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2일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탁동삼 팀장. 사진=박서연 기자
▲ 지난 22일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탁동삼 팀장. 사진=박서연 기자

‘류희림 위원장님께 묻습니다.’

2023년 9월25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통심의위) 내부게시판에 올라온 10페이지 가량의 글. 방통심의위 직원들의 집단 저항은 그렇게 시작됐다. 게시판 글 작성 이후 방통심의위 팀장 11인이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이하 센터) 개소에 반발하는 의견서를 냈고 센터 소속 직원 전원은 사측에 전보를 요청했다. 평직원 대다수에 해당하는 150인은 이에 공감하는 연대 서명서를 제출했다. “동료가 겪는 부당함을 더 지켜보지 않겠다.” 연대 서명서에 포함된 직원들의 문구다.

탁동삼 방통심의위 디지털성범죄심의국 확산방지팀장은 처음 반발 글을 올린 당사자다. 지난해 10월 국정감사에 출석해 “위원장이 바뀐다고 해서 그동안 심의하지 않았던 기준과 원칙들이 바뀌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류희림 위원장 앞에서 발언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지난 18일 방송기자연합회가 수여하는 제5회 이용마 언론상 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지난 22일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노동조합 사무실에서 미디어오늘과 만난 그는 집단 저항에 거창한 대의가 있었던 것으로 기억되길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해 9월25일 올라온 방통심의위 내부 게시판 글.
▲ 지난해 9월25일 올라온 방통심의위 내부 게시판 글.

- 제5회 이용마 언론상 본상을 수상했다. 언론자유와 공정언론을 위해 기여한 자들에 주는 상인데, 방통심의위 직원이 받은 건 이례적이다.

“처음 들었을 땐 ‘내가 자격이 있나’라는 생각을 했다. 언론을 위해 오랜 기간 투쟁하신 분들이 워낙 많으니까. 지금은 나 개인이 아닌 직원들에게 보내는 ‘지지와 격려’ 의미가 아닐까 싶다. 우리가 하는 활동들이 아직 끝난 게 아니라는 걸 아셨을 것이다.”

- 지난해 9월25일, 류희림 위원장이 주도하는 가짜뉴스 대응 정책들의 문제를 짚는 메일을 전 직원에 보냈다. 방통심의위 직원들이 위원장에 반기를 든 ‘시발점’이었다.

“그 글을 올리고 나니 직원들이 그런 얘기를 하더라. 앞으로 꼭 잘 사시라고(웃음). 잘먹고 잘살면 좋겠고 조직에서도 꼭 출세했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꼭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다. 뭐랄까, 이 상을 받는 건 조직에 반하는 얘기를 해도 이렇게 상 받고 잘 살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이건 직원들과 함께 받는 상이다. 자격이 부족한 부분은 살면서 갚아야 할 빚이라 생각하며 갚아 가겠다.”

- 문제의 메일을 어떻게 보내게 됐나. 공공기관 성격을 가진 곳에서 ‘위원장에게 묻습니다’로 시작하는 글을 쉽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몇 달 만에 글을 다시 읽어봤는데, 큰 대의가 있던 건 아니었다. 그때 통신심의 기획팀장을 맡고 있었다. 류희림 위원장 호선 전이었는데 위원장이 될 사람이라 그랬는지 (위원장에) 가서 업무 설명을 하라는 지시가 오더라. 그래서 갔는데 (류희림 위원장이) 가자마자 유튜브 얘기를 하면서 김어준 등의 채널을 어떻게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물어봤다. 그때가 또 한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로 시끄러울 때였다. 그래서 김어준의 뉴스공장처럼 인터넷언론으로 등록이 된 곳들은 현행법으로 (제재)할 수 없고 언론중재위를 통해서 이미 규제를 하고 있다는 얘기를 쭉 했다. 그래도 류희림 위원장은 우리(방통심의위)가 할 거 하고 언중위도 할 거 하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시더라.”

- 그런 지적에도 방통심의위는 불법·유해정보를 규제하던 통신심의소위원회에서 사상 처음으로 인터넷언론사(뉴스타파)를 심의했다. 법적 근거가 부실하다는 비판이 똑같이 반복 제기됐다.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 취임 후 지난해 9월 인터넷언론도 심의해야 한다는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방통위에서 TF도 만들면서 내가 통신심의 기획팀장이니까 사실 연락이 많이 왔다. (인터넷언론을) 어떻게 심의할 수 있는 방법이 있는지. 그때도 똑같이 원론적으로 대답했다. 법령 개정이 필요하고 규정 개정도 해야 하고. 이런 것들을 하려면 공청회가 필요하고. 또 (개정하기 전) 사회적 합의가 있어야 하지 않겠냐고 답변했다. 당시 최초의 법률 보고서도 내가 법무팀에 요청을 했던 것이다. 나중에 문제가 될 수 있겠다 싶어 일단은 안 된다는 얘기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었다.”

방통심의위 법무팀은 2023년 9월13일 인터넷언론 심의가 불가능하다는 검토보고서를 냈는데 9월15일 법무팀 인사발령 이후 인터넷언론 심의가 가능하다는 검토보고서를 냈다. 당시 문제를 제기한 고민정 민주당 의원은 “일주일 만에 법무팀의 검토 의견이 180도 바뀐 것은 방심위나 방통위 윗선의 외압이 없었다면 벌어지기 힘든 일”이라고 지적했다.

- 이후 통신심의 기획팀장에서 디지털성범죄심의국 확산방지팀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원래는 통신심의 기획팀장을 계속하기로 돼 있었다. 그런데 사실 내가 피했다. 여기 계속 있으면 위원장과 계속 부딪힐 것이니 다른 곳으로 보내달라고 요청했다.”

▲지난해 9월26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개소식에 류희림 방통심의위원장을 포함한 정부여당 추천 인사들(황성욱·허연회 위원)만 참석했다. ⓒ방통심의위
▲지난해 9월26일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회관에서 열린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개소식에 류희림 방통심의위원장을 포함한 정부여당 추천 인사들(황성욱·허연회 위원)만 참석했다. ⓒ방통심의위

- 방통심의위 인사 발령이 난 건 9월15일이다. 메일을 보낸 건 9월25일인데,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나.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가짜뉴스 신속심의센터)를 만든다는 사실을 9월22일 들었다. 그 센터로 가게 될 인사 명단을 우연히 봤는데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포함돼 있더라. 사실 통신심의를 떠날 때 남아 있는 직원들에 굉장히 미안했다. 그 직원들도 평소에 위원회가 이런 가짜뉴스 심의를 하는 게 말이 되냐고 얘기하던 친구들이다. 여기저기 인사를 담당하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면서 나와 같이 일했던 직원들을 빼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어떤 분은 조직도를 보여주면서 너가 원하는 직원들을 빼줄테니 다른 사람을 고르라고 하시더라. 차마 그건 못 하겠어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자리에서 나왔다. 이런 과정들을 계속 거치면서 마음에 쌓이는 게 있었나 보다. 부끄럽기도 하고 직원들에 대한 책임감도 있었고.”

- 같이 일하던 직원들을 아끼는 마음이 분노의 단초가 된 것 같다.

“나를 이런 상황으로 몰고, 직원들을 이렇게 만드는 것에 대한 분노가 있었던 것 같다. 그런 감정들이 복합적으로 쌓여서 나도 모르게 주말에 글을 썼다. 쓰는데 2시간 정도 걸렸을까. 거의 초안 그대로 월요일(9월25일) 출근하자마자 올렸다. 시간이 좀 지나면 마음이 바뀔 거 같아서.”

“아무 반응 없던 류 위원장… 언론 보도 나오니 길길이 화냈다더라”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연합뉴스
▲ 류희림 방송통신심의위원장. ⓒ연합뉴스

- 류희림 위원장 반응이 어땠을지 궁금하다.

“반응이 전혀 없었다. 조금 오버일 수 있는데 사실 글 올리기 전 일요일(9월24일) 저녁에 제 자리도 정리했다. 보통 영화에서 보면 이런 거 올린 사람이 큰 박스 들고 회사에서 나오지 않나. 그런데 너무 조용했다. 아무 반응이 없더라”

- 하지만 언론 보도가 나오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KBS에서 ‘가짜뉴스센터’가 개소하는 날(9월26일) 인터뷰를 했다. 그런데 그때가 류희림 위원장이 내부 분위기를 한창 잡을 때다. 직원들이 홍보팀을 통하지 않고 인터뷰하면 징계하겠다고 하고 점심시간 등 밖에서 위원회 얘기를 하지 말라고도 했다. 그래서 KBS와 인터뷰를 하면 위원장이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싶었다. 그렇게 인터뷰를 하고 나서 (위원장) 반응을 전해 들었다. 길길이 화를 내면서 나를 징계해야 한다고 말했다더라.”

- 다행히 실제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직원들 눈치를 봐서일까. 그런데 그때 방통심의위 이름으로 반박자료를 냈다. 반박자료 말미에 ‘건전한 의견에 대해선 듣고 수용하겠다’는 내용이 있었는데 ‘건전한’이라는 용어가 너무 특이했다. 알아보니 위원장이 넣은 용어라 하더라. 그래서 그때 마음이 맞는 팀장들과 우리도 ‘건전한 의견을 만들어보자’며 집단 의견서를 내게 됐다.”

▲ 지난 22일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탁동삼 팀장. 사진=박서연 기자
▲ 지난 22일 서울 목동 방통심의위 노조 사무실에서 만난 탁동삼 팀장. 사진=박서연 기자

- 방통심의위 팀장 11인이 위원장에 집단 의견서를 내면서 방통심의위 직원들 행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가짜뉴스센터 소속 직원들이 전보를 요청했고 평직원 대다수에 해당하는 150명이 연대 서명부를 제출했다. 지난 12일엔 기명으로 149인이 류희림 위원장을 ‘이해충돌방지 위반’으로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서를 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반란’이다.

“(직원들이) 분노도 있었을 것이고 자존심도 상했을 것이고. 잘 알려지지 않았을 것 같은데 센터 소속 직원들이 정말 고생을 많이 했다. 단순히 억지로 일을 해서 힘든 게 아니라 불합리한 상황에서 내부적으로 싸우는 게 많이 힘들었다. (가짜뉴스) 긴급심의같은 것도 원칙을 만들어 달라고 직원들이 끊임없이 요구했다. 그 와중에 센터와 다른 부서 간의 갈등도 생기더라. 극단적인 상황에선 사람이 이기적인 마음이 생기고 서로 섭섭한 것도 생기게 된다는 걸 알게 됐다. 하지만 결국 이게 누구 때문인지에 대한 공감대가 생겼을 것이다. 상처 입은 사람들끼리는 서로 연대할 수 있는 것 같다.”

- 불합리한 상황에 놓인다고 해서 모두가 반발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방통심의위는 노동조합 활동도 비교적 활발하지 않았던 터라 모두가 놀랐다.

“개인적으로 직원들이 공적인 일을 하는 것에 대한 자부심들이 있었다고 생각한다. 방통심의위가 영리를 추구하면서 돈을 엄청 많이 받는 건 아니니까. 최소한 돈을 벌기 위해 누군가를 괴롭히지는 않는, 그런 성향의 사람들이 많다고 느낀다. 언론자유처럼 거창한 이유보단 개인의 상처, 개인의 존엄, 그런 말들이 어울린다고 느낀다.”

- 민주노총 전국언론노동조합 소속인 것을 놓고 정치적인 의도를 의심하는 보도도 많이 나왔다. 다분히 악의적이라 느낄 것 같은데.

“아시겠지만 여기 노조 사람이 계속 없지 않았나(웃음). 비대위 체제로 운영됐었고. 지금도 노조가 직원들을 이끌었다기보다는 직원들이 본인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는 도구로 노조가 선택된 것 같다. 노조 집행부도 그렇고 젊은 사람들이 주도적으로 이끌고 있다. 노조는 개인을 대변하는 단순 ‘창구’라는 인식이 강하다. 외부에선 그렇게 믿고 싶을 것이다. 노조 지부장과 사무국장이 사라지면 직원들이 흩어지지 않을까. 내부를 보면 전혀 그렇지 않다. 직원들은 ‘공정과 상식’이 무너지는 것에 반발할 뿐이다. 각자의 행동이 이념적으로 비춰지는 걸 매우 싫어한다.”

“여야 6대1 방심위? 직원들은 담담… 옳고 그름 평가받을 때 올 것”

▲ 탁동삼 확산방지팀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국회TV
▲ 탁동삼 확산방지팀장이 지난해 10월 국회 과방위 국정감사에서 발언하는 모습. ⓒ국회TV

- 류희림 위원장에 대한 직원들 평가가 ‘최악’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단순히 무리한 ‘가짜뉴스 대응’을 해서 그런 것 아닐 것이다.

“‘표리부동’을 떠나 가식적인 모습이 있다. 겉으로 내세우는 것과 실제 내부에서 모습이 너무 다르다. 대외적으로는 위원장실은 언제나 열려 있으니 언제든지 오라고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전혀 소통하지 않는다. 회의할 때도 기자들이 있을 때와 없을 때 차이가 많이 난다. 예를 들어 지난번 야권 위원들(김유진·옥시찬)을 비공개로 해촉할 때 직접 들어가진 못했지만 밖에서 들을 때 회의 진행이 매우 폭력적이었다.”

- 방통심의위 구조 얘기를 해보자. 윤석열 대통령 추천 몫으로 문재완·이정옥 위원이 임명되면서 방통심의위는 여야 6대1의 기형적 구조가 됐는데, 직원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생각보다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최악의 상황이 반복되니 직원들은 좀 길게 보는 것 같다. 언젠가는 옳고 그름을 묻는 과정이 생길 것이다. 외부에선 그런 얘기도 많이 한다. 직원들이 이렇게 1인시위하고 위원장 사퇴 요구하는 걸 보면서 나중에 어디까지 가려고 그러냐고. 그런데 직원들은 오히려 그런 걸 걱정하지 않는다. 언젠가는 이 상황에 대해 옳고 그름이 가려질 것이란 믿음이 있다. 그래서 더 담담하게 상황을 받아들이는 것 같다.”

- 홀로 남은 야권 추천 위원이 ‘심의 중단’을 선언했다. 여권 추천 위원 6명만 회의에 참여하고 있는 상황인데 의결 정당성에 대한 문제가 생기지 않을까.

“이전 구조에서도 말이 안되는 일이 너무 많이 발생했다. 오히려 ‘여야 6대3’ 구조로 위원회 정상화 외피를 두른 채 말도 안 되는 결정이 반복되는 것보다는 누가 봐도 부당한 구조에서 부당한 결정들이 이뤄지는 게 나을 수도 있다. 좋다 나쁘다를 떠나 크게 다르지 않겠다는 생각이다.”

- 류희림 위원장 체제의 폭풍이 지나고 나면 분명 방통심의위 기능과 필요성에 대한 의구심이 나올 것이다.

“구성원으로선 당연히 우려가 된다. 하지만 이번 기회에 지금처럼 여야가 위원 구성을 나눠 먹는 구조로는 방통심의위가 유효할 수 없다는 게 잘 드러났다고 본다. 이렇게까지 망가지지 않았다면 방통심의위를 고쳐야겠다는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았을 것 같다. 지금의 구조는 방통심의위원으로 오는 사람들의 선의에 기대야 하는 상황이다. 누군가 그걸 악용하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다.”

▲ 방통심의위 평직원 150명 연대서명서.
▲ 방통심의위 평직원 150명 연대서명서.

- 마지막으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일련의 직원들 행동이 사람들에게 어떤 의미로 전해지길 원하는지 궁금하다.

“정권에 맞섰다거나 언론자유 수호처럼 거창한 이념이 아니었다. 그저 나의 일에 대한 자긍심. 그걸 실제 위협하는 상황을 내 삶을 위협하는 걸로 봤다. 그냥 나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싸웠던 사람들이다. 비슷하게 상처 입은 사람들이 연대해서 함께했던 일이 있었다. 직업인으로서 나 자신을 부끄럽게 하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사람들이 있었다, 그 정도 의미로 기억이 됐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미디어오늘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