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 한화그룹 회장이 16일 회사에 수천억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징역 4년을 선고 받고 법정 구속되자, 17일 언론들은 일제히 이번 판결에 긍정적 평가를 내리며 재벌 범죄도 엄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런데 이날 중앙일보의 사설과 보도는 타 언론과 분위기가 크게 달랐다.

중앙일보는 이날 1면 <대기업 총수도 관용 없다 달라진 시대 상징적 판결>제하 기사에서 첫 문장부터 “대선을 앞두고 있고, 경제는 어려워지는 미묘한 시기에 상징적인 판결이 나왔다”고 운을 띄웠다. 중앙일보는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대기업과 부자에 대해 곱지 않은 시각이 늘고 있다”며 “재판부에서 예전처럼 구속을 면해주는 판결을 내놓기 어려운 분위기가 사회 전반에 깔려 있다”고 말했다.

여기까지는 타 언론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이후 중앙일보는 “여야 막론하고 대기업을 몰아세우면 대선 득표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듯하다”고 현 세태를 진단한 뒤, “대선 후보들은 개념이 모호한 ‘경제민주화’를 내걸고 선명경쟁을 하고 있다”며 “이런 때 김 회장의 재판이 벌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김 회장의 죄목과는 별개로, ‘모호한’ 경제민주화 구호가 지배하는 현 세태에서 마치 김 회장이 ‘독박’을 썼다고 읽힐 수 있는 대목이다.

중앙일보는 “김 회장과 한화그룹으로선 운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고, 억울할 법도 하다”며 “당장 김 회장이 지휘해 온 태양광사업과 80억 달러 규모의 이라크 비스마야 신도시 건설사업이 영향을 받지 않을까 우려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중앙일보는 기사 말미에 조동근 명지대 교수의 말을 빌려 “잘못은 벌하되 보여주기 식 처벌이나 몰아세우기는 곤란하다”고 전하며 “이런 때일수록 이념이나 정치적 잣대가 아닌 사법의 잣대로 판단해야 한다는 얘기”라고 말했다.

중앙일보의 보도를 종합하면 ‘경제민주화’라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 정치권이 모호한 경제민주화를 들고 나오고 있고, 이 시류에 휩쓸려 김 회장이 “보여주기식, 몰아세우기” 처벌을 받았다는 뉘앙스로 읽힌다. 이는 유력 여권주자인 박근혜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 까지 경제민주화를 언급하는 시대가 불편한 중앙일보의 내심을 드러낸다.

이러한 분위기는 사설에서 더욱 도드라진다. 중앙일보는 30면 <총수 횡령·배임 엄벌이 재벌 개혁이다>제하 사설에서 “김 회장에 대한 실형선고는 이러한 암묵적 관행(집행유예)이 사실상 그 수명을 다했음을 보여 준다”며 “앞으로는 횡령·배임 같은 경제범죄도 그 지위가 무엇인지를 떠나 양형 기준에 따른 처벌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이번 실형선고는 여야 대선후보들이 앞 다퉈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경제민주화 논의에도 시사점을 준다”며 “경영권 오남용은 횡령·배임과 공정거래법 등 규정만 엄정히 집행해도 순환출자금지 등의 논란 없이 충분히 막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미 마련된 법적 장치들이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함으로서 재벌의 폐해와 부작용을 키웠다”며 “재벌 개혁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고 덧붙였다.

재벌이 순환출자를 통해 그룹장악력을 과도하게 장악하고, 그렇게 탄생한 ‘오너’가 각종 범죄로 기업의 돈을 사유화하고 부를 증식시켜 양극화를 키워내는 세태에서 다른 규제 장치 없이 현행법 집행만 엄정해도 재벌개혁을 이룰 수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해 선대인 선대인 경제연구소장은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엄정한 법집행은 기본인데, 이것이 되면 순환출자 문제를 건드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은 웃기는 얘기”라며 “(재벌의)잘못된 지배구조를 풀기 위해 (순환출자는)반드시 해야 하는데, 이 핵심적 문제가 마치 아무 문제가 아니라는 식으로 물 타기 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특히 중앙일보는 삼성일보로 불리는데, 한국 기업 중 순환출자구조가 문제되는 것이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 정도”라며 “이번 김승현 회장의 판결이 규모나 죄질에 비해 매우 미약함에도 이것조차 과도하다고 하며 경제민주화 흐름에 따른 것이라 생각하면 말이 안된다”고 말했다. 선 소장은 “불편부당한 듯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런 사례를 보면 왜 언론을 개혁해야 하는지 보여준다”고 말했다.

한편 타 언론은 이번 판결에 대해 일제히 환영하고 나섰다. 한겨레는 <김승연 회장 법정구속, 재벌 쇄신의 계기 되길>제하 사설에서 “재판부의 판결이 돋보인다”며 “이번 판결의 배경은 경제민주화, 재벌개혁의 요구가 높아지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고 경향신문도 같은 날 <김승연 회장 법정구속이 재계에 주는 메시지>제하 사설에서 “이번 판결이 재계에 주는 메시지는 분명하다”며 “재벌 회장 관용시대가 막을 내리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평했다.

조선일보도 <김승연 회장 중형 선고와 재계의 변화> 사설에서 “재계는 법원이 경제 범죄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여가고 정치권이 경제민주화를 앞세워 변신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서 새로운 경영방식과 진로를 찾아야 할 때가 왔다”고 말했다.

노회찬 통합진보당 의원은 17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전화인터뷰에서 “재벌들의 경제범죄에 관해 우리나라 법원이 너무나 관대한 처벌을 해 왔다”며 “(현 분위기도)영향을 미쳤다고 보나 그런 목소리가 잠잠해지면 또 관용이니 뭐니, 유연한 판결들이 많이 나오게 또 된다. 그래서 사실은 이번 재판도 더 두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정상근 기자의 기사 잘 읽으셨나요?
후원은 더 좋은 기사에 도움이 됩니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