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1월8일 오후 서울시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전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이 1월8일 오후 서울시 목동 한국방송회관에서 열린 2024년 제1차 전체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의 ‘민원신청 사주’ 의혹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다 해촉된 김유진 방심위원의 해촉처분 집행정지 신청이 지난 27일 인용됐다. 윤석열 대통령이 해촉을 재가한 지 약 한 달 반 만이다. 김 위원은 업무에 복귀할 수 있다.

이는 단순히 한 방심위원의 억울함이 해결된 수준의 문제가 아니다. 이번 가처분 인용은 류희림 위원장의 민원사주 의혹에 대한 성격을 명확히 했다. 지난해 12월 류 위원장이 가족, 지인 등을 동원해 뉴스타파 ‘김만배·신학림’ 녹취록 인용 보도 관련 심의를 요청하는 민원을 넣었다는 신고가 국민권익위원회에 제기된 후 나온 첫 법원 결정문이다.

법원은 결정문에서 △청부민원 의혹이 언론의 취재 결과에 기초한 것이라 단순한 의혹 제기라고 보이지 않고 △의혹이 사실일 경우 ‘이해충돌방지법’ 위반에 해당하며 △위원장이 심의를 회피하지 않고 참여한 것이 방심위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훼손할 우려가 있고 △김 위원의 진상규명 요구가 공익에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명시했다. 류희림 위원장에게 의혹 해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문이다.

류희림 위원장은 그동안 일부 방심위 출입기자들에게 ‘도망자’로 불렸다. 취재 요청엔 일절 응하지 않았고 기자들을 피해 화물 엘리베이터를 이용한 적도 있다. 민원사주 의혹이 언급될 때마다 자리를 박차고 나가며 회의를 파행시켰다. 해명의 책임이 있음에도 위원장의 권한으로 회피해왔다.

위원장이 만든 상황을 나열해 보자. 민원사주 의혹이 안건으로 올라갔던 지난달 3일 임시회의는 여권 위원들이 전부 3시간 전 불참의사를 밝혀 무산됐다. 방심위 노조는 류희림 위원장이 갑자기 서초사무소 직원들과 점심약속을 잡았다고 밝혔다.

지난달 8일 도저히 불참할 수 없었던 전체회의는 민원사주 의혹 관련 안건에 대해 비공개 전환을 시도하다 야권 위원들이 반발하자 위원장이 자리를 박차고 나가버렸다. 처음엔 나갔다가 돌아왔는데 두 번째 퇴장 뒤에는 돌아오지 않았다. 퇴장 1시간여 후에 방심위 홍보팀이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회의는 정회 상태로 종료됐다’고 밝혔다. 기자들 사이에서 탄식이 흘렀다.

회의가 거듭 파행되자 모두 류 위원장이 ‘막다른 길’에 몰렸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지난달 9일, 류 위원장이 민원사주 언급을 제지하자 반복되는 상황에 화가 났던 옥시찬 위원이 류 위원장에 욕설을 한다. 이후 류 위원장은 회의진행 방해로 옥시찬·김유진 위원을 해촉 의결했고, 이후 의혹 진상규명 안건은 빠르게 ‘비공개’ 처리됐다. 비공개 전환을 위한 표결엔 류희림 위원장도 참여했다. 실제 여권 추천 위원들이 비공개로 민원사주 의혹에 대해 논의했는지 여부는 기자들에 따로 공지되지 않았다. 류 위원장이 기사회생의 ‘수’를 찾은 것이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합뉴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연합뉴스

하지만 김유진 위원의 가처분 인용으로 이 수는 ‘악수’가 됐다. 다시 막다른 길에 몰린 류 위원장. 법원이 진상규명의 필요성을 인정했으니 이번엔 피하기 어렵다. 김 위원은 법원 결정 이후 “류희림 위원장의 청부민원 의혹 진상규명을 촉구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미 안건을 ‘비공개’ 처리했다고 류 위원장이 발뺌할 수 있을까. 국민들은 아직 의혹에 대한 위원장의 설명을 듣지 못했다.

방송사를 심의하고 징계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진 기구의 수장이 어이없는 일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이토록 역사에 남을 행보를 반복하고 있는데도 아직 위원장 자리를 유지할 수 있다는 건 더 놀랍다. 류 위원장을 임명하고 김유진 위원을 해촉했던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이번 법원 결정의 책임을 물어야 하는 이유다.

김유진 위원은 문재인 대통령 추천 몫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김 위원 해촉 이후 곧바로 대통령 추천 몫으로 문재완·이정옥 위원을 임명했다. 그 결과 김유진 위원이 업무에 복귀하면 둘 중 1명이 자리를 내려놔야 하는 상황이 됐다. 다시 또 유례를 찾을 수 없는 상황이 벌어졌다. 방심위를 ‘코미디 현장’으로 만든 대통령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답할 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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