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허청이 산업은행과 손을 잡고 중소·중견기업이 특허만으로 대출을 받을 수 있는 ‘특허담보대출’을 추진한다. 2000억 원 규모로 업체 당 최대 20억 원까지 자금을 빌릴 수 있다. 특허청과 산업은행은 부실화를 대비해 200억 원 규모 회수용 모태펀드까지 조성한다. 이달 말 대출을 시작한다. 이를 두고 경제지들은 ‘환영’ 일색이다. 그러나 이 같은 대출상품이 금융기관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한국경제는 1면 <中企 특허만 있어도 최대 20억원 대출>에서 “기술력 있는 중소·중견기업이 부동산 담보나 연대보증 없이도 특허를 담보로 자금을 빌릴 수 있는 ‘특허담보대출’ 시대가 열린다”며 이를 “특허 등 지식재산의 거래 활성화는 박근혜 정부가 최우선 과제로 추진하고 있는 ‘창조경제’ 육성의 한 축”으로 소개했다.

한국경제에 따르면, 특허담보대출은 한국발명진흥회 등 5~6개 평가기관이 특허를 평가한 뒤 산업은행이 대출 규모를 결정하는 구조다. 특허청이 1500~2000만 원 정도의 특허가치평가 비용을 부담한다. 부실화 펀드에는 특허청이 100억 원, 산업은행이 50억 원, 민간투자기관이 50억 원을 출자한다. 한국일보와 인터뷰한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부실화 대비 펀드의 목적은 “금융회사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다.

   
▲ 한국경제 2013년 3월 18일자 19면 머리기사
 
특허청과 산업은행은 ‘특허관리회사’를 별도 설립해 특허를 상업화한다. 한국경제는 19면 <담보 없이 특허만으로 최대 20억 대출…기술·아이디어로 R&D자금 ‘수혈’> 제하 제목 기사에서 “이를 통해 매입특허 거래를 통한 수익화에 나선다는 방침”이라며 “‘회사는 망해도 특허는 살아서 거래되게 하겠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매일경제 21면 기사 <지재권 담보로 대출받는다>에 따르면, 지식재산권의 담보인정비율은 가치평가액의 100%까지 인정된다. 산은이 기업의 지식재산권에 질권을 설정해 담보를 확보하고, 부실이 생긴다면 산은이 이를 처분해 채권을 확보하게 된다.

이 같은 특허담보대출은 연구개발(R&D) 비용이 부담스러운 중소기업에게 큰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다. 또한 한국경제의 전망대로 지식재산 거래시장이 활성화될 것으로 보인다. 특허청은 이 상품이 타 금융기관으로 확대될 것이라 전망하기도 했다.

특허담보대출은 일종의 IP(Intellectual Property)금융이다. 금융자본들은 지적재산권을 금융상품으로 만들고 있다. 매일경제는 지난 1월 21일자 6면 머리기사 <“특허시장은 황금알” JP모건·록펠러도 특허괴물에 투자>에서 “‘특허괴물’ 등으로 불렸던 NPE(Non Practicing Entity·제조활동 없이 특허 소송 및 관리로 수입을 창출하는 특허관리전문기업)가 일종의 금융투자회사로 진화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 매일경제 2013년 1월 21일자 1면 머리기사
 
IP금융은 초기 IT기업의 NPE로 시작했다. 이에 대한 성장 가능성이 높아지자 금융·자본시장이 투자를 시작했다. 매일경제는 “이제까지 특허관리 전문기업 이면에 글로벌 IT기업이 있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제는 금융자본이 이 자리를 적극적으로 채워 나가고 있는 셈”이라며 그 배경으로 지적재산권 거래 시장의 고수익성을 들었다. IP금융이 금융자본의 고수익과 IT기업의 관리비용 절감을 동시에 만족시킨다는 것.

특허담보대출의 배경에는 금융자본의 이해관계가 크게 자리잡고 있다. 대기업에 비해 형편없이 낮은 중소기업의 연구개발비가 담보대출로 소폭 늘어날 수는 있지만 전체적인 격차를 줄이기에는 한계가 명확해보인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 대기업-중소기업 간 불공정 거래 관행이 연구개발비 격차의 근본적인 원인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이 쥐어짜는 탓에 중소기업은 연구개발에 투자할 여력은 줄어들었다.

지난해 12월 한국과학기술기획평가원 안병민 부연구위원, 한국산업기술진흥협회 송현주 연구원이 작성한 보고서 <우리나라의 민간기업 연구개발활동 현황>에 따르면, 2011년 기준 매출액 상위 5대 기업의 연구개발비는 전체 30.8%, 상위 20대 기업으로 확대하면 43.3%다. 중소·벤처기업은 25.8%에 불과하다.

2012년 10월 기준 국내기업의 부설연구소의 93.8%를 차지하고 있는 중소기업 연구소의 기업 당 연구개발비는 하향 추세다. 2007년 6.3억 원에서 2009년 5.9억 원, 2011년 5.2억 원이다. 이 또한 제품 혁신에 대한 투자는 줄고 기존제품 개선에 대한 투자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관련기사 링크: 미디어오늘 2013년 2월 6일자 <한국, 혁신국가 세계2위? 알고보면 ‘속빈강정’>]

이 같은 점을 고려한다면 특허담보대출은 중소기업을 살리는 근본적 대책이 될 수 없다. 오히려 IP금융의이면에 금융자본이 중소기업의 심장이라 할 수 있는 특허 등 지적재산권까지 욕심내는 행태가 있다는 점을 봤을 때 이 제도는 중소기업의 특허를 헐값에 살 수 있는 대기업과 이를 중개하는 금융권의 배만 불리는 ‘보이스 피싱’이 될 가능성이 높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경제정책팀 이기웅 부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금융기관이 ‘갑’인데 특허가치를 낮춰 평가하고, 이를 활용해 고수익을 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면서 “중소기업 지원 대책이기보다 금융기관 지원 대책이 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한국경제는 “그동안은 특허의 자산가치 평가와 특허업체 부실화 때의 복잡한 권리관계 탓에 담보대출보다는 특허펀드 수준에 머물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번 특허담보대출은 기존의 특허펀드에서 한 단계 진화한 ‘지식재산권(IP) 금융’ 모델로 평가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특허 등 지적재산권의 복잡한 권리관계가 금융자본으로 정리되는 수순이다. 누구를 위한 중소기업 살리기인지 꼼꼼하게 따질 필요가 있다.

   
▲ 매일경제 2013년 3월 18일자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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