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25일 대통령 취임식에 맞춰 박근혜 당선인의 선거 공약이었던 국민행복기금이 출범한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한 만큼 국민행복기금을 가급적 빨리 조성하도록 금융당국과 논의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18조원의 국민행복기금을 조성해 금융회사들의 대출 채권을 인수한 뒤 채권 추심을 중단하고 채무를 일부 탕감해 재활을 돕는다는 게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이었다.
우선 상당수 신문들이 국민행복기금이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를 부추길 수 있다며 우려하고 있다. 서울경제는 지난 16일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로 바꿔준다는 국민행복기금을 미끼로 신용대출을 받으라고 유혹하는 대부업체들이 늘고 있다”면서 “은행권에서 돈을 빌리기 힘든 저신용 다중채무자들도 이런 점을 이용해 대출상담을 문의하는 등 수요와 공급 양 측면에서 심각한 모럴해저드가 발생하고 있다”고 경고한 바 있다.
국민일보도 17일 사설에서 “빚 상환을 미루는 사람이 느는가 하면 부실채권을 회수하는 일을 맡은 추심회사들의 실적이 급격히 하락하는 상황도 확인된다”면서 “심지어 일부 대부업체들은 저금리 대환대출을 염두에 두고 고금리 신용대출을 권하는가 하면 대출 소비자들도 고금리 대출을 문의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때문에 적용 시점을 최소 몇 개월 이전으로 앞당겨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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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우려를 의식한 듯 박근혜 당선인도 25일 “18조원의 행복기금이 국민적 공감대를 얻기 위해서는 역시 모럴 해저드가 방지돼야 하고 형평성 문제가 없는지 잘 따져봐야 될 것 같다”고 밝힌 바 있다. “자활 의지 여부를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기준 또는 절차를 잘 만들어서 모럴 해저드가 생기지 않도록 방지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다만 시기에 대해서는 “새 정부를 시작하면 즉시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인수위는 18조원 규모의 국민행복기금을 도입해 채무불이행자(신용불량자)의 연체 채무를 기금으로 매입해 원금의 50%(취약계층은 70%)를 감면한 뒤 장기분할 상환으로 전환해준다는 계획이다. 대부분의 언론이 모럴 해저드를 우려하면서도 가계부채 폭탄의 뇌관을 제거해야 한다는 인수위의 문제의식에 동감하는 분위기다. 금융기관들도 내심 반기는 분위기다. 정부가 나서서 부실채권을 해결해준다고 하니 반대할 이유가 없다.
조세일보는 지난 8일 “국민행복기금은 은행행복기금?”이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국민 행복 기금에 당장 국민 세금이 들어가는 것은 아니지만, 정부가 보증하는 만큼 이 채권이 부실화될 경우 재정 투입이 불가피하다”면서 “장기간 분할상환으로 전환된 대출이 또다시 연체되면 부실채권의 주인은 은행 대신 정부가 되는 셈”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채무불이행자들의 모럴 해저드 뿐만 아니라 금융기관들의 모럴 해저드도 문제라는 이야기다.
“어려운 채무자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가 금융회사의 이득으로 연결될 수 있다”는 비판도 주목된다. “금융회사의 대손충당금으로 메워야 할 부실채권이 국민 행복 기금에서 일부 상환되면, 은행은 그만큼 손실을 줄일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석동 금융위원회 위원장은 “채무자와 채권자가 일차적 책임을 가져야 가계 부채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한국경제는 “금융이 시장원리가 아닌 정치논리로 움직이기 시작했다”면서 “정치가 온통 시장을 압도하고 있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이데일리는 한 시중은행 관계자의 말을 인용, “은행과 채무자 모두 서로 책임과 고통을 적절히 분담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공적기금이 투입되는 국민행복기금을 제대로 운영하려면 개인 도산체계를 함께 정비해야 한다”면서 “기금의 역할이 과하면 도산법이 유명무실해질 수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제윤경 에듀머니 대표는 최근 팟캐스트 ‘이슈 털어주는 남자’에 출연해 “대부 업체가 은행의 부실채권을 싸게 사는 보통의 경우 1% 정도의 가격에 산다는 이야기가 있다”면서 “정부가 나서 이를 5~6% 가격에 사주면 사실상 남는 장사가 될 것”이라고 비판한 바 있다. “새 정부의 채권 매입 정책이 금융사에게 오히려 혜택으로 작용하면서 대출업자들의 모럴 해저드가 우려된다”는 이야기다.
채무 탕감은 임시 방편일 뿐 장기적으로 파산과 면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제 대표는 지난 26일 ‘돈의 인문학’ 공개 강좌에서 “차라리 파산과 면책을 활성화하고 빌려주는 쪽(금융회사들)에 책임을 묻는 게 더 근본적인 해법”이라고 강조했다. 제 대표는 “무작정 대출을 남발하고 대부업체들에게 채권을 팔아넘기는 경우도 많다”면서 “잘못 빌려주면 돌려받지 못한다는 인식이 형성돼야 한다”는 주장했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도 경향신문과 인터뷰에서 “지금으로서는 금융회사가 득을 보게 될 가능성이 높지만 누가 득을 보든 부작용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정책”이라면서 “상환능력이 없는 채무불이행자는 파산·면책 기준을 완화하면 법원에서 채권자와 채무자 간 채무 분담 작업을 통해 해결할 수 있는데 구태여 나랏돈을 투입하겠다는 것은 금융회사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로밖에 이해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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