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거티브’란 각종 선거 운동 과정에서 상대방에 대해 마구잡이로 하는 음해성(陰害性) 발언이나 행동을 일컫는 말이다. 하지만 상대 진영의 정당한 문제 제기나 지적까지 ‘네거티브’라고 표현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더군다나 그것이 상대 진영의 논리가 아니라 유권자·국민의 것일 때는 더욱 그렇다. 최근 불거진 새누리당 공천헌금 의혹과 관련해 당시 총책임자이자 실질적 결정권자였던 박근혜 전 비상대책위원장은 ‘피해자 코스프레’로 일관하고 있다. 그리고 유력언론들이 나서서 이 같은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는 게 눈에 띈다. 

박근혜 후보는 지난 6일 새누리당 대선 경선 후보 합동연설회에서 공천 헌금 의혹이 자신과는 전혀 관계없는 사안이라는 태도를 취했다. 박 후보는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결코 용납될 수 없는 중대범죄”라며 “이 일은 누구도 성역이 있을 수 없으며 모든 것을 빠른 시일 내에 밝혀서 관련된 사람들을 엄중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 박근혜는 다시는 공천비리가 발붙일 수 없도록 시스템화하여 개혁해 나가겠다”고 덧붙였다.

박 후보는 “저는 네거티브에 너무 시달려서 ‘멘붕’이 올 지경”이라며 “하지만 그런 것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자신에 대한 각종 책임론과 비판을 근거 없는 네거티브 공세로 치부하며 책임소재에서 비껴선 것이다. 본인이 공천비리 의혹 시기에 당 지휘권을 가진 공천 총 책임자였던 것은 잊은 모양이다.

물론 최근 일각에서 제기되는 박 후보의 사생활 관련 루머들은 대통령 후보 검증과 무관한 ‘네거티브’ 공세이자, 수준 낮은 음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고 질 떨어지는 공세 못지않게 부당한 것은, 정당한 문제 제기조차 네거티브로 싸잡아 그 뒤에 숨는 모양새다. 자신에 대한 문제제기를 무조건 ‘네거티브’라는 방패막이를 앞세워 모조리 반사시키는 편리함이다.

최근 각인될 만한 사례로는 통합진보당 일부세력의 ‘종북 뒤에 숨기’ 논법이 있다. 이들은 보수신문과 보수세력의 ‘종북 세력’이라는 끈질긴 마타도어 뒤에 숨어 국민의 비판 여론에 ‘억울하다’는 대응으로 일관했다. 조·중·동의 ‘색깔론’이 이들이 당내 부정경선에 대한 정치적 책임을 회피하는 방편으로 사용된 탓에, 진보진영에선 조과 통진당 당권파의 ‘적대적 공생’이라는 냉소까지 나왔다.

그런데 여권의 독보적 대선주자인 박근혜 후보에게서 이 지루한 ‘피해자 코스프레’가 엿보인다. 통합진보당 당권파가 그토록 비난여론에 직면했던 이유와, 당 지도부가 석고대죄하며 수천 번 입에 올렸던 말은 “‘공당’으로서 위치에서 책임 있는 자세를 보이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대통령 당선이 유력시되는 후보가 예외일 리 만무하다. 그러나 이를 모를 리 없는 언론도 박근혜 ‘피해자 코스프레’에 가담했다. 

7일 상당수 조간이 새누리당 합동연설회(6일) 보도에서 박근혜 후보가 부당한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리는 피해자로 조명했다. 새누리당 합동연설회에서 비박(非朴) 주자들이 박 후보에 대한 ‘책임론’을 제기하자 “박근혜 때리기·총공세”라고 표현하며 박 후보 관련 선정적 루머를 함께 보도하기도 했다.

동아일보는 6면 <朴 “네거티브 시달려 멘붕” 金“공천헌금, 성매매보다 나빠”>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박근혜 캠프에서는 비박 주자들이 박 의원의 경선 낙마나 본선 패배 이후를 노리고 있다는 의심이 팽배하다”며 “친이(명박)계와 쇄신파가 함께 당권을 잡아 ‘박근혜 흔들기’를 계속해 박 의원을 낙마시키겠다는 의도라는 의심”이라고 전했다.

조선일보 역시 4면 <박근혜, 이틀째 “네거티브에 너무 시달려 멘붕”>이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박 후보사생활에 대한 루머를 전면에 내세우며 “대선전이 본격화하면서 박 후보에 대한 네거티브가 갈수록 기승을 부리고 있다”는 박 후보 측의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박 후보의 ‘출산설’, ‘가수 은지원씨 아들설’ 등을 주요하게 보도했다. 박 후보에 대한 경선 주자들의 ‘공천 책임론’은 쏙 빼놓은 것이다.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면 이를 자신을 향한 문제제기에 방패막이로 삼을 수 있다는 점과 함께 또 다른 이점이 있다. ‘결집효과’다. 일반적으로 박근혜 후보 및 보수세력 지지층 사이에서는 지지후보가 위기에 처할수록 지지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다.

한국일보는 5면 <내홍 봉합 하루만에…비박 또 ‘박근혜 때리기’>라는 제하의 기사에서 “비박계 경선후보들은 (…) 이날 합동연설회에서 박근혜 전 비대위원장을 겨냥해 총공세를 펼쳤다”는 주제로 보도했다. 한국일보는 같은 면에 <이회창·노무현·이명박도 ‘후보 사퇴론’ 시달렸다>는 제목의 기사를 통해 후보사퇴론은 ‘유력후보 흔들기’를 위한 대선 단골메뉴라고 소개했다.

그러나 해당 기사에서도 서술했듯 물론 “설령 의혹이 사실로 드러나더라도 박 전 위원장이 후보직을 사퇴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일부 언론에서 박근혜가 네거티브 공세에 시달려 ‘흔들리는 양’ 보도하는 이유가 짐작 가능하다. 실제로 지난 4·11 총선 직전 청와대의 민간 불법사찰 파장이 일자 초반에는 새누리당에게 불리한 흐름을 보이는 듯했으나 며칠 지나자 오히려 지역구별 여론조사에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상승하는 역설적인 상황이 나타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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