크탱크 가운데 하나다. “대한민국 시장경제 번영을 이룩하기 위해 설립된 연구기관”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듯이 국가의 개입과 복지의 확장에 반대하고 시장경쟁과 적자생존의 논리를 강조하는 집단이다. 연구소라기 보다는 이데올로기 선전기관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일보 3월21일 온라인판 기사.
 
애초에 세금해방일이라는 표현부터 세금은 부담스럽고 벗어나야 하는 것이라는 인상을 준다. 복지를 늘릴수록 세금에서 벗어나는 날도 늦춰진다. 노무현 때는 10일이나 늦춰졌지만 이명박 때는 4일 밖에 안 늘어났다. 이런 일련의 숫자들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명확하다. 복지를 늘리지 마라. 늘려도 좋은데 내 주머니를 털지 마라.

자유기업원에 따르면 국민순소득 통계가 나오기 시작한 1992년 세금해방일은 3월10일이었다. 올해는 21년 전보다 세금해방일이 17일이 더 늦어진 셈이다.

김영삼 정부에서는 3월15일로 5일이 늦춰졌고 김대중 정부 때는 3월20일로 다시 5일이 늦춰졌다. 노무현 정부 때는 3월30일로 10일이 늦춰졌고 이명박 정부 때는 3월26일로 4일이 줄어들었다. 자유기업원은 새 정부가 복지 재원 27조원를 마련하기 위해 올해 세수를 늘린다면 세금해방일이 4월5일로 늦춰질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1년에 석 달 가까이를 세금 내는 데 쓰다니. 세금이 많다고 투덜거리기 전에 몇 가지 살펴야 할 통계가 있다.

프랑스는 세금해방일이 7월26일이다. 국민순소득의 56.4%를 세금으로 낸다. 독일은 7월8일(48.3%), 네덜란드는 7월3일(50.2%), 스웨덴은 6월30일(49.4%). 이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조세부담율이 두 배 이상 많고 세금해방일도 두 배 이상 늦다. 이탈리아는 6월18일(46.0%), 핀란드는 6월15일(45.2%), 캐나다는 6월6일(42.6%), 영국은 5월30일(40.9%) 등이다. 2010년 기준 자료다.

   
세금해방일 국제비교. ⓒOECD.
 
우리나라보다 가난한 나라들 가운데서도 세금해방일이 우리나라보다 늦은 나라들이 많다. 헝가리는 8월6일, 벨기에는 8월3일, 슬로바키아는 6월16일, 리투아니아도 6월16일이다. 우리나라보다 세금해방일이 더 빠른 나라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다. 알바니아(3월25일)와 인도(3월14일) 정도다. 그런데 자유기업원은 이런 사실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자유기업원 자료를 받아 쓴 언론도 마찬가지다. 다만 세금해방일이 늦춰지고 있다는 사실을 전달할 뿐이다.

   
복지지출 비중 국제 비교. ⓒOECD.
 
분명한 것은 세금 없이는 복지도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복지지출 비중은 11.0%로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가운데 최하위다. 스웨덴은 38.2%, 덴마크는 37.9%, 프랑스는 34.9%, 독일은 33.2%, 노르웨이도 33.2%, 벨기에는 32.7%다. 23개국 평균은 27.4%다.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은 OECD 평균의 3분의 1 수준 밖에 안 된다는 이야기다.

경제지들은 흔히 우리나라 복지지출 비중이 가파르게 늘어나고 있다고 비판하지만 애초에 우리나라 복지 수준이 선진국 평균에 크게 못 미친다는 사실을 언급하지 않는다. 유럽에서 복지지출을 줄이고 있는 건 사실이지만 과도한 복지를 줄이는 것과 턱없이 부족한 복지를 늘려가는 것을 동일하게 비교할 수는 없는 일이다. 언론이 이런 한심한 자료를 아무 비판 없이 맹목적으로 인용보도하는 것은 무책임할 뿐만 아니라 국민을 기만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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